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9

2003.08.28

“이젠 쉬쉬 안 해” … 스타들 법대로 산다

이미지 훼손 우려 법적 분쟁 기피는 옛말 … 초상권·명예훼손 등 소송 제기 줄 이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8-21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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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쉬쉬 안 해” … 스타들 법대로 산다

    새로운 유형의 소송에서 ‘원고’가 된 스타들과 문제가 된 이미지들.문희준과 디지털 합성사진, 전지현과 전지현이 모델로 등장한 광고(왼쪽부터)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고소 고발 등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다. 피고 입장이든 원고 입장이든 검찰이나 법원에 드나드는 모습만으로도 ‘스타’는 천상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고소 고발 사건은 스타의 ‘통과의례’가 된 듯하다. 법률적 분쟁이 연예인의 이미지를 해치기는커녕, 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수십억원대 배상 소송이 벌어지면 어마어마한 스타의 몸값이 홍보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소사건의 주인공이 된 스타들만 해도 문희준, G.O.D., 전지현, 장서희, 윤다훈, 김정균, 편승엽, 길은정 등 10여명에 이르며 매년 급증하는 추세라는 게 법조 전문가들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을 표방한 법무법인 두우의 최정환 변호사는 “1999년엔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연예인 관련 사건을 혼자 처리했는데, 지금은 다섯 명의 변호사가 나눠서 처리할 만큼 관련 사건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주먹다짐에서 비롯된 윤다훈과 김정균의 고소사건이나 부부였던 편승엽, 길은정 사건은 전부터 있어온 사적인 차원의 소송이지만, 전지현과 광고주 LG텔레콤의 맞고소 사건이나 문희준이 75명의 네티즌을 고소한 사건, G.O.D.가 언론사 타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 등은 스타의 ‘이미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다.

    “이젠 쉬쉬 안 해” … 스타들 법대로 산다

    G.O.D.가 표지로 등장한 ‘타임’의 아시아판.

    톱스타 전지현과 LG텔레콤의 명예훼손에 의한 맞고소 사건은 일단 ‘초상권 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이 받아들여지면서 전지현이 1승을 거둔 상태다. 전지현과 소속사인 ㈜싸이더스HQ를 대리해 LG텔레콤을 상대로 25억원의 손해배상소송과 초상권 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한 곳은 법무법인 ‘김&장’. 우리나라 최대의 로펌인 김&장은 주로 외국인회사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대형 기업체의 M&A 분쟁 등을 다루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이를 두고 이양원 변호사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의 매니저는 개인비서나 운전기사 역할을 했지만 요즘은 모두 기업화하여 연예인들의 ‘재산’인 얼굴과 이미지를 철저히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들이 광고주를 고소하는 일도 벌어진다.”(최정환 변호사)

    “이젠 쉬쉬 안 해” … 스타들 법대로 산다

    국내 처음으로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을 표방한 ㈜법무법인 ‘두우’의 회의 장면.

    연예인들을 모델로 촬영한 뒤 처음 약속한 사용범위를 훨씬 넘어서 슬쩍슬쩍 사용하던 광고주의 계약 위반 관행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이다.

    싸이더스HQ의 박필원 매니지먼트 팀장은 “연예인들은 이미지 때문에 가능하면 법정까지는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전지현 건이 좋은 판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수 문희준이 이른바 ‘안티팬’ 75명과 애니메이션 제작팀 ‘오인용’을 각각 7월14일과 8월14일 고소한 사건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불특정 다수에 의한 명예훼손과 팬 문화를 문제 삼은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 사건은 전 H.O.T. 멤버인 문희준이 ‘록가수’를 표방한 데 분노한 ‘록 마니아’들이 합성사진으로 ‘무뇌충’이란 캐릭터를 만들어 ‘아햏햏’ 문화로 유명한 인터넷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 com)에 올려 ‘복수’를 한 데서 발단했다. 또한 ‘오인용’은 문희준과 닮은 ‘무뇌충’을 주인공으로 ‘연예인지옥’이란 플래시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조회수가 360만건에 이를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문희준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의 최진석 고문변호사는 “연예인의 음악이나 연기력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악질적인 내용이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중 ‘악질’적인 75명과 ‘오인용’만을 고소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군의 팬과 ‘안티팬’들의 싸움이 현실적인 폭력사건으로 이어지는 걸 막자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티팬 햏자’들이 주로 ‘몸담고 있는’ ㈜디지탈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패러디 수준을 벗어난다고 생각되는 사진들은 자체적으로 삭제해왔고,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가수측에서 삭제를 요구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 요구받은 바 없다”면서 “문희준은 주요 고객을 고소한 셈이며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희준이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안티팬’들은 문희준을 패러디한 합성사진과 유행어 ‘쀍’(문희준의 노랫말 중 ‘브레이크’를 희화화한 신조어) 등이 만들어진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새삼 문제삼은 것은 2집 발매에 맞춘 홍보전략이라고 의심한다. 김대표는 “가능하면 좋게 끝내고 싶지만, SM의 감정적 대응으로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이어서 ‘안티팬들은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회사에서 변호사비라도 댈 생각”이라고 말했다.

