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2003.10.09

미끈미끈… 더듬더듬… ‘갯벌의 추억’

  • 허시명/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3-10-02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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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끈미끈… 더듬더듬… ‘갯벌의 추억’

    변산이 보이는 갯벌 체험장에서 바지락을 캐는 사람들(위). 살아 움직이는 바지락.

    소문으로만 듣던 꽃무릇을 보러 고창 선운사에 갔다. 땅에서 곧장 솟아난 꽃대, 그 꽃대 끝에 붉은 나비처럼 앉은 꽃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바로 그가 수천 수만 개의 불을 지상에 밝혀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잔치에 맞춰 선운사 입구에서는 수산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민들을 위해 잔치마당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산속 절 입구에서 치르는 행사여서인지 수산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수산물 음식점만 넘쳐났다. 마침 그걸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바닷가에서 지방자치단체 주최로 두 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풍천장어잡기와 갯벌 생태체험이 그것이다.

    풍천장어잡기 행사는 선운사 입구의 인천강가에서 열리고 있었다. 인천강은 바다와 연결돼 있어 장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었는데, 장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주변의 장어 양식장들이 공급을 대신하게 되었다. 장어잡기는 인천강가에 바닷물을 가둬 양식장어를 풀어놓고 진행되었다. 축제기간 동안 이뤄지는 깜짝 이벤트였다. 나는 장어잡기 행사를 보고 곧바로 갯벌 생태체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서해안 전체가 갯벌체험장이다. 맨발로든, 장화를 신고서든 갯벌에 들어가면 그게 갯벌체험이다. 그래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갯벌체험장이 있는 심원면 하전리 서전마을을 찾아갔는데, 그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전국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마을 앞에 드넓은 평야처럼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갯벌이 넓어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다 건너로는 변산반도가 펼쳐져 있다. 염전이 있는 곰소에서부터 모항을 거쳐 격포, 그리고 서쪽 끝의 위도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위도 가는 배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그 장엄한 변산반도였다.

    미끈미끈… 더듬더듬… ‘갯벌의 추억’

    선운사에 피어 있는 상사화(아래).

    어촌계장 이수용씨(45)는 하전어촌계에서 관장하는 갯벌이 1147ha라고 했다. 그 넓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물이 빠지면 경운기를 타고 6km쯤 나간 곳에서 바지락을 캔다는 말에 삶은 조개처럼 입이 떡 벌어졌다. 사람들이 갯벌에 흩어지기 시작하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규모다.

    경운기가 다져놓은 단단한 갯벌 길을 1km쯤 걸어 들어가니 바지락을 캘 수 있는 갯벌이 나왔다. 그곳 입구에는 경운기를 대놓고, 호미만한 갈고리와 바구니, 그물자루를 빌려주는 어촌계원이 있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장비를 빌려서 맨발로 갯벌에 들어갔다. 부드러운 갯벌의 감촉이 즐길 만했다. 혹시 조개껍데기에 발바닥을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겁낼 정도는 아니었다. 만일 그게 걱정되는 사람은 어민들이 신는 고무장화를 준비해오면 된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곳까지 나가서 갯벌을 뒤져보았다. 갈고리로 갯벌을 찍어, 덩어리 진 뻘을 뒤집어 헤치자 바지락이 한두 개 눈에 띄었다. 뻘을 잔뜩 머금은 죽은 바지락도 있고, 한창 자라고 있는 작은 바지락도 있었다. 이곳 하전어촌계에서는 수시로 새끼바지락을 사다가 바다에 뿌린다. 그 바지락이 1년 반이나 2년쯤 자라 폭이 3cm쯤 되면 캘 만하고 먹을 만해진다.

    구멍이 숭숭 뚫린 갯벌에 갈고리를 박아 뻘을 뒤집으니, 마치 감자뿌리에 달린 감자처럼 바지락이 알알이 달려 나온다. 이제 뻘을 헤치고 바지락을 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타원형의 바지락만 나오는 게 아니라 긴맛도 나오고 검은빛 백합, 가무락, 동죽도 나온다. 바지락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뻘에서 태어나 뻘에서 자란 것들이다. 물론 바지락 중에도 자연산이 끼여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어촌계장에게 종패(새끼바지락)를 뿌리고 나서 달리 영양분을 주지 않냐고 물어봤다. 양식 어장에서 먹이를 주고, 전염병이 돌지 않게 약물을 투입하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활한 뻘밭에 비료를 주면 얼마를 주고, 약을 뿌리면 얼마를 뿌릴 것인가. 종패를 뿌리고 나면 나머지는 쉼 없이 움직이는 바닷물이 모두 해결해준다. 그리고 지구의 콩팥이라는 뻘이 영양분을 제공해주고, 또 햇빛이 가세하여 찰진 바지락으로 키워낸다.

    미끈미끈… 더듬더듬… ‘갯벌의 추억’

    갓 잡은 바지락을 끓여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왼쪽)과 해거름의 서전갯벌.

    어촌계장은 하전리 바지락이 다른 갯벌에서 나는 바지락보다 쫄깃하고 유통기간이 길다고 했다. 바지락 밭이 바닷물에 잠겨 있을 때보다 햇빛에 노출돼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하전리 갯벌체험장은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다. 자연이 선물한 체험장이다. 어민들이 어장의 일부를 체험장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쉼터와 세족장, 요리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무한대로 바지락을 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이 밀려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따라서 미리 어촌계에 연락해 물때를 알아보고 찾아가야 한다. 썰물과 밀물 때를 보는 것은 기본이지만,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작은 조금과 사리 때를 구분하여 가면 더욱 좋다. 바다에서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가 풍어기다. 바지락 캐기 좋은 때도 당연히 이때다. 그리고 직접 캔 바지락은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니다. 어촌계에 1kg에 2000원씩 값을 치러야 한다. 어민들이 종패를 뿌리고 관리해 거둔 수확물이어서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다. 시중에서는 바지락 값이 그 곱절은 되는데, 이곳에서는 싱싱한 바지락을 직접 캐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년 연중 언제든지 찾아와도 바지락을 캘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바지락을 잔뜩 넣은 칼국수를 해 먹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바다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다면, 간척사업이 무모하고 갯벌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싶다면 이번 주말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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