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9

2003.08.28

미술과 패션, 그리고 사진의 어울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8-2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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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과 패션, 그리고 사진의 어울림

    ① 고쵸, 사진 낸 골딘, 의상 아네스 베,1996 ② 사진 김중만,의상 최연옥, 2003 ③ 사진 김우영, 의상 라코스테, 2002 ④ 사진 구본창, 의상 에스카다 쿠튀르, 2002

    패션과 사진, 그리고 미술은 오랫동안 서로를 흠모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셋은 공식적으로 서로 적개심을 내보이거나 모른 척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패션과 사진, 미술이 서로 ‘다르다’고 강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미술, 즉 ‘순수’ 예술에 대한 낭만주의적 신화가 아주 최근까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현대미술의 ‘표준’을 보여주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아르마니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이후 패션과 사진, 미술은 근친관계에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동업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그 이전부터 셋은 서로 상대방의 뮤즈가 되어왔다. 톱 디자이너의 무대를 만든 사람은 세계적인 미술작가였고, 모델의 포즈를 결정한 것은 사진작가였으며 전시 오프닝에서 가장 환영받는 손님은 패션 디자이너들이었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꼽히는 뉴욕 화랑 중 절반에서는 패션사진을 전시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미술관들도 패션 디자이너와 패션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을 표방한 대림미술관에서 패션사진전이 자주 열리는 것은 그래서 너무 당연하며, 이들 패션사진전은 늘 패션과 사진, 미술 세 분야 관계자들로부터 대단한 주목을 받는다. 여기서 9월7일까지 열리는 패션사진전 ‘다리를 도둑맞은 남자와 30개의 눈’전에도 매일 2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사회, 문화적 정신 한자리서 감상



    ‘다리를…’에서 다리를 도둑맞은 남자는 개념미술가 고쵸를 가리키고 30개의 눈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패션사진가 30인(30개의 카메라)을 가리킨다. 고쵸는 헬스클럽을 배경으로 하여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자신의 몸을 친구인 사진작가 낸 골딘으로 하여금 촬영하게 한 뒤 실물 사이즈의 사진 위에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옷을 꿰매어 입히도록 제안했다. 근육질의 몸과 하늘거리는 시폰이 결합한 사진들은 유머를 통해 동성애로의 반전을 이루며 관습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표현에 이르게 된다.

    한편 1960년대 유지인 김지미를 모델로 한 김한용의 사진에서 최근의 김중만, 구본창, 조세현, 김우영의 패션사진을 아우르는 ‘30개의 눈’은 패션사진이 점점 더 개념적이 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패션사진은 패션용품의 설명서가 아니라 스타일의 사회, 문화적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패션사진은 늘씬한 모델이나 화려한 옷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당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콘텍스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 있는 매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적 논의의 대상이지요.”(이수균 대림미술관 학예실장)

    그러나 전시 제목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리를 도둑맞은 남자’와 ‘30개의 눈’이 하나의 몸통에 대한 묘사가 아니란 점이다. 그래서 ‘30개의 눈이 있는데도 다리를 도둑맞는’다든가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전시장의 고쵸와 한국의 패션사진가 30명은 전혀 다른 콘텍스트를 위해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한 전시장 안에 섞인 이들의 사진이 서로 서먹하게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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