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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오! 청계천

서울 문화 大河로 흘러라!

청계천 역사와 삶 ‘가치 복원’에 커다란 의미 …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간 활용을

서울 문화 大河로 흘러라!

서울 문화  大河로 흘러라!
7월1일, 1960년대 박정희식 개발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된다(1967년 착공, 1971년 완공). 이어 30년 가까이 도로 아래 잠자던 청계천이 맨얼굴을 드러낸다(1958년 복개 시작, 1978년 완공).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학)는 “성장기 동안 복개된 청계천과 고가도로는 성장의 속도를 높인 곳이며 이를 위해 죽은 자연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 무덤을 파헤치고 죽은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청계천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청계천은 조선시대부터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의 ‘하천시대’, 본격적인 도로복개공사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복개시대’를 거쳐 자연천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2003년 ‘복원시대’를 맞이했다. 그 사이 청계천은 서민들의 생활 터전에서 근대화시대의 엔진으로, 가난과 불결의 상징에서 노동 착취와 소외의 현장으로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몸집을 불려왔다.

청계천은 남산 1호 터널에서 마장동에 이르는 길이 5.8km의 고가도로도 아니고,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답십리에 이르는 6km의 복개도로도 아니다. 세종로에서 청계로를 따라 양쪽에 형성된 6000여 동의 건물과 건물 사이로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뒷골목, 시장, 노점 그리고 그 속에서 숨쉬는 사람들이 모두 청계천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의 이무용 박사는 “청계천은 도심부의 핵심지역으로 최고의 접근성과 풍부한 중심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 도심산업생태의 문화적 보고이자,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도심의 문화갯벌”이라고 청계천의 가치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서울시가 주도한 청계천의 복원 논의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도로를 뜯어낸 뒤 물을 흘려보내는’ 기술공학적 차원에 머물렀다. 자연히 청계천 복원 이후 예상되는 도심 산업생태계 파괴와 난개발, 주민갈등, 특정 상인계층의 소외, 도심공동화와 같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방어에 머물렀다.

“다양한 역사·문화자원 품고 있는 도심의 문화갯벌”

조명래 교수는 5월22일 열린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에서 “역사성 복원을 강조하면 할수록 복원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서울시는 발목을 잡는 것으로 여긴다”며 “청계천과 관련된 역사 복원은 청계천 자체로만 보지 말고 서울 도심의 역사적 장소들을 하나하나 복원해가는 사업의 출발점이자, 그러한 역사 공간들을 엮어내는 거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청계천의 역사성, 생태성, 문화성을 동시에 복원하자는 조성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청계문화벨트’로 명명된 이 계획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기본안을 마련하고 7월1일 착공과 동시에 서울시가 본격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청계문화벨트는 세종로에서 뚝섬에 이르는 청계천 주변지역을 문화적 특성에 따라 도심산업문화지역(청계로 주변상권), 주거문화지역(왕십리 뉴타운), 생태문화지역(뚝섬 숲 부근) 등 크게 3개 권역으로 나누고, 하천시대에서 복원시대에 이르는 청계천 역사 전반의 문화관광자원을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이무용 박사는 “청계천의 복원이 자칫 복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과거사 복원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면서 “현재까지 청계천 문화를 일구어온 사람들과 그들의 삶 속에서 형성된 물질적, 상징적 자취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단이 2003년 2월에서 5월까지 조사한 청계천의 문화관광자원 현황을 보면 전체 자원 중 사람 관련 자원이 28%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하천시대의 청계천을 대표하는 역사인물로 영조 때 한성판윤을 지내면서 청계천의 준설작업을 지휘한 암행어사 박문수, 청계천 수표교 밑에서 기거했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 성동구 사근동 청계천변까지 출몰해 사람을 해치는 아차산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남이장군(이를 기려 주민들이 청계천변에 남이장군 사당을 세움), 조선 최고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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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 철거가 시작되는 청계고가 밑에서 따사로운 햇살,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꿈꾼다.

‘복개시대’ 청계천의 꽃은 기술 하나로 살아온 ‘명장’들이다. 관수동 뒷골목 2층에 위치한 ‘정일사’ 공방에는 55년째 훈장을 만들어온 장대근 할아버지가 버티고 있다. 여든셋의 나이에도 작업대를 지키고 있는 장 할아버지는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대한민국 훈장을 제작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훈장 제작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자신의 손으로 제작한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고 한다.

