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2003.10.02

한 푼이라도 더 쓰게 “열려라 지갑”

할인점들 증정·에누리 등 ‘미끼 상품’으로 고객 유혹 … 과소비 조장·가격질서 혼란 등 부작용 우려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09-24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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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푼이라도 더 쓰게 “열려라 지갑”

    청주 상권을 집어삼킨 이마트 청주점.

    8월29일, 제주시 노형동에 신세계 이마트 ‘신제주점’이 들어섰다. 원래 지역 토착 할인점이 있던 이곳에 이마트가 들어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미 삼도2동에서 제주점을 운영하고 있던 이마트는 제주에 새 점포를 열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노른자위 상권에 할인점을 열기 딱 좋은 자리가 나고, 먼저 차지하지 않을 경우 경쟁업체가 들어서 이마트 제주점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공산이 커진 것이다.

    마침내 신제주점을 열기로 한 이마트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개점일 손님이 적게 오도록 할까’ 하는 것이다. 할인점 개점일에는 다양한 경품·할인 행사 등을 통해 고객을 최대한 끌어 모으는 것이 상례. 그러나 이마트는 “재벌이 제주 다 털어간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 걱정스러웠다. 결국 개점 행사는 최대한 간소히 치르되 ‘이마트는 감귤, 은갈치, 도새기(통돼지), 세척 무 등 약 680억원 상당의 제주지역 특산물을 전국 56개 점포에서 판매하고 있어 제주 특산물 최대 판매 유통업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데 주력했다. 대형 할인점 지역 마케팅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지역정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형 할인점의 지방 상권 장악은 예정된 승리나 다름없다. 그만큼 경쟁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할인점의 경쟁력이란 곧 ‘고객의 닫힌 주머니를 여는 가공할 상술’. 계획된 것 이상의 소비, 즉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할인점 마케팅의 알파요 오메가다.

    할인점 경쟁력의 요체는 아무래도 가격이다. 이마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까르푸, LG마트 등 전국적 유통망을 갖춘 대형 할인점들은 공히 고객들에게 ‘우리보다 더 싸게 파는 곳이 있으면 보상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 같은 초저가 공세는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지역 할인매장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대형 할인점만의 강점이다.

    전단지·포스터·입소문 등으로 ‘싸다’ 이미지 집요한 홍보



    ‘가격파괴’라는 할인점만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할인점들은 다양한 전략을 구상한다. 최저가격 보상제 외에도 각종 전단지, 포스터, 입소문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싸다’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흔히 신문에 끼여 배달되는 할인점 홍보지가 빨간색, 초록색 등 원색을 과다 사용해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릴 만큼 가격을 강조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할인점 사업이 일반화한 지금, 경쟁력의 핵심은 가격에서 ‘구색’과 ‘요지 선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낮은 가격은 ‘기본’이며, 고객 유치를 위한 보다 중요한 것은 가깝고 주차하기 편한 입지, 다양한 상품과 생활편의시설이라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쓰게 “열려라 지갑”

    청주 서문시장 맞은편에 세워진 까르푸와 이마트 전주점.

    이로 인해 할인점 상륙 초기 1만~1만5000개 정도이던 SKU(상품 품목수)는 2000년에는 2만~3만개, 현재에는 5만~6만개(예비 포함 10만개)로 대폭 늘었다. 매장 크기도 날로 대형화하고 있다. 초기 2000평 정도이던 것이 지금은 3000~3500평이 보통이다. 아파트 밀집지역 등 유망상권 선점 경쟁도 치열하며 할인점 내에 극장, 미용실, 스포츠센터, 의류 매장, 패밀리 레스토랑 등을 입점시키려는 노력도 도를 더해가고 있다. 완벽한 ‘원스톱 쇼핑’ 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초저가, 고품질(특히 신선식품), 다양성, 편리성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만 구현 가능한 대형 할인점의 경쟁력은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극대화된다. 또 친절한 점원, 효율적인 쇼핑 환경은 일반 소매점의 무신경한 고객 접대, 어수선한 매장 등에 염증을 느껴온 지역 주민들에게 ‘소비자는 왕’이라는 ‘자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생활 수준 자체가 업그레이드됐다는 ‘환상’마저 품게 한다. 까르푸 대전 유성점 관계자는 “일부 지역 주민들이 할인점 차량에 돌을 던질 만큼 반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 쇼핑을 위해서는 재래시장 대신 할인점을 찾는 것은 대형 할인점의 경쟁력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대형 할인점은 매장 운영과 세일즈 프로모션에 있어서도 첨단을 달린다. 고객 동선 연구는 기본. 고객들이 주로 왼쪽으로 도는지 오른쪽으로 도는지, 어떤 상품을 만나면 진열대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는지, 어디쯤에 행사 상품을 두면 눈길을 끌 수 있는지 등을 일상적으로 체크한다. 목적성 상품은 진열장 깊숙이 박아놓는다든가, 계절 감각이 잘 사는 과일·야채 코너는 매장 어귀에 둔다든가 하는 기본원칙들은 이렇게 세워진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쓰게 “열려라 지갑”

