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7

2003.06.05

중국산 휴대폰 “우리 구역 넘보지 마”

TCL이통, 고급화·물량 공세로 자국시장 3위 부상 … 전략 엇비슷한 한국산 판매 적신호

  • 강현구/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 전문연구원191710@hanmail.net

    입력2003-05-28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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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산 휴대폰 “우리 구역 넘보지 마”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중국 휴대전화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중국화’. 중국의 대표적인 휴대전화업체인 TCL이동통신이 발표한 2002년도 판매실적을 보면 연간 623만6000대의 단말기를 팔아 전년 대비 380% 증가했다. 이동전화 단말기 판매수입은 82억 위엔(약 1조2300억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280% 증가한 액수. TCL은 중국산 단말기 시장에서 판매액과 수익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아직까지 전체 단말기 시장에서는 모토로라와 노키아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TCL이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 지 3년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이 추세대로라면 전체 단말기 시장에서 TCL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

    TCL은 1999년 3월 휴대전화 단말기 부문 진출을 발표한 후 이탈리아 이동통신업체와 손잡고 자본금 1000만 달러의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초기 운영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 쌍방은 분리 절차를 밟았다. 이후 TCL은 휴대전화 부문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2000년 하반기에 TCL이동통신유한공사를 설립했다. 그 후 TCL은 독자적인 모델 개발에 인력을 집중 투입해 중국 최초의 폴더식 전화기 TCL999D 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TCL 바오스(寶石) 단말기 전략을 수립한다. 바오스 단말기는 폴더식 전화기 상표를 실제 금으로 만드는 등 고급화를 시도했다. 초기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이었으나 곧 선물용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바오스 열풍’을 일으켰다. 이러한 성공에는 중국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한국 여배우 김희선을 전속 모델로 기용하는 등 당시 중국 전역에 퍼진 한류(韓流) 열풍을 적절히 이용한 홍보전략이 한몫했다. 뿐만 아니라 TCL은 당시 중국 휴대전화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던 삼성 단말기와 비슷한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중국제는 싸구려고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이미지를 불식했다. TCL이동통신 완밍지엔(萬明堅) 사장은 “TCL의 바오스 단말기의 성공은 곧 고급화 전략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TCL 올해 매출목표 2조5600억

    중국산 휴대폰 “우리 구역 넘보지 마”

    TCL이 개발한 중국 최초의 폴더형 전화기 TCL999D(왼쪽)와 중저가 브랜드 커지엔의 모델.

    한국 단말기의 고급스런 이미지와 최신 패션을 과감히 차용해 대성공을 거둔 이후 TCL은 고급화와 대량 물량공세 전략을 동시에 펼쳤다. 2002년 TCL이동통신사는 총 12종의 폴더형 단말기를 내놓아 월 평균 1대씩 신형 단말기를 출시했다. 이러한 TCL의 신제품 출시 속도는 해외 동종업계에게는 실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TCL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올 들어 60종의 신형 단말기를 내놓겠다고 선언해 경쟁업체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TCL의 호언대로라면 매달 5종의 신형 단말기가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올해 TCL이동통신사의 판매목표는 1200만대이며 160억 위엔(약 2조56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작년 대비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중국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의 선두인 모토로라사의 매출에 근접하는 수치다. TCL이동통신사는 향후 5년 내 세계 이동통신업계 5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단한 야심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말까지 중국 휴대전화 이용자는 3억명에 달해 전년도에 비해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 매출은 2200억 위엔(35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 황금시장에서 한국 휴대전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과 LG 휴대전화 단말기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중국 제품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이 장기적인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중국산 휴대폰 “우리 구역 넘보지 마”

    중국산 휴대전화기가 다양한 디자인 개발로 수입제품과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대도시 청년들은 삼성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한국제품을 선호했다. 여자들은 남자친구에게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로 삼성 휴대전화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여배우 김희선을 내세운 TCL이 급속히 중국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 조건의 변화에 한국기업들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표상 아직까지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한국 단말기가 고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상하이 세관에 따르면 최근 휴대전화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1·4분기 휴대전화 수입량은 66만4000대를 넘어서 전년 대비 5.3배 늘어났으며, 증가분을 한국산이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 당국이 휴대전화에 대해 제로관세를 적용한 것에 힘입은 바 크다. 더구나 중국 휴대전화 시장의 급속한 팽창 속도를 감안할 때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들 수입품의 주류가 한국 상품이 아니라 중국 브랜드의 OEM 방식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올해 1·4분기 한국에서의 휴대전화 수입은 49만6000대로 13배 증가했고, 대만 제품은 16만5000대로 나타났다. 한국과 대만의 수입액이 급증한 것은 중국산 브랜드가 OEM 판매방식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는 시아신(廈新), 시옹마오(熊猫), 커지엔(科健) 등 중저가 브랜드가 모두 OEM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 휴대전화의 대(對)중국 수출은 총량은 늘고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중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 휴대전화 업계는 중국시장에서 거둔 엄청난 이익에 취해 이런 변화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에서의 선도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것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한국 휴대전화가 중국시장에서 자국산에 밀리는 것은 중국 휴대전화업계의 급속한 발전에도 원인이 있지만 한국 휴대전화업계의 대중국 시장 전략에도 그 원인이 있다. 중국 진출 이래 삼성은 대도시 거주 엘리트들을 주고객으로 삼았고 LG는 다양한 소비자층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펴왔다. 그 결과 삼성은 중국 내에서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고 고소득층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고, LG는 중국 전역에 걸쳐 다양한 소비자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이러한 전략을 모든 제품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민첩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휴대전화 시장처럼 급속하게 변화하고 팽창하는 시장에서 기존의 전략에 무리하게 매달려 중국 후발주자들에게 틈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얘기한 TCL의 경우 초기에 삼성의 고급화 전략을 벤치마킹해 지명도를 높이고 이후에는 LG의 다양한 소비자 전략을 빌려와 중저가 공세를 펴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에 비해 한국기업들의 전략은 너무 경직돼 있다.

    중국은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장이다. 중국에서 초기의 성공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어렵게 얻은 좋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국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시장 공략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어느 때보다 유연한 시장 대처능력이 요구되는 때다. 이래저래 중국시장은 우리에게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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