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9

2003.06.19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안팎에서 ‘엉거주춤’

양국 정상 정부 협상 개시 시점 ‘어정쩡’ 합의 … 산자부도 “시장 다 내줄 판” 한 발 뺀 상태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6-11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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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안팎에서 ‘엉거주춤’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고이즈미 총리의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정부가 우리에 비해 FTA에 훨씬 적극적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경제 분야 이슈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일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여부였다. 1998년 양국 정상간 합의 이후 여태까지 양국 학계 인사들간의 공동연구 수준에 그쳐온 한·일 FTA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간 협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정부간 FTA 협상을 조기에 개시하도록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함으로써 해석상의 여지를 남겨놓은 채 양국간 이견을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데 그쳤다.

    일단 양국 정상간 이번 합의는 98년부터 추진돼온 양국간 FTA 논의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7월10일로 예정된 양국간 FTA 문제에 관한 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 제6차 회의를 기점으로 공동연구 일정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정부간 협상에 들어갈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 내에서도 벌써부터 서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주요 산업 분야 업계 눈치 보기

    윤진식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은 양국 정상이 ‘정부간 FTA 협상 조기 개시를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는데도 일본 현지에서 만난 한국기자들에게 “사실상 연내에 협상을 시작하기는 힘들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동안 한·일 FTA 공동연구작업을 주도해온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쪽 분위기는 조금 다른 상황.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산자부가 한·일 FTA 협상에 있어 중요한 부서인 것은 분명하지만 연내 정부간 협상 개시 여부는 일단 부처간 협의 과정을 거쳐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측은 산자부 장관의 ‘연내 협상 개시 불가’ 발언이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산자부에서 ‘정부간 협상 조기 개시론’에 대해 경계하고 나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관련업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 때문이다. 자동차 전자 기계 등 우리가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주요 산업 분야에서 하나같이 한·일 FTA가 몰고 올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자동차산업의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일본 수입차에 대해 8%의 관세를 물리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 수출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매기지 않고 있다. FTA를 통해 관세를 없앤다고 했을 때 그 효과는 한국차의 대(對)일본 수입 증가에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일본차 수입 증대로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대일본 관세율이 8%인 데 반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실행관세율이 0.8%에 지나지 않는 전자제품 업계는 가뜩이나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데 FTA까지 체결되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남아 일본계 기업의 저가제품이 유입돼 생산기반 자체가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관세율 차이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이 유지하고 있는 각종 비관세 장벽 등도 국내 업계 입장에서는 한·일 FTA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일본이 갖고 있는 수입차 특별 신고제도 등 비관세 장벽과 유통시장의 폐쇄성”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수입차 특별취급 신고제도를 두고 있는데 특히 대일(對日) 수출물량이 적은 한국이 이 제도에 따른 특별 취급을 당하는 등 불이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간의 자유로운 수출입을 가로막는 이러한 비관세 장벽을 없애기 위해 한·일간에는 ‘비관세조치(NTM) 협의회’라는 별도의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5월 말 일본에서 열린 태스크포스 1차 회의에서 일본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요구안을 들고 나와 우리측을 당황케 했다는 후문이다. 회의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일본측이 비관세 장벽에 대한 요구 수준을 낮춰 우리측으로 하여금 정부간 협상 조기 개시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안팎에서 ‘엉거주춤’

    한·일 FTA가 체결될 경우 일본차 수입이 급증하는 등국내 제조업 분야의 피해가 예상된다.

    그동안 한·일 FTA는 산업경쟁력에서 우리보다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이 적극적인 반면, 우리나라는 전경련이나 무역협회를 중심으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FTA는 지난해 10월 타결돼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한·칠레 FTA와는 추진과정이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정반대의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FTA를 성사시킨 칠레는 산업구조면에서 우리와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가전이나 통신 분야에서 칠레는 우리보다 열세에 있고 칠레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생산물은 포도나 사과 같은 농산물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우리와 산업구조면에서 매우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는 데다 우리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웬만한 산업 분야는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경우가 많다. 칠레와 달리 일본과는 애초부터 ‘주고받기식’ FTA 협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FTA와 한·칠레 FTA는 접근방식부터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일간 FTA 체결을 위한 산·관·학 공동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계명대 김도형 교수(무역협회 객원연구원)는 “이제 FTA는 완전히 국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산자부 등 정부부처가 나서서 국내 제조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FTA에 따른 보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지금까지는 산자부가 FTA가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뿐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은 업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동차공업협회 등 각 산업 분야의 이해를 반영하는 단체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한·일 FTA에 반대해왔지만 실제 한·일간 공동연구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업계측 대변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 업계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피해가 예상되는 마당에 ‘한 발은 경기장에 들여놓고 한 발은 빼놓고 있는’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한·일 FTA 합의도 어정쩡하게 결론났지만 한·일간 협상에 앞서 우리 내부의 입장도 어정쩡한 상태라는 이야기다. 결국 앞으로 한·일 FTA는 일본과의 ‘국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부와 업계 간의 ‘국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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