    이마트 청주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주부들.



    매장 여기저기에는 필요에 따라 ‘장애물’(이동식 진열대)들을 설치한다. 여기에는 시즌 주력 상품, 판매마진이 큰 상품, 재고가 많은 상품 등이 주로 진열된다. 까르푸처럼 진열대 간 통로가 널찍한 매장일수록 효과는 극대화된다. 대형 진열대 양끝은 행사 상품 등 눈에 잘 띄는 제품들이 차지한다.

    ‘오늘은 식료품만 사야지’ 하고 갔다가 신발이며 이불까지 사오게 되는 곳이 할인점이다. 이를 부추기는 방법 중 하나가 점내 광고와 포스터다. 그 층과는 상관 없는 제품의 할인·행사 상황을 포스터 등을 통해 알려 다른 층까지 동선을 확대한다. 언뜻 별 상관이 없어 뵈는 상품들을 한자리에 배치, 연계 효과를 얻기도 한다. 여름 신선식품 옆에 시원한 느낌의 유리그릇을 놓아두는 식이다. 바캉스철, 입시철, 어버이날 등 시즌에 맞춰 개최하는 각종 이벤트와 시음·시식·경품 제공 등 판촉행사는 이미 일반화한 사항이다.

    증정, 에누리, 한정가격 행사 등은 과소비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하나를 사면 둘을 준다, 칫솔을 사면 치약을 준다, 과자를 사면 바구니를 준다, 재료를 사면 양념장을 준다는 식의 증정이 대표적이다. 이마트 방종관 마케팅 팀장은 “증정 관련 프로모션이 많은 것은 생산업체가 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값 자체를 깎아주는 에누리나 한정판매는 가격 질서 자체를 흔들어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이처럼 ‘더 주거나 깎아주는’ 판매방식으로 인해 고객들은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고도 자책감보다 싸게, 잘 샀다는 만족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도시와 지방소도시 마케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방종관 팀장은 “대도시 고객들은 익명성을 띤 개별적 존재들이지만 지방 고객은 소비자인 동시에 지역 주체다. 또 경제가 낙후된 지역의 소비자일수록 서울 및 대도시에 대한 거부감과 피해의식이 큰 까닭에 조심스런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족하면서도 지역 주체라는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할인점 입장에서는 집단적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마케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마트 신제주점처럼 ‘지역 기여도’를 강조하거나,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단체에 기부하고 장학사업에 활용하는 등의 지역 밀착 방안이다.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의 거부감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홈플러스 대구점 관계자는 “처음에는 ‘삼성 라인 회사’라는 점 때문에 많은 지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자동차 문제가 불거지자 정문 앞에서 ‘물러가라’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분위기가 영 안 좋았다. 지금은 다시 판매가 정상화된 상황이다. 대구·부산처럼 정서가 폐쇄적인 지역이나 영동·전북 등 낙후된 지방은 처음 진입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자리잡고 나면 오히려 매우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과소비를 부추겨 고객의 경제생활에 오히려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인점측은 “어디까지나 소비자 자신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한 대형 할인점 마케팅 책임자는 “월 10만원 쓰던 집이 할인점 때문에 20만원을 쓴다 치자. 10만원 쓰던 시절에는 15% 정도의 할인을 받아 그에 합당한 ‘가치’를 가져갔다면, 할인점에서 20만원을 쓰면서는 30%의 할인을 받아 그 두 배+30%의 ‘가치’를 가져가게 됐다. 돈은 10만원 더 쓰게 됐지만 큰 할인폭으로 인해 지불한 돈에 비해 더 많은 이익을 누리게 된 것 아닌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비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할인점은 장사꾼일 뿐인 만큼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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