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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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열정 … 나는야 사교육 여왕”

대치·반포·서초동 주부들 ‘자녀교육’ 메이저급 … 학원정보 수집·스케줄 관리 등 ‘연예인 매니저’ 방불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10-01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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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열정 … 나는야 사교육 여왕”
    ”아휴, 우리 반포 걸(girl)들은 대치 걸 제일 무서워하잖아.”

    어느 날 오후, 서울 서초구 신반포아파트 단지의 한 36평 아파트에 모여 앉은 주부들 사이에서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에 거주하는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 다른 강남지역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교육 관련 정보를 주고받다 친해졌다. 모두 전업주부인 이들 남편의 직업은 교수, 연구원, 변호사 등. 반포아파트 단지의 ‘조용하고 교양 있는’ 분위기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곧이어 강남권 각 지역의 특성과 성향에 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느낌이 정말 달라. 대치동 가면 벌써 공기부터 살벌하지 않아?”

    “서초동은 어떻고. 삼풍아파트 가면 같은 구(區)라도 우리랑은 되게 다르잖아.”

    “왜 이러셔~, 한 술 더 뜨는 분이. ○○엄마는 아마 거기 가도 살아남을걸.”



    “압구정은 진짜 돈 많은 사람들 동네 같고, 개포동은 시골 같은데 사실은 알짜배기고.”

    “잠실은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말고 볼 것 있나?”

    “왜? 주공아파트 엄청 올랐잖아.”

    “그건 재개발 때문이구. 진짜 수준 있는(돈 많은) 동네는 아니지.”

    주부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지역별 교육환경과 부동산 가격으로 옮아갔다. 교육과 재테크. 비(非)강남파 사람들이 강남 입성을 꿈꾸는 이유 또한 이 두 가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파트 투자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학군, 교통, 단지 규모, 환경, 브랜드. 이중 단연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환경이다.” 강남구 삼성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권종림씨의 말이다.

    “돈+열정 … 나는야 사교육 여왕”

    재개발을 앞둔 데다 유명 학원가를 끼고 있어 강남 아파트의 상징으로 부상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그래서 ‘강남 사람들’을 지역별로 따로 또 같이 묶고 나누어주는 ‘기준’ 또한 교육 관련 성향, 그리고 그 강도와 비례해 형성된 부동산 가격+소비 능력이다. 이를 기준 삼아 몇몇 주목받는 동네들을 살펴보면 ‘강남스럽다’ ‘강남 수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교육 시설 집중 구역’ 강남구 대치동을 보자.

    샐러리맨 월급으론 대치동 사교육비 감당 못해

    “은마아파트에서 자식자랑하지 말라.”

    강남구에서 우스갯소리로 통용되는 말이다. ‘최고의 교육’을 찾아 강남으로 모여든 이들을 상징하는 용어가 ‘은마아파트’인 셈이다. 은마, 청실, 선경 등 2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가 즐비한 대치동은 언뜻 31평 기준 8억~9억원을 호가하는 집값이 이해되지 않을 만큼 허름하고 번잡해 뵌다. 압구정 식의 화려한 유흥가나 청담동의 ‘럭셔리’한 상점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랴. ‘전국 최고 수준’의 학원, 강사들을 거느린 까닭에 지금 대치동은 비강남파는 물론 강남권 주부들에게도 ‘꿈의 동네’다. ‘사교육 1번지’이자, 고학력자 고소득자 고득점자가 많다 해서 ‘삼고동(三高洞)’으로 불리기도 한다.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대치 걸’의 삶은 유명 연예인 매니저를 방불케 한다. 온갖 종류의 유명 학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에 맞추어 기민하게 움직인다. 일찍부터 골프, 기악 등을 가르쳐 또래집단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돕는 것도 중요 임무다. 유명 학원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대치동의 최대 강점. 그래서 아이들을 학원에서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노동’으로부터는 상당부분 자유롭다.

    자식교육을 위해 10여년 전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는 임현자씨는 “다른 지역에 사는 학부모와 얘기할 때면 ‘이 사람 학부모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가해 보인다. 대치동에 살면 도저히 (자녀교육에 대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어떤 때는 ‘왜 이렇게 아귀다툼을 하며 바쁘게 살아야 하나’ 내 인생이 한심스레 느껴질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치동에 거주하는 주민 중에는 일반적인 ‘사회지도층 인사’ 외에 자영업자가 많다. 웬만한 샐러리맨 월급으론 사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 주부들은 대체로 대치동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 압구정동처럼 교통이 혼잡하지도 않고, 술집 등 유흥시설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원과 학교, 집 사이를 걸어 오가며 ‘바깥 동네’ 일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부모 이상으로 공부에 목숨 거는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 허튼 생각에 빠지다가도 무섭게 공부하는 옆 친구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이다.

    최근 새롭게 대치동으로 입성하는 사람들 중에는 안양 평촌 분당 일산 등지의 신도시 주민이 많다. 신도시의 ‘비평준화 고교’들이 모두 평준화되면서, 상위권 학생들이 강남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신도시 집을 전세 놓고, 대치동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들어온다. 강남 거주자 중에도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돈+열정 … 나는야 사교육 여왕”

    서울 남산 쪽에서 바라본 강남 전경.

    대치동 학원가는 대형학원과 소규모 보습학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강남 메가스터디 학원’이 대형 학원계를 평정했다면, 10~20명의 강사가 특정 과목만을 가르치는 전문학원들의 ‘활약’ 또한 눈부시다. 소문이 어찌나 요란한지 멀리 서울 강북, 분당, 일산 등지에서도 이곳 학원을 다닐 정도다.

