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판도라 상자’ 열었다, 전쟁은 이제부터

이라크 과도정부 수립부터 첨예한 대립 양상 … 친미정권 세워도 ‘아랍 민주화’ 도미노 어려울 듯

  • 정리=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4-17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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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도라 상자’ 열었다, 전쟁은  이제부터

    이원삼 선문대 교수(이슬람). <br>1958년생. 명지대 아랍어과, 카타르 국립 샤라이대 학사, 모로코 모하메드 제5대학 박사, 사우디아라비아 알-이맘 무하므다 이븐 사우드 이슬람대학 초빙교수. 저서 ‘이슬람법사상’, 공저 ‘이슬람’ 등.

    4월12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랍세계에서 미국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미국 주도의 중동질서, 나아가 국제질서 재편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연세대 문정인 교수(정치외교학)와 선문대 이원삼 교수(이슬람학)가 이날 만나 전쟁 후 국제 정세를 전망했다.

    이원삼 교수(이하 이): 전후 복구작업에 들어간 미국 입장에서 전쟁은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라크의 정치 상황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크게 세 파로 나뉜다. 북부 모술지역은 쿠르드족, 중부 바그다드는 수니, 남부 바스라는 시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급했던 미국이 북부 쿠르드족의 협력을 받았는데 쿠르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한다. 물론 독립이다. 그렇게 되면 터키의 쿠르드족이 동요한다. 정확한 인구통계는 없지만 터키 인구 6000만명 중 3분의 1이 쿠르드족으로 알려져 있다. 터키가 쿠르드의 독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라크도 쿠르드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게다가 이란과 시리아의 쿠르드까지 동요하게 될 텐데 미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문이다. 시아파에도 친미와 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란에 가깝다. 이란이 시아파에게 영향을 미치면 미국이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들까지 동요하게 된다. 미국이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문정인 교수(이하 문): 전후 미국의 구상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위 부시 독트린의 첫째 요소는 도덕적 절대주의다. 미국적 가치가 절대적 가치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언론·종교·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둘째 패권적 일방주의다. 미국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서 전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셋째 공세적 현실주의. 선제공격 이론이 여기에서 나오는데 적이 우리를 공격해오지 않더라도 위협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 자체를 선제공격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량살상무기와 국제테러리즘을 어떤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미국적 가치를 이라크라는 실험장에서 실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카르자이를 내세워 과도정부를 수립했으니 대통령이 아니라 카불 시장에 불과하다. 아직도 나머지 지역은 군벌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처럼 될 확률이 높다.

    문: 당장 이라크 과도정부를 누가 맡느냐가 관건이다. 이라크국민회의 찰라비 의장이 거론됐지만 그렇게 되면 수니파가 배제된다. 배제된 세력들은 반미봉기의 선봉에 설 것이다. 한편 시아파는 반미성향이 강하고 이란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어 미국을 난처하게 한다. 또 이번에 적극 미국을 도운 쿠르드족의 독립은 이라크, 이란, 터키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수니, 시아, 쿠르드로 갈라지고 쿠르드는 또 쿠르드 애국당과 쿠르드 민주당으로, 수니파는 반사담 친미, 반사담 반미 등 다양하게 갈라진 이라크가 셋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판도라 상자’ 열었다, 전쟁은  이제부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 <br>1951년생. 연세대 철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초빙교수, 미국 국제정치학회 운영위원. 저서 ‘국가정보론’, 공저 ‘남북한 정치 갈등과 통일’ 등.

    이: 당장 아랍국가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고조된다. 이때 힘을 얻는 것이 원리주의 세력이다. 이들의 힘이 커지면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더욱 미국의 힘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50년 동안 힘으로 중동의 질서를 유지했지만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심화되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라크를 밀어붙인다고 아랍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문: 아랍국가는 친미, 반미, 중립으로 나뉘었다. 친미는 요르단,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처럼 작은 나라들로 이들은 주변국가로부터 침공당할 가능성 때문에 미국의 보호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는 중립적 입장이었다. 반미 쪽에는 시리아, 이란, 리비아가 있는데 미국의 전략적 신보수주의자들, 즉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은 이라크를 중심으로 점진적 도미노 효과를 가져와 전 아랍을 민주화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인위적으로 체제를 바꾸고 중동 전체를 친미화한다는 것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당한 모험이지만 미국이 모험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 저변에는 친미 정권을 세워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을 봉쇄하고, 나아가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 하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일단 쉽게 군대를 빼지 못하고 상당 기간 주둔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리아와 이란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이란은 체제보장을 약속받고 이라크 문제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시아파 입장에서 이라크 남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성지다. 이란은 어떤 방식으로든 남부지방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할 것이다.

    문: 지금 미국은 찔러놓고 빼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미군이 빠지면 이라크는 무질서 그 자체가 될 것이며 수니, 시아, 쿠르드의 반목으로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처럼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점령군으로 들어가 오래 눌러 있으면 반미정서가 13억 이슬람 세계에 퍼진다. 오히려 이라크는 후세인 정권 때보다 더욱 불안해진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미국이 원하는 민주화의 도미노가 아니라,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도미노 현상이 중동지역에 나타날 것이다.

