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2003.05.15

승승장구 다 이유가 있다

강인한 정신력은 기본 ‘연습 또 연습’ … 인생 역전 발판 남다른 승부욕도 한몫

  • 송재우/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최원창·문승진/ 굿데이신문 기자

    입력2003-05-07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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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메이저리그 첫 승(박찬호), 98년 LPGA투어 US오픈 우승(박세리), 2002년 PGA투어 첫 승(최경주), 태극전사의 월드컵 4강 진출, 그리고 ATP대회 첫 승(이형택)…. 해외에 진출한 스포츠 스타들이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IMF 사태)로 우울하던 시절 박찬호의 호투는 닷새마다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청량제’였다. 하지만 이젠 매일 장(場)이 선다. 주말마다 유럽 축구리그에서 태극전사들이 승전보를 전해오고, 일본에선 최용수 안정환이 벼락같은 골을 터뜨린다. 박찬호가 부진하면 김병현이 활약하고, 최희섭이 주춤하면 봉중근 서재응이 활개친다. LPGA 무대를 평정한 낭자군단은 또 어떤가. 그렇다면 해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성공 키워드는 무엇일까.

    LPGA 20명 미국 이어 최다 … “한국 골퍼 무섭다”

    ‘골프여왕’ 박세리(26·CJ)가 4월28일(한국 시간) LPGA투어 칙필A채리티챔피언십에서 연장 4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세니 와(34·호주)를 누르고 또 한 번 ‘코리아 돌풍’을 일으켰다. 3월24일 끝난 세이프웨이핑대회에 이어 올 시즌 2승을 챙긴 것. 박세리는 현재 아니카 소렌스탐(33·스웨덴)을 제치고 상금 랭킹 1위(51만1538달러)를 달리고 있다.

    박세리 외에도 한국낭자들은 대회마다 스코어보드 상단을 장식하며 호시탐탐 정상을 노린다. 올 시즌 미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한국낭자들은 조건부 시드를 포함해 모두 20명. 이는 ‘골프의 종주국’ 영국(9명)이나 전통적인 골프 강국 호주(12명)·스웨덴(10명)보다 많으며, L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24개국 중 개최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그러나 골프환경만 놓고 보면 한국이 가장 열악하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골프를 배운 선수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박지은, 김초롱(미국명 크리스티나 김), 위성미(미국명 미셸 위)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에서 골프를 배웠다.



    승승장구하는 한국낭자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성공비결은 강한 정신력이다. 물론 다른 나라 골퍼들도 우승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한국낭자들의 피속에는 단지 ‘우승하고 싶다’는 희망이 아닌 ‘우승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흐르고 있다.

    한국낭자들은 보통 초등학교 때 골프에 입문한다. 이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는 물론 부모의 기대와 희망을 이루기 위해 매일 8시간 이상씩 모든 것을 제쳐두고 골프에 매달린다. 골프에 입문하면서부터 골프는 즐기는 운동이 아니라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프로선수가 되기까지에는 최소 5억원 이상이 든다. 누구나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13살 ‘천재 골프소녀’ 미셸 위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부모의 역할은 지대하다. 자식을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든 줄리아드 음대에 보내고 골퍼로 만들고 싶으면 골프연습장으로 보낸다. 비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부모를 자식은 믿고 따른다”고 말했다.

    박세리의 성공은 한국낭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한국낭자들은 골프클럽을 만지면서부터 박세리를 모델로 삼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이런 성공에 대한 열망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승부근성이 가세하면서 박세리의 뒤를 이어 LPGA에서 성공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골프에 대한 확실한 목표의식과 강한 정신력,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국낭자들이 LPGA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며, 그 돌풍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LPGA 무대에 데뷔한 이후 통산 7승째를 기록한 맥건은 “한국에서 온 선수들은 ‘연습벌레’다. 밤늦도록 연습하는 한국골퍼들이 무섭다”고 말했다.

