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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현대미술 ‘친절한 가이드’

아트선재센터 개관 5주년 컬렉션 … 일반인들에게 ‘감상’과 ‘이해’ 날개 달아주기

낯선 현대미술 ‘친절한 가이드’

낯선 현대미술 ‘친절한 가이드’

아트선재센터가 소장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5-아트선재 컬렉션 전’. 아트선재센터와 한옥 풍경 사이를 가르는 이불의 ‘현대미술의 쓰임새, 칼라 칼라 칼라’(2003)

서울 소격동, 한옥마을로 최근 유명해진 북촌이 시작되는 곳에 기와를 얹은 담으로 꾸며진 모던한 흰색 5층 건물이 있다. 1998년 문을 열어 이제 개관 5주년을 맞는 아트선재센터다.

사회복지법인 대우재단 소속인 아트선재센터는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관장 정희자씨(김우중 전 대우 회장 부인)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존속 자체가 불투명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독특한 운영을 통해 새로운 전시 형식을 소개하고 국제적 네트워킹을 확대하는 등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이제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11월22일부터 내년 1월18일까지 열리는 개관 5주년 전 ‘5-아트선재 컬렉션 전’은 아트선재센터가 그동안 전시를 열면서 소장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5년 전 같은 자리에서 열렸던 개관기념 소장품 전과 이번 전시를 비교하면 이곳이 얼마나 젊어졌는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23점

낯선 현대미술 ‘친절한 가이드’

아트선재센터의 캐릭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김선정 부관장(맨 위).아트선재센터 전시작들. 김나영의 ‘새로 나온 개집’, 정서영의 ‘전망대’와 ‘꽃’, 장 자크 륄리에의 ‘머리를 스치는 식물의 꿈’, 파브리스 위베르의 ‘Protheses’(위부터).

개관전이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컬렉션한 평면 회화와 모던한 조각작품들로 채워졌던 데 비해, ‘5-아트선재 컬렉션 전’은 알록달록 복도에 매달린 전구들(최정화, ‘현대미술의 쓰임새, 칼라 칼라 칼라’)에서 시작해, 주렁주렁 걸린 옷가지(파브리스 위베르, ‘Protheses’)와 전시장 전체를 둘러싼 패션브랜드 프라다의 네온광고(실비 플러리, ‘Bigger Splash’) 등 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23점의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것도 미술인가’ 말 못할(?) 고민을 던져주지만 개념을 중시하는 컨템포러리 미술의 일정한 흐름을 보여주는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미술품’이란 편견만 없앤다면 23점 전시작 모두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썩 즐거워지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방향성’을 결정한 것은 사실상 아트선재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김선정 부관장이다.

“아트선재센터는 첫째로 컨템포러리 미술을 소개하는 곳이고요, 둘째로 일반인들이 미술을 통해 ‘감상’과 ‘이해’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현대미술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 대중성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전시는 미술관의 기능 중 한 부분일 뿐이죠. 미술을 이해하도록 교육하는 일이 더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아트선재센터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그동안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전시들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대중적인 기획들은 아니었다. 개를 위한 완벽한 주거공간 ‘새로 나온 개집’(김나영, 2000)이나 장난감처럼 작은 전망대 ‘전망대’(정서영, 1999), 상록아파트 32평형 주민들이 거실에서 찍은 가족사진들을 보여주는 ‘상록타워’(정연두, 2001)가 미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작품들은 감상을 위해서 이해와 토론이라는 교육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것이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가 시도했거나 실패했거나 진행 중인 다양한 실험들은 교육이라는 깔때기를 통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의 낯선 경험으로 모아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낯선 스타일을 가진 일군의 작가군이 형성됐고 이들은 흔히 ‘아트선재센터 작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어떤 일이나 그러하듯,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의 내용과 형식은 사실 외부의 불가피한 상황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아트선재센터의 5년도 그렇지 않을까. 기존 건물들 사이, 한옥터에 들어서느라 전시장 모양은 네모가 아닌 부채꼴이 되었다. 5년 전 적잖은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전시를 하나’ ‘재벌 미술관이 왜 이리 옹색한 모양일까’라는 걱정을 했다.