    이: 그렇다. 1950년대 중동의 정치적 불안과 무질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문: 주요 산유국들의 정치적 불안정은 석유 수급에도 엄청난 차질을 가져온다. 민주주의 수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전쟁의 목적이 역설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이처럼 복잡한 중동정세를 미국이 모를 리 없는데 왜 무리하게 전쟁을 밀어붙여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1950년대 중동의 정치적 불안과 무질서 상태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통해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산이다. 과거 미국이 소련과 경쟁하던 상황도 아니고, 지금은 취약한 중동 정권들이 오로지 미국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문: 미국이 그렇게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전쟁을 지지한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대로 ‘신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다. 즉 서구적인 것은 하얗고 동방은 검다, 서구는 이성이고 동방은 감성이다, 서구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동방은 허위다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의 시각에서 아랍적인 것, 이슬람적인 것은 타도해야 할 적이요, 21세기 문명의 암초일 뿐이다. 이런 도덕적 절대주의에 연동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안전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보수주의자인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나 펄 전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장 모두 유대인이다. 밖에서 보면 미국이 수렁에 빠지고 있는데 왜 저렇게 무리한 공격을 할까 생각하지만 그들은 가치론적 확신 때문에 전쟁을 선택했다.

    ‘판도라 상자’ 열었다, 전쟁은  이제부터
    이: 과연 가치론적 확신만 가지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가. 미국이 역시 강대국이라고 하는 것은 9·11 테러 이전에 중앙아시아 공략 계획을 세워놓고 기다렸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명분을 찾던 중 9·11 테러가 터지니까 바로 밀고 들어갔다. 그 후 탈레반 정권이 거부했던 카스피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인도양으로 실어 나를 송유관 건설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처럼 치밀한 계산을 하는 미국이 섣불리 중동을 건드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문: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송유관과 철광석 확보라는 경제적 이유와 중국의 포위라는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9·11 테러 이전의 미국이다. 테러 이후 미국은 달리 해석해야 한다. 그들은 9·11 테러가 통제할 수 없는 중동 정권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소형원자탄을 미국으로 들여와 언제라도 습격할 수 있다는 편집증에 빠져 있다. 미국 본토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세력을 제거하려면 중동국가들을 친미화해서 자신들의 통제와 감시 하에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도가 석유 확보보다 우선 순위에 있다.

    이: 물론 중동에서 미국이 원하는 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됐을 때의 이야기다. 현 상황은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중동이 무질서해지고 있다.

    “일방적으로 당했다” 아랍인 감정적 저항 부채질

    문: 솔직히 미국이 제대로 손익계산을 했다면 이라크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은 평범한 사람이 보아도 합리적, 전략적 구도와는 거리가 멀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패권적 일방주의다. 미국에서는 그것을 저지할 견제와 균형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9·11 테러 이후 테러리스트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한 의회도 언론도 지식인도 입을 다물고 있다. 잘못하면 반미, 반애국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이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고유 기능이 마비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이: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일단 기존 아랍의 친미정권까지 놓칠 확률이 높다. 후세인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이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아랍의 게릴라들이 점점 조직화되어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을 가한다면 미국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부시 독트린이라 해도 장기화되면 미국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문: 이번 전쟁은 아랍세계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 자체를 무너뜨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하지 않은 전쟁을 강행함으로써 유엔 중심의 평화유지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둘째, 주권국가 개념이 무너졌다. 부시 행정부의 시각은 불량한 주권국가는 주권국가로서 대접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판단하기에 ‘불량스러운’ 짓을 하면 언제든지 주권을 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기존 동맹에 엄청난 균열을 가져왔다. 그런데도 이라크를 친 것을 보면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자들이 국제정세를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한 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정서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미국이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을 향한 이슬람의 테러가 계속될 것이고,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에 상당한 피해가 생기면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된다. 그때 미국이 급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감정적 팽창주의가 대세다.

    이: 결국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가고 있어 대단히 우려된다. 이번 전쟁에서 아랍 국민들은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 사실 바그다드는 아랍의 상징이다. 8세기 압바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다마스커스에서 바그다드로 옮겨온 후 비로소 아랍 색채가 강해진 이슬람 왕국이 완성됐고, 바그다드는 수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의 수도였다. 이것이 무너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현 정권에 대한 아랍 국민들의 반감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런 복잡한 내부문제로 인해 산발적인 테러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미국적 민주주의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문: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정규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이다. 미국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할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실패할 경우 엄청난 좌절 속에 신고립주의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북핵 문제가 있는 한반도는 제2의 이라크가 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공격할 명분이 없는 데다 북한의 군사력 또한 만만치 않다.

    더욱이 지정학적으로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 남한 모두가 전쟁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은 이제부터 신중해야 한다. 특히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나 핵 재처리 등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면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이 나설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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