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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동아일보 인기 연재만화 ‘食客’의 모델이 된 진짜 맛집을 찾아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프랑스 음식이 예술에 가깝고, 중국 음식이 우주를 지향하고, 일본 음식이 자연에 닿아 있다면 우리네 음식엔 풍류가 담겨 있다.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이 곧 풍류다. 삶의 지혜는 어머니의 손맛에 녹아들고, 멋은 삶 속에 스며든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우물물을 건넬 때 버드나무 잎을 따서 띄워주는 것이 그렇고, 콩나물 하나를 다듬더라도 칼 대는 일 없이 두 번, 세 번 정성스럽게 손으로 갈무리하는 모습에도 풍류는 살아 있다. 시뻘건 배추김치 한 장 집어 들어 결대로 쭉쭉 찢어 먹던 어머니의 모습은 또 어떤가. 청결 운운하며 비닐장갑 끼고 버무린 음식이 멋없고 맛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류를 모르고는 만드는 이도, 먹는 이도 우리네 먹거리의 참맛을 이해할 수 없다.



만화 ‘식객’에 등장하는 음식점들은 모두 실재하는 곳이다. 때론 단순히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현재 종사하고 있는 실존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3년간 취재한 맛집 리스트 중에서 다시 고르고 고른 ‘식객’의 음식점들은 나름대로 풍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지방태의 자존심 생태맑은탕 ‘경북횟집‘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소금으로 밑간을 한 생태맑은탕(왼쪽). 어머니의 뒤를 이어 지방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경북횟집’ 김승식 사장(왼쪽)과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동생 정식씨.

명태는 잡히는 지역에 따라 지방태와 원양태로 나뉜다. 지방태는 고성 앞바다에서 잡히는 국산 명태를 말하고 오호츠크해 등의 먼바다에서 잡히는 명태는 원양태라 부른다. 지방태와 원양태 맛의 차이는 흑산도 홍어와 칠레산 홍어의 맛 차이만큼이나 극명한데 이 맛 좋은 지방태로 만든 음식 중에서도 으뜸은 식객 제8화 ‘대령숙수’ 편에 등장하는 생태맑은탕이 아닐까 한다.

생태맑은탕은 현지인들이 맹물에 무와 생태를 넣고 소금으로 밑간을 해서 간단하게 끓여 먹던 음식이다.

‘경북횟집’(033-682-1138)의 생태맑은탕은 여기에 콩나물, 다진 마늘, 애호박, 쑥갓, 두부 등의 부재료를 넣어 맛을 돋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맛만큼은 대단하다. 포슬포슬한 생태살의 육질과 기름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생태국물의 담백함은 맵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혀를 편안하게 하고 목에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맛이다. 만약 음식에도 아카데미와 같은 상이 있다면 생태맑은탕은 단연 남우주연상감이다.

생태맑은탕은 냉태의 곤이와 내장에 의해 그 맛이 좌우되는데 곤이는 수컷에만 있다. 내장의 하나인 창자는 기름기를 적당히 함유하고 있는데 이 창자가 신선해야 국물 맛을 결정하는 맑은 기름이 나온다.

생태맑은탕은 명태의 고장인 거진항이나 대진항을 찾지 않고서는 맛보기 힘든 음식이다. 지방태의 어획량이 급감한 이유도 있지만 싱싱한 지방태라도 어획 후 3일이 지나면 육질이 굳고 내장이 변질하는 탓에 맑은탕은 끓일 수 없기 때문이다. 팔도진미가 다 모여 있다는 서울에서도 접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은 지 3일이 지난 지방태로는 흔히 볼 수 있는 매운 생태찌개를 끓인다.

‘경북횟집’은 거진에서도 지방태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집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김승식 사장이 지방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동생인 김정식씨는 ‘경상도 할매 건어물’(033-682-4516)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국산 명란젓이나 황태, 북어 등도 만날 수 있다.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어머니의 손맛을 전수받고 있는 이서구씨(왼쪽). 홍어삼합을 전문으로 하는 ‘순라길’(오른쪽).

‘순라길’(02-3672-5513)은 손맛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부자 이야기를 다룬 식객 제9화 ‘아버지와 아들’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김부심, 이서구 모자가 운영하는 홍어 전문점이다. 홍어 전문점답게 메뉴는 홍어삼합, 홍어찜, 홍어무침, 홍어탕 네 가지뿐이다. 주메뉴는 삭힌 홍어에 돼지고기 편육과 묵은 김치를 얹어서 먹는 홍어삼합. 홍어의 지린 맛이 담백한 편육과 곰삭은 김치와 한데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김사장이 녹두 누룩으로 직접 빚어 만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후련함이 온몸에 전해진다.

