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0

2003.09.04

제정 러시아 심장, 문화·예술의 모든 것

  • 글·상트페테르부르크=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사진·J.P.F 심재두/러시아 관광청

    입력2003-08-28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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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정 러시아 심장, 문화·예술의 모든 것

    페테르부르크의 토끼섬 전경.

    누가 그랬던가. 이 도시를 알게 되는 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다고. 북위 60도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핀란드만에 맞닿은 이 도시에는 한여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가 계속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300년 전 네바강 삼각주의 늪과 섬에 지어진 이 ‘물 위의 도시’는 이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우리에겐 옛 소련(현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로 잘 알려진 이 항구도시에는 무려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있다. ‘북방의 베네치아’ ‘제2의 암스테르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운하와 강 사이로 그 하나하나마다에 러시아 근세사의 애증이 짙게 스며들어 있는 화려한 궁전과 유럽풍의 각종 건축물, 대사원, 성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겐, 특히 푸시킨이나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애독한 사람들에겐 이 도시의 지명과 건축물의 이름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페테르부르크 곳곳을 배경으로 해 씌어졌기 때문. 페테르부르크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로 추앙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만명 목숨 희생 … 사회주의 혁명 출발점

    제정 러시아 시대의 영광과 예술성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기적의 도시이자 혁명의 도시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최초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피터 대제)가 1703년 ‘서유럽으로 가는 창’ 역할을 할 새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으로 9년에 걸쳐 완성한 계획도시. 하지만 네바강 삼각주와 핀란드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스웨덴을 포함한 서방세계로 진출할 요지였던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수만명의 하층민들이 죽어갔다. 건축가, 기사들이 전국에서 징용되거나 해외에서 초빙되었고, 4만명의 농노와 5000명의 기능공들이 동원됐다. 핀란드어로 늪을 의미하는 네바강 삼각주의 습지와 밀림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푸시킨이 그의 서사시 ‘청동기사’에서 페테르부르크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적의 도시는 그렇게 해서 완성됐고, 표트르 대제는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도 표트르 대제가 자신과 성인 베드로를 따 지은 것.

    하지만 민중에 의해 세워진 로마노프 왕조는 황제들의 사치스런 예술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히려 민중을 착취했다. 로마노프 왕조는 210여년 동안 민중의 뼈 위에 건설된 이 도시에 30여곳이 넘는 호화스런 궁전과 성당, 사원을 짓기 위해, 또 이곳을 장식할 수십t의 황금과 보석을 확보하기 위해 민중을 수탈하고 전쟁을 계속했다. 역설적이지만 러시아 황실의 심장이었던 바로 이곳에서 1905년 5월, 10월 혁명과 1917년 10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러시아 황실의 자랑거리였던 수병(水兵)들은 황제가 사는 궁전을 향해 사정없이 대포를 쏘아댔고,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 레닌 동상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곳이 레닌의 고향이자 사회주의 혁명의 불을 당긴 곳인 까닭이다. 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은 1924년 레닌 사망 후 레닌그라드로 변경됐다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난 후에야 다시 옛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제정 러시아 심장, 문화·예술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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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 성당과 니콜라이 1세 기마상. 로마 베드로 성당을 본떠 지은 카잔 성당. 넵스키 대로 전경(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하지만 이런 뼈아픈 ‘민중 동원’과 ‘착취’의 역사는 이제 찬란한 문화재와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도시 자체가 문화재라 할 정도로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다. 일반인들이 사는 건물 대부분이 시 또는 유네스코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돼 증·개축이 제한될 정도다. 시내 전체에 퍼져 있는 365개가 넘는 다리 하나하나에도 대가(大家)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도심에 들어선 사람들은 누구나 ‘혹시 18, 19세기 유럽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백화점도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현대식 건물은 시 외곽에 있는 공항과 아파트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시내의 모든 건물들은 바로크, 고딕, 비잔틴 양식 등 중세나 근대 양식으로 지어졌고, 요즘도 내부만 수리해서 쓰고 있다.

    러시아 황실이 심혈을 기울여 모은 전 세계의 미술작품은 이 도시를 세계적인 미술박물관의 도시로 만들어놓았다. 실제 페테르부르크를 찾는 관광객들 중 세계적 화가들의 미술품을 직접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으며 에르미타주 박물관, 러시아 국립박물관 등에서는 대가들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화가나 화가 지망생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를 보존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이 도시를 사방에서 포위 봉쇄하고 1년간 식량과 무기의 반입을 막았으나 시민들은 50만명이나 희생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해 도시를 지켰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모스크바가 심장이라면 페테르부르크는 그들의 혼이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강하기로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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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품인 페테르부르크를 제대로 보려면 이처럼 러시아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있어야 한다. 아무 사전지식 없이 보아도 좋지만 미리 정보를 통해 이해하고 보면 그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 역사책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여름 관광 성수기가 아니면 직항편이 없어 모스크바나 파리를 경유해 들어가야 한다. 여름 성수기에만 있는 러시아항공 직항편의 경우도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스크바나 파리를 경유하거나 모스크바에서 ‘붉은 화살호(RED ARROW)’라는 밤 기차(밤 12시 출발, 침대차)를 이용해 페테르부르크에 들어온다.

    일단 페테르부르크 시내로 들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부터 구경해야 할지 한순간 멍해진다. 마치 20가지 이상의 반찬이 차려진 전라도식 백반 상을 처음 받았을 때의 막막한 느낌처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로 현지 가이드와 함께 단체로 관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 심장, 문화·예술의 모든 것

    표트르 대제가 지은 여름궁전과 그곳의 분수. 네바강 운하와 피의 사원 전경(왼쪽부터).

