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9

2003.08.28

검찰 “누가 뭐래도 법대로”

동교동계 기획사정 ‘음모설’ 주장 일축 … 권노갑 수사팀 DJ 정부와 악연 전력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3-08-21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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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누가 뭐래도 법대로”

    송광수 검찰총장 (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

    ‘검찰 인사의 정상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

    올 3월 인사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 중수부) 부장에 안대희 부산고검 차장검사(검사장)가 임명됐을 때 검찰 안팎에서는 이런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가 전형적인 ‘특수통’으로 알려져 있었는데도 김대중(DJ) 정부 시절 한직을 맴돌다 노무현 정부 초대 사정 수사 사령탑으로 전격 발탁됐기 때문이다.

    그는 중수부장 취임 이후 대형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검찰 안팎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올 4월에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 재수사 지휘를 통해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과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DJ의 아들 김홍일 의원, 민주당 박주선 의원 등을 사법처리했다(박의원 체포동의안은 현재 국회 계류중임).

    민주당 당직자 “안대희·남기춘 反 DJ 인사”

    안부장이 지휘하는 대검 중수부가 지금까지 낚은 최대어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현대 비자금 150억원+α’ 사건을 수사하다 현대측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권 전 고문을 구속하기에 이른 것. 정치권에서는 권 전 고문이 DJ 정부 막후 실세였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권 전 고문은 현재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현대 돈 100억원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긴 했지만 즉석에서 거절했는데,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권 전 고문은 8월15일 오전 1시 무렵 구속영장이 발부돼 대검 청사를 빠져 나가면서 “이익치씨(전 현대증권 회장)의 허위 자백에 의해 조작됐다”고 거듭 주장했다.

    동교동계 의원들은 한 전 비서실장에 이어 권 전 고문까지 구속되자 잔뜩 움츠리는 가운데서도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노대통령이 DJ와의 차별화를 위해 검찰의 손을 빌려 동교동계에 대한 전면사정을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 동교동계 인사들은 특히 안부장의 전력을 들어 이런 ‘음모론’을 거론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사건을 지휘하는 안대희 중수부장-남기춘 중수1과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반(反)DJ’ 성향의 인사로 분류돼 그동안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사정수사의 핵심 요직에 앉힌 것부터가 민주당 구주류를 겨냥한 의도가 포함돼 있다는 것. 이 당직자는 “권 전 고문에 대한 심문을 호남 출신인 유재만 중수2과장에게 맡긴 것도 대검이 이런 시각을 의식한 때문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안부장의 전력이 거론되는 것은 그가 동교동계와 맺은 ‘악연’ 때문이다. DJ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역임했던 한 인사는 “그가 김영삼(YS) 정부 말기 서울지검 특수3부장을 역임하면서 DJ가 이사장이던 아태재단을 향해 칼날을 겨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1996년 9월 당시 퇴직경찰관 장학단체인 ‘경우장학회’측으로부터 신문가판권을 넘겨받아 9억6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서울시의회 부의장 김기영씨를 구속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씨는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면서 “검찰이 투서를 바탕으로 무리하게 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당시 검찰은 횡령한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집중 추궁했다”면서 “내가 아태재단 후원회 부회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DJ와 동교동계 의원들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는지가 검찰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도 “김기영 부의장을 서울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로 불러놓고 엉뚱하게 아태재단을 후원한 것을 문제삼는 등 정도를 벗어난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남기춘 중수1과장에 대해서는 그가 YS 말기 대통령 사정비서관실에 파견된 것을 문제삼고 있다. 당시 그의 직속상관은 배재욱 사정비서관. 배비서관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폭로한 DJ 비자금 자료를 ‘사직동팀’(지금은 해체된 경찰청 조사과의 별칭)을 시켜 불법적으로 수집, 한나라당 관계자에게 전해준 사실이 당시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 남과장의 관련 여부에 대해 당시 수사 관계자는 “남기춘 과장의 경우 배재욱 비서관의 지휘를 받는 입장이어서 수사 대상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을 흐렸다.

    YS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안부장과 남과장이 DJ 정부에서 좌절한 것을 두고 이런 전력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있다. 안부장은 후배들보다 2년여 정도 늦은 지난해 8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남과장은 DJ 정부 시절 두 번씩이나 대구고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고검 검사는 수사권이 없어 한직으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안부장과 남과장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들은 “두 사람을 ‘반 DJ’ 인사로 모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한 중견 검사는 “김기영씨 사건의 경우 어떤 검사가 맡더라도 그가 올바른 검사라면 안부장과 같은 방식으로 수사했을 것”이라면서 안부장을 옹호했다. 남과장 역시 유능하다는 이유로 청와대에 ‘징발’됐을 뿐 불법적인 DJ 비자금 조사와는 무관하다는 것.

    검찰 안팎에서는 ‘음모설’에 대해 대체로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잣대로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온 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DJ 정부에서 물먹은 간부들의 중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DJ 정부 시절 잘나갔던 특정 지역 출신 간부들이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의 축소 수사에 개입하거나 인사상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퇴출’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올 3월 인사를 두고 “옥석을 가리지 않고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무조건 불이익을 주고, 다른 지역 출신은 무조건 우대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검찰수사가 정도를 걷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특정 지역 편중 인사 시정을 통한 ‘검찰 인사의 정상화’는 ‘검찰의 정상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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