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전기요금의 거짓말

전력판매권 기업에 팔면? 고양이 앞에 생선 준 꼴!

정부, 합리 명분 삼아 판매시장 민영화 계획 발표…OECD 민영화 국가들 재공영화 움직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8-12 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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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 수급과 비싼 주택용(가정용) 전기요금 문제가 매년 여름 ‘뜨거운 감자’가 되자 드디어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6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에너지 공공기관의 기능을 조정해 전력 공급 시스템의 불합리를 고쳐가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시된 방안들을 들여다보면 의아하기 짝이 없다. 핵심은 전력판매시장을 민영화한다는 것. 정부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독점하던 전력판매시장에 경쟁을 도입해 원가 절감 및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거 공기업 독점체제에서 민간에 개방한 통신, 석유 등의 가격이 전부 올랐기 때문. 시민단체와 전국전력노동조합(한전노조)은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하면 전력 소비자는 손해를 보고 대기업만 배를 불릴 것”이라며 반대했다. 소관기관인 한전에서도 전력판매시장 개방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한전이 과거 내부 보고서를 통해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하면 전기 가격이 오르고 고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야당 의원뿐 아니라 여당 의원도 사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6월 14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전이 전력판매시장을 독점해 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받는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전력판매시장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해 원가를 절감하고 나아가 다양한 사업모델을 창출해 고용까지 늘리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전력판매시장 민영화의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올해 안에 산자부가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전력판매시장 민영화가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 기대하지만 시민단체와 발전업계는 정반대 예측을 내놓았다. 한전 외 다른 업체가 들어와도 담합이 생길 확률이 높으며 종국에는 전기요금이 오히려 인상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유사하게 민영화된 통신사업을 보면 자유경쟁이 아닌 몇 개 대형업체의 과점시장이 됐다. 물론 다양한 통신결합상품이 생겼지만 내용이 복잡해 실제로 통신비가 올라도 소비자는 확인할 길이 없어 계속 결합상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통신과 전력은 필수재적 성격이 강해 가격이 올라도 소비자는 대부분 그것을 감내한다”고 말했다. 발전업계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신동진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은 “한전처럼 공기업이 공공 독점하면 정부 차원의 통제가 쉽지만 만약 전력사업이 통신사업처럼 대기업 위주로 과점화된다면 통제하기 어렵다”며 “전력노동조합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전력판매시장 민영화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민영화 국가들의 후회

    일부 연구단체는 전력판매시장 민간 개방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전력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했고,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4년 3월 26일 ‘전력수급과 발전설비 투자시장의 효율성’이라는 보고서에서 OECD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자료를 인용해 “전력판매시장을 성공적으로 자유화한 국가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전력판매시장을 민영화한 OECD 회원국들이 최근 들어 후회하고 있다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민영화 초기에는 전기요금이 소폭 줄었지만, 갈수록 비싸졌기 때문이다. 기초전력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해외 주요 국가 판매 부문 정책동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시장을 민영화한 OECD 회원국들이 도입 초기에는 가격 인하 효과를 봤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오히려 상승했다. 전력 가격이 오른 것은 독점 공기업이 가격을 규제할 때와 달리, 연료비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최종 소비자에게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특히 신규 판매사의 경우 대규모 일반용, 산업용, 대용량 주택 등 수익성이 높은 전기를 주로 공급하려는 경향이 강해 일반 소규모 소비자들에게 요금 인상분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은 전력산업 민영화 후 국민적 불만이 커져 재공영화를 논의 중이다. 1990년대 민영화를 마친 독일은 2000년 이후 다시 공영화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00년을 기점으로 독일의 에너지 분야 공기업 수는 23% 증가해 현재 1100개 이상의 공적자본이 지역 주민을 위한 공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전도 전력판매시장 민영화 반대했지만

    이처럼 세계적 상황이 전력판매시장 민영화의 문제점을 드러내는데도 소관기관인 한전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6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제4차 에너지·자원 관련 소관기관 업무보고에서 “OECD 회원국 중 공공기관이 100% 독점적으로 전력을 판매하는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라며 “전력판매시장의 단계적 개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전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전력판매시장 민영화에 부정적이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윤한홍 의원은 6월 23일 해당 상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전력판매 분야에 소매경쟁(민간 개방)을 도입할 경우 초기 가격 인하 이후에는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데다 서비스 질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한전 내부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한전은 이 보고서에서 “전력판매 분야가 민간 개방될 경우 경쟁에 의한 가격 인하 효과는 희박한 반면, 복잡한 요금제와 가격 상승으로 전력 소비자의 불만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관기관도 확신이 없는 정책에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전기요금이 원가 이상인 구간은 민간이 가져가고 원가 이하인 구간만 한전이 맡을 개연성이 있다. 결국 한전의 재무상황이 악화돼 가정용이나 농업용 전기요금이 올라갈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도 “정부가 공기업 부실의 원인을 검토하지 않고 구조조정 측면에서만 보고 업무를 민간에 떠넘기고 있는 격”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전 내부 보고서를 공개한 윤한홍 의원은 “전력 부문 경쟁을 통한 효율성 증대와 산업 활성화는 바람직하지만 정부가 전력 가격 상승 우려와 서비스 질 하락, 안전성 문제 등 국민적 의구심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방향이 맞아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전기료 부담 덜어준다던 심야전기, 알고 보니 요금 폭탄

    전기요금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시원치 않아 심야전기를 고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요금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10년간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심야전기요금을 꾸준히 인상해왔기 때문이다. 심야전기라고 방심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2002년 도입된 심야전기요금은 전기 사용이 적은 심야시간(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9시)에 축열·축냉 기능을 갖춘 심야전력기기를 충전하는 데 적용하는 요금제다. 도입 당시에는 낮 시간 냉난방을 할 때의 전기요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해 심야전기 보일러설비를 갖춘 사용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전이 지속적으로 요금을 인상하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전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심야전기요금을 겨울엔 kWh당 29.80원에서 72.50원으로, 이외 계절은 26.60원에서 52.60원으로 높였다. 게다가 심야전력 냉난방기기는 보통 월 500kWh 이상 전기를 소비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체감 상승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경기 안양시에서 지난해까지 심야전기를 사용해 난방을 했던 박모(65) 씨는 “최근 심야전기요금이 오르면서 용량이 큰 전기보일러의 요금 부담이 커졌다. 심야전기 사용을 권장할 때와는 다르게 현재 전기요금은 너무 비싸다”며 심야전기 사용을 중단한 이유를 밝혔다.

    한전이 심야전기요금을 올린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전력 부족으로 발전 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LNG발전소가 심야전기를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심야전기제도 시행 초기에는 값싼 원자력발전소의 전력 공급이 가능했지만 전력 부족 시기에는 LNG발전소까지 가동해 심야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심야전기 수요가 늘면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한전의 심야전기 누적 손실액은 3조6730억 원을 넘어섰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기 사용량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는 축열식 히트펌프 보일러 보급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대당 1000만 원 가격으로 한전 보조금 200만 원이 지급되지만, 800만 원 비용을 지불해야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지난해 보급 목표인 3000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800대만 보급됐고 올해 목표인 7000대 달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에너지 신산업 육성으로 전기자동차나 ESS(전력저장시스템) 등 심야전기 사용 수요가 추가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 차원에서 전기자동차, ESS 등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 중인데, 이것이 활성화되면 심야전기 사용량과 요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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