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2003.10.09

LG, 회장님 엄명이면 불법행위도 가능?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0-01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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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회장님 엄명이면 불법행위도 가능?

    ‘고객사랑’을 내세운 LG텔레콤의 광고.

    “어, 이건 내 번호잖아.”

    9월22일, LG텔레콤 사이트에 접속한 LG상사 직원 A씨는 자신이 이미 ‘고객사랑 모니터링 패널’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고객사랑 모니터링 패널’이란 LG텔레콤이 019(LG텔레콤) 외 휴대전화 서비스, 즉 011·017(SK텔레콤), 018(KTF) 사용자 정보를 모으기 위해 벌인 일종의 사내 캠페인. LG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LG텔레콤과 ‘패널’을 잇는 ‘서포터’가 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내년 1월1일 번호이동성제(=번호유지제: 쓰던 번호를 유지하면서 사업자를 바꿀 수 있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타사 가입자 정보를 모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LG가 그룹 차원의 ‘압력’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계열사 직원 1인당 40~100명분의 타사 가입자 정보를 모아올 것을 요구한 점이다. 이에 LG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는 때 아닌 ‘011, 017, 018’ 번호 확보 쟁탈전이 벌어졌다. 중복 등록이 불가능한 때문에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011 고객인 A씨 역시 자신부터 패널로 등록하려 했으나 알지도 못하는 타 계열사 직원이 먼저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화가 난 A씨는 이 타사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경위를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기가 막혔다. “과중한 업무로 번호 모으기는 물론이요 입력 시간을 확보하기도 힘들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는데, 그에게 타 계열사 정보를 가져다 주었더니 그대로 입력해버렸다”는 것.

    가입자 허락 없이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모으는 것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시한과 할당량에 쫓긴 일부 직원들은 당사자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정보를 입력했다. 회사가 이를 묵인 방조했다는 의혹도 있다. 원래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 외에 주민등록번호, 단말기 종류 및 구입시기, 월평균 이용요금 등까지 입력하게 돼 있는데 어느새 주민등록번호 등 주요 사항 없이도 등록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 문제가 제기되자 LG텔레콤은 “반드시 가입자 동의를 받도록 요청했다. 일부 직원들이 ‘과잉 충성’하느라 무리를 한 것 같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패널’ 모집이 끝난 9월26일까지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계열사 경영진의 독려와 독촉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LG생활건강의 한 직원은 “계열사별 목표 달성 결과를 회장께 보고하도록 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회장) 직접 지시사항이라는 것이다. 상무가 부서마다 돌며 매일 독려했다. 우리 부서만 해도 100% 목표달성을 했다. 허위도 있다. 실명 매칭시스템이 안 돼 있어 사실이 아니어도 등록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LG상사의 경우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LG텔레콤 사장이 상사 부사장을 만난 후 참여 공지가 내려왔다고 한다. 계열사 각 부서장에게 LG텔레콤 직원이 직접 독촉전화를 거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캠페인은 일단 끝났지만 LG 계열사의 사원 익명 게시판은 아직도 이 문제로 떠들썩하다. LG CNS의 한 직원은 “지난해까지는 단말기를 일정 대수 이상 팔게 했다.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소문도 있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올해는 그 소리가 없어 안심했더니 이에 못지않게 골치 아픈 일이 떨어졌다. 아무리 같은 그룹 소속이지만 ‘민폐’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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