최근에 칠레산 홍어에 카바이드 종류의 식용 암모니아를 뿌려 흑산도 홍어 맛을 흉내내는 집들이 많은데 ‘순라길’은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흑산도산, 칠레산 홍어 모두 정직하게 발효 시키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반찬에 있다. 남도의 맛이 고스란히 담긴 각종 장아찌와 젓갈, 그리고 김치류가 계절별로 그때그때 바뀌어 나오는데 홍어도 홍어지만 반찬 맛에 반해 ‘순라길’을 찾는 손님들도 많다. 고추장에 박아 오랜 시간 묵힌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고추장굴비 하나만으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김사장은 공해로 가득한 서울에서는 제대로 된 손맛을 낼 수 없다며 원주 근처에 따로 작업실을 마련해두고 있다. 물론 재료는 남도에서 직접 가져와 쓰고 있으며 각종 장류며 참기름 등 양념류도 모두 만들어 쓰고 있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순라길’은 현재 손맛 대물림이 한창이다. 만화의 내용과 달리 아들 이서구씨는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기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공’이 쌓이면 자신만의 손맛을 내고 싶다는 포부도 밝힌다. 손맛만큼 맛에 대한 확신을 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순라길’ 두 모자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고향의 냄새가 그립다 ‘사직분식‘ 청국장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사직분식의 청국장 백반(왼쪽). 사직분식은 청국장뿐만 아니라 정성스러운 반찬으로 감동을 준다.

청국장의 매력은 냄새에 있다. 적어도 40대 이상의 세대에게 청국장 냄새는 그리운 고향 내음이며, 어머니 내음이며, 어린 시절 추억의 단편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냄새 없는 청국장을 먹다 보면 두 쪽 난 콩이 둥둥 떠다니는 것 이외에는 된장찌개와 별 차이가 없어 뭔가 허전함이 남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간해서 냄새 나는 청국장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냄새 폴폴 풍기며 당당하게 집 안에서 끓여 먹기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이런 구수한 냄새에 대한 갈증을 말끔히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사직분식’(02-736-0598)이다.

‘사직분식’ 청국장 찌개는 냄새에 충실하다. 냉장고에 보관해 예전보다 냄새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찾는 이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청국장도 여느 집과는 달리 절구에 빻지 않고 통째로 넣어 끓인 탓에 진한 맛이 그대로 국물에 배어 나오는데 의외로 깔끔한 뒷맛을 선사한다. 찌개 속 두부는 음식에 칼을 대면 맛이 없다며 김춘자 사장이 손으로 직접 떼어낸 ‘작품’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직분식’ 청국장 제작과정은 식객 제11화 ‘청국장’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징이라면 볏짚의 고초균 대신 공기 속의 고초균으로 발효시킨다는 데에 있다. 김사장은 안정적인 콩의 발효를 위해 따로 발효실을 두고 있는데, 예전 집안에서 운영했던 경동시장의 청국장 공장 시절부터 사직분식 11년 동안 청국장 띄우는 일만큼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니 그 정성과 손맛을 짐작할 만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지만, 멀리 해외에서 이곳을 찾는 교포들까지 하나같이 옛날 생각 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니 더 이상의 맛에 관한 설명은 무의미해 보인다. 김사장의 걸쭉한 남도 사투리도 별미여서 ‘사직분식’의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다 보면 마치 고향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직접 숙성시킨 1등급 한우고기를 맛볼 수 있는 ‘이명호 참누렁소’의 정육점과 식당(왼쪽). 이명호씨 부부.

현재 식객은 한우 이야기가 진행중이다. 비육, 정형, 구이 등 쇠고기에 관련된 모든 것을 섭렵할 예정인데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한 곳이 바로 ‘이명호 참누렁소’(02-979-6400)다. ‘참누렁소’는 서울 시내에서 숙성된 한우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깃집 중 하나다. 숙성이란 도축으로 질겨진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풍미를 높이는 과정인데, ‘참누렁소’는 건물 지하에 150평 규모의 육가공실을 두고 있어 365일 숙성된 1등급 한우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육가공실에서는 골발(부위별 해체), 정형(기름 제거), 숙성(육질 개선) 등의 공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안동에 한우농장도 소유하고 있는데 ‘참누렁소’의 경우처럼 비육부터 도·소매까지 일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고깃집도 드물다.