종로구 연지동 시계골목에서 만난, 밀리터리 시계 제작과 수리에서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정윤호씨, 1961년부터 을지로 기계공구 상가에서 천일목공소를 운영해온 공구상가의 명물 최학수씨, 세운상가(종로전자타운)에서 30년 동안 방송영상장비 수리를 해온 정오전자 오원근씨, 플루트 수리 명장으로 낙원동 악기상가의 산 증인인 신광악기의 지병옥씨, 낙원 떡집거리의 효시가 된 원조낙원떡집 이광순씨, 변변한 가게도 없이 식당 입구 한 귀퉁이에 좌판을 깐 면도기 수리 명장 조영한씨, 황학동 고물장사이자 골동품 감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승경씨, 전태일 열사의 동료였던 청계천 재단사 배강일씨 등 청계천의 명장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명장은 아니지만 해병대 1기로 30년째 공구상가에서 리어카 아저씨로 통하는 김형모씨, 재래시장의 지게꾼 표장석씨, 4단 밥상 배달 아줌마로 불리는 박호순씨도 사람 냄새 나는 청계천을 만드는 이들이다. 여기에 구슬픈 색소폰 연주로 유명한 광장시장 거리의 악사 백연화 할아버지(본명 이호영)와 황학동 벼룩시장 지킴이 홍이종(본명 홍원표) 시인 등 청계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청계천에 들어온 지 15년째인 홍시인은 “고가가 사라져도 꼭 남아야 할 청계천 문화가 있다면 바로 노점”이라며 “외국의 벼룩시장처럼 합법적으로 관리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홍씨는 숭인동 동묘(관우장군 사당) 부근에서 처음으로 골동품 노점상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주말마다 골동품 노점상들이 동묘를 끼고 진을 친다.

또 청계천에는 손을 내밀면 쉽게 잡힐 것 같은 성공신화가 널려 있다. 1960년대 초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제일사라는 의류가게를 하며 작업복을 납품하다 72년 국내 최초로 OEM 청바지를 제작한 뱅뱅의 권종렬씨, 자본금 1000만원의 청계천의 조그만 컴퓨터 가게에서 시작한 삼보컴퓨터의 이용태씨, ‘백판’을 구하러 다니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던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걸어다니는 음악사전으로 불렸던 굿인터내셔널(음반사) 대표 이근화씨, 30년 전 청계천에서 등산화 공장을 하다 국내 등산화 시장 점유율 40%를 자랑하는 K2코리아를 세운 정동남씨 등이 주인공이다. 이처럼 청계천의 삶의 체취, 정서, 가치가 담긴 이야기들은 곧 청계천의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청계천의 복원 컨셉트를 크게 복원, 재생, 활성화 세 가지로 나누었다. 복원은 사라졌거나 잊혀진 과거 유산을 되찾는 사업이다. 하천, 교량, 도심 원형, 민속행사, 역사유적 등의 복원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역사유적의 복원 부분은 사학계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구간 및 주변지역을 대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몇 개의 유물들이 발견됐다. 동대문 부근 청계천 바닥에서 나온 여러 개의 석재는 돌의 크기와 형태로 보아 오간수문(五間水門·동대문 남쪽의 성벽 밑으로 청계천 물이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든 5개의 아치형 수문이 있는 다리)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후기 도자기 일부와 기왓장이 여러 점 발견됐다.

비싼 대가 치른 만큼 ‘청계문화벨트 조성’ 큰 기대

6월27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는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계천의 발굴 범위와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면 발굴은 어렵더라도 상태가 양호한 곳을 구역별로 나누어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한다. 또 이관장은 “대대적인 개천 발굴은 학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라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판자촌 시절 청계천에 버려진 생활유물들이 상당수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강찬석 위원장(건축가)은 “청계천 발굴을 통해 나온 유물들만 가지고도 서울역사박물관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며 대대적인 발굴사업을 주장했다.

청계천의 ‘재생’은 현존하는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밀어버리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골목의 생태계를 보존하면서 도심의 문화를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즉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남북축과 동대문상권을 중심으로 한 동서축에 걸쳐 있는 54개의 시장 및 상가들을 연결해 청계천 문화의 핵심인 시장 및 상가 문화관광상품을 개발한다. 또 49개의 음식거리를 연결해 자원을 활용한 먹을거리 투어, 음식축제 등 다양한 방법이 제안됐다. 청계천에 사람 네트워크, 음식 네트워크, 시장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서울 문화  大河로 흘러라!

사람 냄새 나는 거리, 청계천의 역동성은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다.

‘활성화’는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출하는 사업이다. 공사 과정에서 사라질 우려가 있거나 변모를 겪은 청계천의 근현대사 문화관광자원들을 한데 모아 재현하는 천변시대테마파크, 향후 청계천 문화관광의 거점 역할을 할 청계문화센터, 환경영화제, 청계천 현대사의 상징인 전태일 거리 조성과 관련 문화행사 등이 제안됐다. 서울시는 곧 ‘청계문화벨트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서울의 강북을 동서로 관통하는 청계천은 열려 있는 구조다. 남북으로는 창덕궁에서 남산에 이르는 녹지축과 세종로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시민광장축, 대학로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성곽축이 이어진다. 동서로는 청계천을 따라 도심산업문화축이 형성된다. 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문화벨트, 대학로문화벨트, 돈화문길문화벨트, 정동문화벨트, 남촌문화벨트, 장충문화벨트, 생태문화벨트 등 8개의 문화벨트가 연계된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아름다운 청계천은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입력 2003-07-02 13:12:00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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