    94년 박찬호를 필두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진 한국선수가 20명이 넘는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귀국한 선수들도 있고 아주 잠깐 메이저리그의 맛을 보았다가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한 선수도 있다. 이들 미국 진출 선수 중 현재까지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선수는 3명으로 압축된다.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그리고 아직 성공을 논하기는 이를지 모르지만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인 최희섭(시카고 컵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모두는 스무 살 전후에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무기를 최소 한 가지 이상씩 갖고 있었다.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등 쟁쟁한 동기들에 가려져 있었던 박찬호는 컨트롤이 불안하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상급의 강속구가 자랑이었다. 미국 진출 선수 중 유일하게 바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던 김병현은 미국 내에서 보기 힘든 언더스로 투수인 데다 공 끝의 변화가 뛰어나다. 또 이런 유형의 투수로는 믿기 어려운 속도의 빠른 직구를 갖고 있다. 최희섭은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긴 하지만 웬만한 메이저리거보다 큰 체격에 파워 있는 타격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각자의 주무기는 달랐지만 이들은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훈련하는 이들은 스카우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찬호의 한 고등학교 동기생은 대학 입학 후 동기생 모임 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굽혀 펴기를 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진출 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온 최희섭은 일찌감치 남해 야구훈련장에 들어가 어느 누구보다 일찍, 그러나 가장 늦게까지 연습장에 남아 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용히 개인훈련을 하는 스타일의 김병현도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호리호리한 몸매가 단단한 근육질로 변모할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다.

    또 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때론 무모할 정도의 고집으로 뭉쳐 있는 선수들이다. 박찬호는 96년 당시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던 일본인 투수 노모와의 비교에서 지금은 아니지만 3, 4년 뒤를 지켜봐 달라고 했고, 결국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선발투수로 새로운 도전에 나이 짧은 기간에 마무리투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의 공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코칭 스태프의 지시까지 어길 정도의 고집이 큰 역할을 했다. 최희섭 역시 이런 부분에 있어서 박찬호 김병현에 뒤지지 않는다.

    결국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의 성공 키워드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확실한 특기와 부단한 훈련,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고집스러운 집념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의 엘도라도’ 유럽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는 모두 7명이다. 네덜란드에서 이영표 박지성(이상 아인트호벤) 송종국(페예노르트) 김남일(엑셀시오르)이 뛰고 있고, 설기현(벨기에 안더레흐트) 차두리(독일 빌레펠트) 이을용(터키 트라브존스포르) 등도 당당히 유럽선수들과 맞서고 있다. ‘갈색폭격기’ 차범근이 활약했던 70~80년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선수들이 유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불어온 한국선수들의 유럽 러시가 ‘반짝 거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한국축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장기 레이스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이 기초가 돼야 하고 유럽선수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기량 또한 갖춰야 한다. 체력과 기량 면에서는 7명 모두 월드컵에서 검증받았고 소속팀의 경기에서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언어와 문화의 습득 없이는 전술 이해도와 팀워크에서 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이상윤(프랑스 로리앙) 서정원(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안정환(이탈리아 페루자) 이동국(독일 베르더 브레멘) 등이 유럽무대에서 연거푸 실패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국내 구단과 해외 클럽 간의 정식 경로를 통해 이적한 한국선수는 송종국과 이영표뿐이다. 박지성 설기현 차두리는 이적료 부담이 없었고 임대 후 이적 방식을 택한 이을용과 김남일의 향후 진로는 아직 불투명하다.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유럽 구단들은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동양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앞으로 임대 후 이적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선수들의 유럽 러시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면에서 이영표의 아인트호벤 완전 이적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임대 후 이적이라는 해외진출 형태의 첫 성공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이영표가 아인트호벤 진출 후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독학하며 끊임없이 팀동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던 대가였다. 이영표는 현재 아인트호벤의 매 경기에 90분 풀타임 출전하며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선수들이 유럽에서 성공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틈새를 잘 공략했기 때문이다. 이을용 이영표 송종국 박지성 설기현 등 한국선수들은 오른발과 왼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왼발잡이가 부족한 유럽리그에서는 큰 장점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빠른 스피드와 강인한 정신력은 유럽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 일본선수들의 유럽 이적 방식은 기량 외에 기업들의 스폰서를 옵션으로 제시한 경우였다. 일본선수들은 스폰서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진출했지만 자신들의 기량을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1부와 2부를 가리지 않고 ‘임대 후 이적 방식’을 택했던 중국이 아직 뚜렷한 결과물을 보이지 못한 점에서 한국선수들은 일본선수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선수들과는 다른 한국선수들만의 장점. 즉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과 빠른 스피드, 불굴의 투지, 유럽 문화를 습득하려는 적극성…. 유럽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한 키워드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또한 유럽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국선수들은 개성을 살린 자신만의 장점을 발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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