덕분에 작가들은 심각하게 장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작업실에서 완성된 작품을 그저 전시장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미술적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와 관객의 특징을 중시하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세계적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2층 전시장 벽면을 띠처럼 둘러싸고 있는 실비 플러리의 ‘Bigger Splash’는 작가가 아트선재센터의 전시장에 맞게 작품을 만든 것이다. 2001년 실비 플러리는 이곳 전시장에서 자동차를 타고 화장품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아트선재센터는 작품 운송비를 없애고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윈-윈’ 효과를 얻었다. 작품을 운송해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와서 작품을 만드는 전시는 이제 꽤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낯선 현대미술 ‘친절한 가이드’

실비 플러리의 네온과 이불의 설치가 함께 있는 2층 전시장, 정연두의 ‘상록타워’(2001).

IMF 사태와 대우그룹 해체 위기 속에 아트선재센터는 주차장에서 전시를 하는 ‘주차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 3층의 전시공간을 쓰지 못하게 되는 ‘비상시’를 대비한 아이디어였지만, 젊은 작가들은 미술관에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게 됐고, 밴드의 공연과 퍼포먼스 등이 열려 말 그대로 종합적인 ‘언더’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mp3’로 작품 설명 내용 쏙쏙

비슷한 시기, 아트선재센터는 기업미술관 운영에 ‘후원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었다. 기업미술관이란 전적으로 건물을 소유한 기업이 벌이는 ‘문화사업’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지원이 미미하고 기업이 모든 운영비를 내므로 기업 편의대로 어떤 전시를 하든 상관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아트선재센터는 모기업이 사라지고 재원 마련에 난항을 겪자, 미술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공공적 성격을 강화하고, 후원자들에게 미술을 직접 지원하는 즐거움을 제공했다. 다양한 후원 파티를 마련하고 마치 영화에서 협찬 기업의 상품을 노출시키듯 때로는 다소 노골적으로(?) 후원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한다.

“바로 어제 연말행사인 ‘감사 파티’를 했어요.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아트선재센터의 지금이 없었을 거예요. 특히 ‘프렌즈’란 이름을 갖고 있는, 법률 자문에서 전시 기술 자문과 지원 등을 해주시는 22명의 밀접한 후원자들이 있지요.”

이번 ‘5-아트선재 컬렉션 전’에서는 mp3를 관객에게 빌려준다. 이 역시 김부관장 등이 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해 후원받은 것이다. 미술애호가로 자주 전시도우미(‘도슨트’라 불린다)로 나서는 이창현 국민대 교수가 설명을 녹음하는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젊은 작가들, 지하에 입주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영화팬들, 그리고 경제력을 가진 미술 후원자들이 아트선재센터에 모이면서 동네의 풍경도 5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대각선 방향에 정독도서관, 옆에 국군기무사령부, 앞에 라면집이 거의 전부였던 이곳에 pkm갤러리와 티베트박물관, 아트숍, 미술전문잡지, 전통문화단체 ‘아름지기’ 등의 사무실이 들어오고 작가들도 옮겨와 독특한 문화벨트를 이루게 되었다. 어떤 이는 “북촌 부동산 열풍의 근원지가 아트선재센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부관장이 재벌가의 장녀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대기업 경영자(이수화학)의 부인이 아니라면’이라는 불공평한 가정이 여전히 따라붙긴 하지만, 아트선재센터의 5주년은 그의 오늘과 많은 부분에서 겹쳐진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큐레이터다. 이화여대와 미국 크렌부룩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객원 큐레이터로 시작한 그는 지난해 월간미술이 수여한 올해의 미술인상을 수상했고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부지런히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아시아 미술의 네트워킹을 형성했고 9월 상하이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양광찬란’이란 전시를 만들었다. 이는 아트선재센터의 공식적 프로젝트로 그 지향을 예감하게 한다.

“내년엔 또 달라진 아트선재센터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아트선재센터 5년’을 정리하는 책이 출판될 테고,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나 홈페이지 운영도 새로워질 겁니다.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이 가세한 결과라고 할까요.(웃음)”

‘5-아트선재 컬렉션 전’이 열리는 전시장 입구에서 ‘5’와 ‘thanks’란 글씨가 앞뒤에 쓰여 있는 전시 팸플릿과 설명을 담은 mp3를 받을 수 있다. 현대미술의 ‘썰렁함’을 우리에게 전도한 아트선재센터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일목요연하고 친절한 가이드다. 악명 높은 현대미술과 동시대적인 문화적 트렌드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다.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78~79)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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