‘참누렁소’는 이런 든든한 시스템 덕에 단골가게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는 안창살, 토시살, 제비추리, 살치살을 한데 모은 특수육 모듬을 주메뉴로 하고 있다. 참숯불에 살짝 익혀 먹으면 육질 사이에서 톡톡 터지는 육즙이 적당한 고기 질감과 어울려 숙성된 한우고기 맛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숙성실을 갖추지 못해 천연 또는 화학 연육제를 쓰는 여타 고깃집 한우와는 그 맛이 확실히 다르다. 특수육 모듬 이외에도 꽃등심과 안심도 좋은데 꽃등심의 마블링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쇠고기만큼 다루기 까다로운 먹거리도 없을 것이다. 한우를 취급하는 고깃집이 맛 좋은 고깃집이라는 등식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한우 1등급이라도 유통과정에서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육질이 변해 구이용 고기로서의 값어치를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로 현대적 냉장설비와 숙련된 가공 기술자 없이 최상의 육질은 없다. 규모로 밀어붙이는 대형 고깃집들 사이에서도 유독 ‘이명호 참누렁소’의 고기 맛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육 코너도 운영하고 있어 숙성된 1등급 한우의 각종 부위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아무리 먹어도 지겹지 않은 밥 ‘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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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집 ‘밥 이야기’의 정갈하고 푸짐한 밥상(왼쪽). 인사동 골목길에서 뭇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밥 이야기’.

인사동 골목골목 내걸린 음식점 간판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곳이 ‘밥 이야기’(02-736-0180)다.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 ‘밥 이야기’는 백반집이다. 백반을 주문하면 12가지의 반찬이 딸려 나오는데 맛깔스러운 반찬에 이리저리 젓가락을 옮기다 보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것은 순간이다. 어설픈 한정식보다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정갈하고 푸짐하다. 운이 좋으면 방금 만든 반찬도 덤으로 먹을 수 있다.

또 다른 덤이 있다면 메뉴 이름이 주는 재미에 있다. 상호도 독특하지만 메뉴 이름도 그에 못지않다. ‘전설의 백반’ ‘한 많은 게장백반’ ‘그들만의 국수’ ‘광란의 비빔밥’ 등 하나같이 재치가 넘치는 이름이다. 메뉴 이름은 개그맨 전유성씨 작품. 음식 맛에 입이 즐겁고 메뉴 이름에 눈이 즐거운 곳이 ‘밥 이야기’다. 또한 개성 강한 메뉴들을 5000원대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니 주머니도 즐겁다.

‘밥 이야기’는 식객 제5화 ‘밥상의 주인’ 편에서 후보 음식점 중 하나였으나 최종 선정에서 아쉽게 제외됐다(주인은 이 사실을 모른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절대 음식 맛 때문은 아님을 밝혀둔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봄날 인사동 골목을 걷다 허기가 느껴지면 ‘밥 이야기’가 전해주는 세 가지 즐거움에 귀를 기울여보자.

‘식객’의 단골집 그곳이 어디메뇨

진한 쇠고기 국물이 자랑인 ‘하동관’ 곰탕(오른쪽)과 식당 입구.

서울 광교 조흥은행 본점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하동관’(02-776-5656)은 1940년대 후반 문을 연 이래 60여년 동안 오직 곰탕 하나만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곰탕은 쇠고기 본연의 맛을 가장 충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하동관 곰탕의 진한 쇠고기 국물은 그런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국물 맛의 비결은 사골을 넣고 8~10시간 끓인 후 기름을 걷어내고 여기에 신선한 한우 양지머리와 사태, 그리고 내장인 양을 넣고 재차 끓이는 조리과정에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국물과 고기 맛을 결정하는 섬세한 불의 세기 조절은 오랜 경험과 고도로 숙련된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흉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물 맛의 근원인 사태와 양지머리, 내장인 양이 고명으로 얹혀 나오는데 여기에 차돌박이가 가세해 그 양이 푸짐하다. 이렇게 준비된 곰탕은 놋그릇에 담아낸다. 놋그릇은 밥이나 국물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인 65℃를 유지하는 데 탁월하긴 하나 다루기가 까다로워 웬만한 음식점에서는 쓰기를 꺼린다. ‘하동관’의 경우 지난 60여년간 놋그릇을 써온 셈이니 그 정성 하나만으로도 곰탕 맛의 깊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동관’ 곰탕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숭숭 썰어 큰 그릇에 담아놓은 파를 한 수저 떠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밥을 국에 말아 한 입 가득 넣어 먹어야 한다. 혀에 착착 감기는 진한 고깃국 맛의 여운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먹은 듯한 뿌듯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자칫 진한 국물 맛이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당히 익은 깍두기의 청량감이 잘 보완해주어 곰탕을 즐기는 데 불편함이 없다.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들과 그 맛을 잊지 못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언제나 북적거리는데,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식당 내부도 그렇지만 사람에게서도 세월의 향기가 가장 진하게 배어나는 곳이 바로 ‘하동관’이다.



주간동아 2003.05.15 384호 (p64~67)

  • 글·사진 이호준/ 동아일보 연재만화 ‘식객’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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