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한국 입맛 사로잡은 ‘베트남 요리’

쌀국수·월남쌈 등 담백한 맛에 흠뻑 … 서울에만 전문음식점 40~50곳 ‘빠른 성장세’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4-17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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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입맛 사로잡은 ‘베트남 요리’

    쌀국수를 넣은 베트남식 스프링롤. 생선을 발효시킨 소스와 매운 동남아고추등을 사용하는 베트남 요리는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서울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회사원 이성원씨(36)는 술을 마신 다음날 점심시간에는 꼭 인근의 베트남 음식점을 찾는다. 쇠고기 육수로 국물을 낸 쌀국수로 해장을 하려는 것. “칠리 소스를 듬뿍 넣으면 꼭 육개장 국물 맛이 나거든요. 뒤끝도 없고 얼마나 개운한지 몰라요. 밀가루 국수보다 소화도 잘 되는 것 같고요.” 이씨의 ‘쌀국수 예찬론’이다. 기업들이 몰려 있는 광화문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점심으로 쌀국수와 월남쌈 등 베트남 음식을 먹으려는 남성들이 적지 않게 베트남 음식 전문점을 찾는다.

    베트남 음식이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운영되고 있는 베트남 음식점은 40~50곳. 1998년을 전후해서 베트남 음식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해보면 상당히 빠른 성장세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베트남 푸드’의 한 회원은 “베트남 음식은 처음 먹어도 오래 전에 먹어본 음식처럼 익숙하다”며 “어느새 베트남 음식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그리고 달큰한 맛이 특징인 베트남 음식. 대개 베트남 음식 하면 쌀국수를 연상하지만 얇고 투명한 쌀전병인 ‘반짱(라이스 페이퍼)’에 야채와 고기류를 싸 먹는 월남쌈, 월남쌈을 다시 기름에 튀겨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 짜조 등도 베트남 음식을 대표하는 요리다.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 담백하고 소화가 잘 되는 것이 베트남 음식의 특징. 우리가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찰기 없는 쌀로 밥을 해 먹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쌀국수나 반짱처럼 쌀을 가공한 식재료를 더 많이 사용한다. 또 대부분의 음식에는 우리 고추에 비해 크기가 작고 얼얼하게 매운 동남아 고추가 들어간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베트남 음식 애호가 중에는 예상외로 남성들이 많다고.

    우리 음식과 비슷한 점 많아 ‘친숙’

    사실 베트남 음식은 중국 음식이나 이탈리아의 피자처럼 전 세계 어디서나 즐기는 보편화된 음식은 아니다. 미국의 베트남 음식점들은 미국인보다는 미국에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그만큼 한국의 베트남 음식 열풍은 이례적이다.



    동남아시아 요리 연구가인 백지원 교수(세종대 관광대학원)는 베트남 음식의 인기 요인으로 베트남의 쌀문화, 건강식, 발효식품이라는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베트남 음식의 대표적인 소스인 ‘느억맘’은 발효된 생선으로 만든 소스로 우리의 액젓과 맛이 비슷합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요리가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는 거죠. 또 베트남 쌀국수는 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소화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베트남 음식은 기름을 거의 쓰지 않는 건강식이다. 대부분의 고기는 찌거나 데치고 다양한 야채를 날로 먹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식의 특성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비만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베트남 음식은 중국 음식과 타이 음식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그러나 중국 음식에 비하면 기름기가 없어 담백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쓰는 타이 음식에 비하면 소박하다. 서구에서는 베트남 음식보다는 모양이나 향료가 모두 화려한 타이 음식을 동남아시아 음식의 대표로 인정한다고. 쌀 외에는 숙주나물, 민트, 바질, 부추, 포리엔테 등 채소를 많이 사용한다. 또 지리적 여건이 반도인 데다 길이 200km가 넘는 메콩강이 흐르고 있어 해산물 요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베트남 음식의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60여년간의 프랑스 지배로 바게트에 각종 야채를 얹고 느억맘 소스를 끼얹어 먹는 ‘반미’ 같은 퓨전 음식까지 발달했다.

    음식 자체의 장점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 그리고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려는 젊은층의 욕구가 합해져 베트남 음식점은 최근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베트남 요리 프랜차이즈점인 ‘포호아’는 현재 18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 ‘포호아’ 외에도 ‘포타이’ ‘포베이’ 등의 프랜차이즈점들이 있다. ‘포호아’의 정재학 관리팀장은 “매년 20~30%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입맛 사로잡은 ‘베트남 요리’

    서울의 한 베트남 음식점 내부(위)와 쌀국수.

    “아직 베트남 요리가 대중화되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비해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베트남 요리의 식자재가 구하기 어렵고 요리법 또한 복잡해 집에서 해 먹기 쉽지 않기 때문에 베트남 음식점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팀장의 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베트남 요리들은 아직 쌀국수 월남쌈 등으로 그 종류가 한정되어 있고 맛도 베트남 현지의 음식과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고수’라고 불리는 베트남 특유의 허브를 넣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다. 백교수는 “짜오동, 멍빈 누들, 짜조 등 다종다양한 베트남 요리 가운데 오직 쌀국수 한 가지만 알려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베트남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국민성이 우리와 예상외로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놀란다고 한다. 이처럼 유사한 국민성은 분명 베트남 음식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또 요리전문가들은 베트남 음식의 유행에 대해 “보수적인 편인 한국인의 입맛이 서서히 세계 음식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음식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좋고 맛도 담백한 베트남 음식의 인기를 타고 먼 나라였던 베트남이라는 국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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