    언론사를 상대로 한 연예인들의 명예훼손 소송도 부쩍 늘었다. 한 연예인 매니저는 “예전엔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이 언론사 편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균형을 찾은 듯하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해외의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G.O.D. 소속사 싸이더스HQ는 “‘타임’이 우리나라 연예인 비리사건을 다루면서, G.O.D.에게 아시아의 ‘한류열풍’을 다룬다고 속이고 취재를 했다”면서 “‘타임’측의 답변을 보고 소송액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예인들이 언제나 원고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매니지먼트 회사에 의한 손해배상소송건의 피고가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장서희, 김윤진, 하지원, 정다빈, 김래원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톱스타들. 특히 무명시절 수백~3000만원 정도의 계약금을 받고 매니지먼트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억대 스타가 된 경우 이런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흔하다. 스타가 소장에 작성한 계약해지 이유를 보면 ‘기획사가 너무 작다’ ‘매니저가 길에서 사온 김밥을 먹고 탈이 났다’ ‘CF계약을 따오지 못했다’ 등 속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매니저가 착취를 일삼아 전속계약서는 ‘노비문서’란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상황이다. 이미지가 나빠지더라도 연예인들이 소송을 불사하는 이유는 이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스타의 몸값은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담보로 한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송사에 휘말리면 스타의 이미지가 훼손된다. 또한 같은 법적 분쟁에 휘말리더라도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재기에 성공하기도 하고, 완전히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비디오 파문’의 주인공이었던 가수 백지영의 경우 사건을 숨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발뺌을 하기보다 수사를 자청하고 눈물로 공개사과한 점이 유효했다. 사건 이후 여성계까지 그를 감싼 것이다. 반면 마약사건에 연루된 H는 검사들에게 보인 도발적 태도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문희준이 ‘안티팬’을 고소한 뒤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소속사에서 “문희준 자신은 고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반의사 불벌죄’다. 최진석 변호사는 “전화 통화를 통해 문희준이 내게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문희준이 분명 ‘안티팬’들에 대한 처벌을 원해서 소장을 작성했다”고 확인했다.

    최정환 변호사는 “연예 전문 변호사지만 연예인들에게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소송을 하겠다고 찾아오면 일단 말린다”면서 “연예산업의 특성상 ‘상품’들이 빨리 부패한다. 영화의 인기도 길어야 3개월이고 스타의 생명도 극히 짧다. 따라서 연예인들의 가치를 시스템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어야지, 전속금 조금 더 받기 위해 옮겨다니고 또 기획사는 이를 이용하는 악습이 계속되면 곤란하다”고 충고한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연예인 100명 중 톱스타로 성공하는 경우가 채 한 명이 안 될 만큼 ‘불량률’이 높은 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미니멈 개런티’나 ‘인센티브제’ 등으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어야 법적 다툼이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 오랫동안 연예계를 지배하던 돈과 힘을 시스템이 대신해가는 과정에서 법률적 분쟁이 하나씩 판례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매니지먼트 회사와 법조계 관계자들은 고소하고 고소당하는 스타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스타의 모습이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러나 대중이 원하는 스타란 검찰이 아니라 무대와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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