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2

2003.12.04

유람선 퀸 메리 2호 ‘부두의 눈물’

배 내부 공개 행사중 건널판 붕괴 48명 死傷 … 최대·최고·초호화 치장 내년 1월 취항

  • 파리=지동혁 통신원 jidh@hotmail.com

    입력2003-11-27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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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 퀸 메리 2호 ‘부두의 눈물’

    호화 유람선 퀸 메리 2호는 내년 1월 첫 대서양 횡단 항해를 할 예정이다.

    촉촉히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 프랑스 서부 해안가 작은 도시 생나제르는 여느 주말보다 들뜬 분위기였다. 인구 13만명의 소도시 주민들은 세계 최대의 호화 유람선 내부를 남보다 먼저 둘러볼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의 가족과 이웃의 땀이 일구어낸 역작 앞에서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불행은 불시에 찾아왔다.

    11월15일 오후 2시20분경, 이곳에서 마무리 건조작업 중이던 호화 유람선 퀸 메리 2호와 부두를 잇는 건널판(임시 트랩)이 붕괴되면서 15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했다. 이날 사고는 내년 1월로 예정된 퀸 메리 2호의 첫 항해를 앞두고 조선소 관계자들과 그 가족들이 선박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들이 승선하기 위해 건널판 위로 몰리자 이 철제 구조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이다. 방문객들은 15m 아래 콘크리트 독(dock) 바닥으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프랑스 전역이 혼란에 휩싸였다. 수개월 전부터 언론에서 작업 진척 상황을 전해오던 터였기에 역대 최고의 호화 유람선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생나제르 주민만의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 모두의 것이었다. 특히 9월에 한 첫 시험항해와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4일 전에 한 두 번째 시험항해가 성공리에 끝난 데 힘입어 퀸 메리 2호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관심이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퀸 메리 2호의 역사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해운회사인 쿠나드(Cunard)사는 운항 중인 ‘퀸 엘리자베스 2호’를 대체할 새로운 호화 유람선 건조계획을 발표했다. 1934년 ‘퀸 메리 1호’가 항해를 시작한 이래 쿠나드사는 ‘퀸 엘리자베스 1·2호’를 선보이며 호화 유람선 여행을 주도해왔다.

    선박 건조 자긍심 프랑스 ‘충격’



    2000년 11월, 수주 대상을 물색하던 쿠나드사가 프랑스 알스톰(Alstom)사의 자회사인 아틀란티크 조선소와 계약을 맺으면서 퀸 메리 2호 탄생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여러 차례의 설계 검토 과정을 거쳐 2002년 1월 건조에 착수함으로써 퀸 메리 2호의 거대한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345m에 이르는 선체 길이는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의 높이와 비교되며, 74m에 이르는 선체 높이는 23층짜리 건물 높이와 맞먹는다. 15만t급인 이 여객선은 2620명의 탑승객과 1310명의 승무원을 싣고 시속 30노트로 항해할 수 있다. 모터를 통해 자체 생산하는 전력량만 해도 118MW에 달한다.

    세계 최대의 호화 유람선이라는 간판에 걸맞게 170여개의 초호화 객실과 3층짜리 고급 레스토랑을 갖추었고, 5개의 실내외 수영장과 800석 규모의 영화관 등 다양한 휴양시설과 외국어를 교육하는 학교, 병원 등 부대시설도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이밖에도 선내 이곳저곳을 화려하게 장식할 예술품을 설치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한 전문회사와 별도로 계약했을 만큼 ‘최고’로 여길 만한 자재와 설비를 총동원했다. 8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수주 계약금에서도 다른 선박과의 차별성이 단연 부각됐다.

    쿠나드사가 자사의 호화 유람선 건조를 외국 선박회사에 발주한 것은 퀸 메리 2호가 처음이다. 프랑스는 이번 수주를 자국 조선업을 부흥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프랑스 조선업을 대표하는 생나제르의 아틀란티크 조선소는 과거 세계 제일의 유람선 조선소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1935년 ‘노르망디호’와 1962년 ‘프랑스호’를 건조하면서 명성을 날리던 생나제르는 한때 침체의 길을 걷는 듯했으나 이번 수주를 계기로 다시 한번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분위기였다. 1980년대 초 이 조선소를 인수한 모그룹 알스톰 역시 최근 부도 위기를 겪으며 실추된 자사의 이미지를 퀸 메리 2호라는 역작을 통해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유람선 퀸 메리 2호 ‘부두의 눈물’

    건널판 붕괴로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생나제르시 부두의 사고현장.퀸 메리 2호의 시험운항 모습(위 부터).

    그러나 정작 사고는 선체 밖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제의 건널판은 한 전문회사가 만들어 사고 전날 설치했다. 길이 10m, 너비 1.5m의 건널판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철제 전신주가 지지하던 구조물이 일거에 무너져내렸다. 이런 장치는 통상 부두와 대형선박을 연결하는 데 이용돼왔으나, 구조물 붕괴와 같은 대형 참사가 생긴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사고가 워낙 순식간에 발생해 목격자마다 증언이 엇갈려 정확한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일단 경찰은 이 구조물을 제작한 회사 관계자들을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중이다. 또한 사고가 제작과정에서의 부실시공으로 인해 일어났는지, 아니면 적재하중을 무시한 안전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마무리 건조작업이 진행 중인 선박이 처녀항해를 떠나기 전, 공사 관계자들이 가족과 친지를 동반해 선박을 둘러보는 행사는 생나제르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소의 관례이자 전통이다.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노고가 깃든 대공사인 만큼 그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선박을 미리 선보이는 행사에 초대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왔다. 특히 퀸 메리 2호와 같이 볼거리가 풍부한 호화 유람선의 경우, 선박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 이후 민간인들이 공사가 끝나지 않은 선박을 둘러보는 전통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믿고 둘러볼 수 있도록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고 다음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사고현장을 방문해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거행된 월요일, 조선소측은 모든 작업을 취소하고 고인이 된 동료와 그 가족들의 명복을 빌었다.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이 조선업에 종사하는 생나제르시 시민들은 모두 추도 사이렌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英→美 대서양 횡단 항해 예정

    유람선 퀸 메리 2호 ‘부두의 눈물’

    퀸 메리 2호의 내부 조감도.

    장례식에 참석한 생나제르시 시장 조엘 바퇴는 이런 말로 시민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물론 우리가 예상했던 축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슬픔이 무한하다 해도 우리가 이 배를 완성했다는 자부심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거행된 다음날 생나제르 조선소 근로자들은 다시 헬멧 끈을 조여 맸다. 이번 사고로 가까운 친지와 이웃을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세계 최고의 유람선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소측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선박 건조를 끝내고 퀸 메리 2호를 선주인 쿠나르사에 인도할 예정이다. 내년 1월8일로 예정된 명명식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참석한다. 명명식이 끝나면 퀸 메리 2호는 비로소 영국 국적의 선박이 된다. 사연 많은 이 선박은 영국에서 미국 플로리다를 향해 첫 대서양 횡단 항해를 할 예정이다.

    오늘날과 같이 항공기로 대서양을 7시간 만에 횡단하는 ‘속도의 시대’에는 같은 거리를 5~6일에 걸쳐 가는 것 자체가 ‘호화스럽게’ 여겨진다. 수백만원이 넘는 여행경비를 차치하고도 말이다. 비록 이번 사고로 퀸 메리 2호는 닻을 올리기도 전에 그 이름이 얼룩져버렸지만 사상 최대의 호화 유람선을 향한 만인의 관심만큼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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