    하지만 이 도시가 철저한 계획도시라는 점을 알고 조금만 정보를 모으면 생각보다 쉽게 관광할 수 있다. 넵스키 대로를 중심으로 한 시내 지역, 네바강 주변 지역, 아름다운 궁전을 구경할 수 있는 시 근교 지역으로 코스를 나누어 둘러보면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최대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그래도 4~5일은 걸려야 이곳에 있는 30여곳의 명승지를 일견할 수 있다.

    네바강은 페테르부르크의 요람이다. 길이 28km의 강변이 각양각색의 화강암으로 장식돼 있으며 각 나루터와 다리에는 항아리 모양을 한 이국풍의 조각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상도 있다. 네바강은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드나들던 곳으로 지금도 이 강 위에 놓인 8개의 대형 다리들은 밤 9시가 되면 배의 통행을 위해 일제히 상판을 들어 올린다. 1917년 러시아 황궁을 향해 대포를 쏘며 사회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오로라호도 이곳을 지났으리라. 순양함 오로라호는 네바강변에 박물관으로 남아 러일전쟁에서의 패배와 혁명 전야를 증언하고 있다.

    쉽게 못 가지만 가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

    네바강을 따라 가면서 꼭 보아야 하는 곳이 겨울궁전과 토끼섬 요새, 여름궁전이다. 역대 황제들의 거처였던 겨울궁전은 부속건물을 개조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유명하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이곳에는 250만점의 미술품이 보관돼 있다. 1분에 한 점씩 봐도 다 보는 데 5년이 소요될 정도로 방대하다. 특히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세잔, 고갱,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의 진품 그림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 자체가 진풍경이다. 토끼섬(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는 표트르 대제가 1701년 스웨덴 정벌과 수도 방어를 위해 만든 요새로 페테르부르크 건설의 모태가 된 곳. 이 요새 안에는 높이 12m, 두께 4m의 성채가 6개 있으며 문학가, 예술가, 혁명주의자를 가두는 감옥이었던 성 내부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곳에 있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성당은 첨탑 높이가 121.8m로 러시아에서 가장 높고, 첨탑의 천사상은 무게가 무려 550kg에 달한다.

    네바강의 오른쪽 강변에 있는 건축예술의 파노라마, 멘시코프 궁전과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건물, 도매거래소 건물 등을 감상하다 강의 끝자락인 여름궁전에 도착하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표트르 대제가 러-스웨덴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든 분수가 성서에 나오는 영웅 삼손상, 그리스 로마 신상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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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판을 들어올린 네바강의 교각. 페테르부르크 거리의 악사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진품. 방 전체가 보석으로 만들어진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실(위 부터).

    13세기 몽고군의 침략으로 붕괴된 러시아를 구원한 알렉산드르 넵스키를 기념해 만들어진 넵스키 대로는 모스크바역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이르는 4km의 짧은 도로. 하지만 그 주변에는 겨울궁전 뒤편의 궁전 광장, 표트르 대제의 기마동상(푸시킨이 청동기사상이라고 비하한 그 동상)이 있는 데카브리스트 광장, 카잔 성당을 끼고 있는 예술의 광장, 이삭 성당과 니콜라이 1세의 기마상이 있는 이삭 광장 등 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예술혼을 간직한 불멸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넵스키 대로의 시작인 넵스키 수도원 옆에는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묘지가 있어 많은 예술인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이삭 성당은 건축학의 불가사의이자 모자이크 예술의 극치라고 평가받는 러시아 건축의 백미다. 이삭 광장 인근에는 또 하나의 궁전인 마리야 궁전이 있다. 카잔 성당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지만 성베드로 성당보다 더 웅장해 보이며 건물 자체가 거대한 조각품이나 다름없다.

    그 앞에 있는 대조국 전쟁(나폴레옹 전쟁)의 영웅 쿠투조프 장군 동상을 뒤로하고 대로를 걷다 보면 청년장교 데카브리스트들의 반란이 있었던 광장이 나오고 표트르 대제의 동상 밑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고 있는 러시아 신혼부부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성당과 궁전에 기가 질린 사람이라면 카잔 성당 인근의 문학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러시아의 시성(詩聖) 푸시킨의 시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1837년 푸시킨이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공작과 결투하러 가기 전 아침식사를 했던 장소로, 이후 200여년 동안 러시아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푸시킨이 실제 결투에 사용한 총이 전시돼 있고 그의 서재와 책들이 그대로 보관돼 있는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시간이 있다면 해군성 건물과 알렉산더 2세가 폭탄에 맞아 숨진 곳에 세워진 피의 사원을 구경하고 시외로 향하는 것이 좋다. 특히 피의 사원은 황금색 일색의 성당 지붕양식을 탈피, 화려한 색조의 외관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공 구조물과 예술품에 식상할 즈음 페테르부르크 근교에 있는 파블로프스크 궁전이나 황제의 마을 궁전(예카테리나 궁전)을 찾으면 푸근함과 휴식을 찾을 수 있다. 궁전이 호수와 연못, 나무들과 어우러져 자연공원처럼 보이는 곳이다. 특히 최근 복원공사를 마치고 공개한 예카테리나 궁전 안의 호박방은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헛걸음칠 가능성이 높다.

    페테르부르크 현지 교민들은 “쉽게 올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곳이 페테르부르크”라고 말한다. 페테르부르크는 아시아와 유럽, 동방과 서방 사이에 끼여 이들 모두의 문화적,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풍광은 이국적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만큼은 한국인과 놀라우리 만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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