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2003.10.02

뚝심 좋은 호박을 닮고 싶다

  • 정찬주 / 소설가

    입력2003-09-24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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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 좋은 호박을 닮고 싶다
    올해 우리집 고추 수확은 이웃 농가보다 한두 주일 늦었다.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한가하게 구경만 하는 동안 농부들은 서둘러 고추를 따다가 산길에 널곤 했던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께서 고추를 따지 않았더라면 잦은 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 틀림없다. 농사꾼이 되려면 눈치도 빨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추 수확이 한 번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붉게 익은 것만을 가려 따다가 말려야 하기 때문에 서너 차례는 더 손이 바빠진다. 이틀 전에도 며칠 전에 수확한 고추를 평상에 널어놓고 말리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비닐을 씌웠다. 그런데 하마터면 애써 딴 고추를 말려보지도 못하고 다 썩혀버릴 뻔했다. 일기예보를 잘 듣지 않는 탓에 다음날까지 비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에 충실한 삶,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서야 예감이 이상해 비닐을 슬쩍 걷어보니 벌써 고추 한쪽이 물렁물렁해지고 검게 변해 있었다. 비를 맞으며 큰 플라스틱 바구니에 고추를 담아 군불을 때는 방에 널어놓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초가을인데도 방에 뜨끈뜨끈하게 불을 넣었다. 아궁이가 동쪽에 있고 굴뚝이 서쪽에 선 까닭에 초가을 태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는 폴폴 잘 솟아준다.

    이런 일상을 겪으면서 느끼는 게 있다. 유비무환. 왠지 진부하고 곰팡내를 풍기는 듯한 단어지만 삶의 지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내일 날씨는 괜찮겠지 하고 고추를 비닐로 덮은 채 평상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마도 다 망치고 말았으리라.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얼마나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순간에 충실한 삶이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니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30여년 전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문경 봉암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서암 스님께서 조실(祖室)로 계실 때였다. 서암 스님을 뵈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밤에 스님이 거처하는 방으로 올라가 이런저런 말씀을 들었다.

    조실 스님의 노안에는 봉암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지정된 지금의 봉암사는 ‘특별’자 붙은 선원답게 엄격하기도 하고 냉랭한 기운이 감돌지만 그때는 절 입구에서 누런 어미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절과 밖을 경계 짓는 철문도 없었다. 밭에서 감자를 캐는 스님들의 모습도 훤히 드러나 보였다.

    조실 스님의 말씀을 참 편하게 들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 듯했다. 너무 오래되어 스님의 말씀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린다면 아마도 이 한마디가 남지 않을까 싶다.

    ‘현전일념(現前一念)하라.’

    오늘은 그 말씀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현전은 눈앞이고 일념은 한 가지 생각이니 눈앞의 한순간 한순간에 집중해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젊은 그때는 ‘최선을 다해 살라’ 정도로 가볍게 여겼었다.

    고추 얘기가 너무 사변(思辨)으로 흐른 느낌이다. 사변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연못을 한 바퀴 돌거나 밭으로 나간다. 연못을 도는 것은 연못에 핀 수련을 보고 있으면 잡념이 가시기 때문이다. 수련이 한창 무리 지어 피어날 때는 연못이 환했는데, 지금은 서너 송이만 피어 지난 여름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무씨와 배추씨를 뿌린 지 보름이 된 밭두둑은 잎이 제법 자라 푸르다. 어찌 된 일인지 무는 잘 자라는데 배추는 벌써 병치레를 하고 있다.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땅콩 잎이 무성하다. 참을 수 없이 궁금하여 한 뿌리 캐보았더니 땅콩 한 개가 따라 나온다. 누에고치처럼 생긴 껍질을 까보니 땅콩 알이 여물고 있는 중이다.

    올해 호박농사는 풍년이라 할 만하다. 호박국을 수시로 끓여 먹고도 남아 친척이나 친구더러 가져가게 하고 아내가 내려오면 서울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물론 호박씨를 얻을 셈으로 남겨둔 호박도 있다. 대문 앞에 있는 호박인데 의자 같은 받침대 위에서 꿈쩍 않는 녀석을 보면 엉덩이가 무거운 절구통이 생각난다.

    녀석은 묵묵히 앉아 버티는 것이 장기인 모양이다. 자신의 몸속에 씨를 가득 배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은 저 뚝심 좋은 호박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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