    소규모 학원은 공히 학생의 수준에 꼭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울대 수학과 출신 수학강사가 ‘굴러다닌다’는 말이 나돌 만큼 스타강사가 많다. 내신 대비, 수능 대비, 경시대회 대비 등 매우 세분화돼 있다. 최근에는 올 수학능력시험 스타일에 맞는 강사군을 갖추기 위해 대거 물갈이를 감행하기도 했다.

    대치동, 서초동에 비해 반포동은 ‘전통적인 쾌적한 주거지’로 꼽힌다. 대치동에 양재천이 있다면 반포동에는 한강시민공원이 있다. 20~30년 전 들어선 아파트들이 아직 건재하며, 저층 단지의 경우 동간 거리가 넓고 나무가 울창해 특히 인기가 높다. 주민 김인구씨는 “원래 교수 아파트로 지어진 곳이라 점잖은 분들이 많이 산다. 교수, 연구원이 여전히 많고 법조인, 의사들도 적지 않다. 지적 수준은 강남 최고라고 봐도 좋다”고 주장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보수적이며 학벌·직업 등의 ‘급’을 따진다는 뜻일 수 있다. 최근 구반포 2, 3단지 재개발 특수로 매매가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4~5년 후 재개발이 예정된 2단지 22평 아파트의 경우 6억2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다. 10년 후에나 재개발이 가능할 1단지 32평형도 9억원을 넘어섰다.

    강남·북 지역으로 단시간에 진출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은 반포의 자랑. 그러나 이곳 역시 최대 강점은 학군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소위 ‘일류’로 통하는 학교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때문에 초등학교 5~6학년 때 전학 오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동네로도 손꼽힌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 근무하는 정성민씨는 “특히 최근 4~5년 사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포초등학교의 경우 1학년생은 158명이지만 6학년생은 235명이나 된다.

    “돈+열정 … 나는야 사교육 여왕”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위)과 교보문고 강남점.

    신반포에서 구반포로 이어지는 길 양편에는 상가가 형성돼 있다. 그 2·3층은 대부분 소규모 학원들의 차지다. “그만하면 훌륭하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지만 욕심 많은 엄마들은 어김없이 더 유명한 타 지역 학원가를 찾는다. 초등학교 3학년생 자녀를 둔 전업주부 H씨(38)는 전형적인 ‘반포 걸’. 친정이 반포여서 자연스레 이곳에 자리잡았고 아이의 예능교육과 영어학습을 위해 일주일에 3회씩 압구정동, 대치동을 오간다.

    H씨는 “대치동처럼 떠들썩하진 않지만 이곳 엄마들도 살림은 뒷전이라 할 만큼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매달린다.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대치동 일류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따로 과외를 할 정도다. 그래서 돈만 좀더 있다면 압구정동, 그보다 더 여유 있다면 대치동으로 이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제력이 대치, 압구정에 달리다 보니 엄마들이 더 열심인 측면도 있다. 학원 교재 하나, 학교 선생님 수업방식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간섭한다. 돈 좀 덜 쓰고 말을 많이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반포동 3명 중 1명꼴 영어 조기 유학?

    반포의 남다른 특징은 영어 조기 유학을 가는 아이가 많다는 것. “대치동 쪽은 아니라던데 반포랑 압구정은 정말 많이 나간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 적기라고 한다. 기간은 1~2년이고 99% 엄마가 따라간다. 대충 3명 중 1명은 갔다 오는 것 같다. 압구정동은 아주 가버리는 진짜 조기 유학 비율도 높다.” H씨의 설명이다.

    서초동(상자기사 참조)을 포함, 강남의 ‘대표 동네’ 세 곳의 특징에서 알 수 있듯 강남 주부들의 교육열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차미숙씨는 “얘기를 듣다 보면 완전히 딴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액수며 애들 스케줄이며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그게 정상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안다”고 혀를 찼다.

    목동에 거주하며 강남구 역삼동에서 8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P씨는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곳이 바로 강남”이라고 경고했다. “친구 중 재산이 10억원쯤 되는 이들도 여기 살려면 허덕인다고 한다. 우리 주고객의 재산을 보면 보통 20억~30억원이다. 사실 그 정도는 돼야 진짜 강남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그중 자수성가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특히 20, 30대 젊은 부부가 강남의 30평대 이상 아파트에 산다면 십중팔구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동 주부 J씨도 “주변 엄마들을 보면 어렵게 큰 사람이 없다. 집안살림은 파출부가 다 하고 자기는 오로지 건강과 외모 관리, 아이들 관리만 신경 쓴다. 간식으로 먹는 샌드위치 하나도 아무 거나 사는 법이 없다. 꼭 이름난 제과점에서 7000원씩 하는 고급품만 골라 온다. 물질적으로 풍요하니 마음에도 여유가 있고, 그래서 부모고 아이들이고 내가 전에 살던 대구 사람들보다 순진하고 뒤끝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곧 극도의 개인주의, 물신주의와 연결된다. “목동 아이들은 그래도 친구 부모의 직업 따위에 관심을 갖는데 강남 아이들은 오로지 돈이 많은가만 궁금해한다. 엄마들끼리도 교육정보 나누기에 급급할 뿐, 상대의 삶이나 가치관 등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사적 관계의 증발, 그것이야말로 강남의 진정한 얼굴이다.” 목동에 이어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공립중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L씨의 따끔한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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