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즐거운 지옥’ 남한에서 살려면 …

탈북자 김형덕씨의 성공 정착 가이드 “지원금은 일시적 방편 … 취업훈련에 초점 맞춰야”

  • 김형덕/ 1994년 탈북, 대성그룹 기획팀 근무

    입력2003-04-17 11: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즐거운 지옥’ 남한에서 살려면 …

    경기도 안성 소재 하나원 컴퓨터실

    한국사회에서 탈북자(자유 이주민)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적응이 좀 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한창 부모의 사랑과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새로운 사회에 무작정 뛰어든 젊은이에게 보내는 동정의 마음인 것이다.

    요즘은 질문 내용이 바뀌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온 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더 이상 동정이나 도움, 적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대부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치·경제·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살아온 배경과 환경이 다른 북쪽 사람들이 남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괴로운 천국’이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의해 모든 경제 행위 및 결과의 지휘와 책임을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국가가 맡다 보니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희박하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인센티브가 없는 북한에서 자율적 경쟁, 창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구성원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져 국가와 인민 모두가 궁핍한 오늘의 현실에 이르게 했다.

    북한의 경우 대부분 경제환경이 비슷해서 상대적인 박탈감은 없는 편이다. 정신적으로도 피곤하지 않다. 다만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기가 괴로울 뿐이다.



    남한은 한마디로 ‘즐거운 지옥’이다. 당장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훨씬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각종 미디어는 성공한 사람들이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무한경쟁에 참여한 많은 경쟁자들 중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숫자는 극히 미미한데도 말이다.

    탈북자 고용 기업 3D업종 많아 실효성 미미

    ‘즐거운 지옥’ 남한에서 살려면 …

    사단법인 ‘선한사람들’(총재 조용기)이 설립한 최초의 민간 탈북자 정착 교육기관인 ‘굿피플대학’의 수업 장면. 올해 1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속적인 사회 변화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경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경쟁적 환경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고 그 환경에서 탈출할 기회마저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경쟁에 참여하면 어느 정도의 달콤한 성취는 얻게 된다.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북한이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경제적 개선을 이루지 않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새로운 일원이 된 탈북자들 중 소수의 해외 이민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북한사회가 발전 가능한 사회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주민 전체가 하나의 통합적 사회환경에서 살게 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것은 개개인의 성공적인 삶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입장에서 대처해야 하는지는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현재 정부는 탈북자들에 대해 그 현실적인 여건과 복지정책 수혜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외관상으로는 비교적 복지정책 수혜자로 대우해주고 있다. 주거지와 3700만원 정도의 정착지원금, 교육 의료 취업 지원 등 언뜻 보면 혜택의 정도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북한사회의 특수성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곳의 문화에 익숙한 탈북자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우선 정책이 일시적인 금전적 보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금전적 시혜가 일시적이란 점을 망각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돈을 쉽게 소비하고 자기계발을 하지 않아 정착지원이 끊겼을 때 심각한 경제적 고충을 겪기도 하며 일부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즐거운 지옥’ 남한에서 살려면 …

    중국 베이징의 독일학교 등에 은신해 있던 탈북자 20여명이 지난해 12월1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위).탈북자 교육관 하나원

    많은 북한 관련 연구자들도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의 안정된 일원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탈북자들이 직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자율성과 성실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정착지원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즉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취업을 통한 정착 지원으로의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나 실효성이 미미하다. 취업 장려의 일환으로 만든 탈북자 고용 기업에 대한 2년간의 급여 지원은 인력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탈북자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조치다. 하지만 이들 기업 대부분이 3D업종이어서 탈북자들이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드물다.

    취업교육 지원의 경우 교육프로그램이 제한적이고 교육을 통한 자격증 취득과 실제 취업과는 별개의 문제여서 취업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취업훈련을 받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자유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남한 땅에 온 탈북자들이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이나, 취업이 보장되지도 않는 취업교육을 기피하는 것은 어쩌면 현명한(?) 계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정착 지원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 먼저 취업훈련을 특정 기술이나 기능직에 한정하지 말고 교육 종목을 다양화해야 한다. 직업교육 장려금을 현재보다 인상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배우는 일에 적극적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둘째 취업보호 문제다. 훈련을 통해 일정한 기능과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 한에서는 취업가산점을 법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탈북자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한다. 남한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나 몇 십년 전에 이주한 사람이나 탈북자들은 사고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그만큼 북한사회가 오랫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누구나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폭이 남한사람들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장점을 활용해 관련 정부기관이나 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탈북자들을 위한 초기교육 시설인 하나원 운영자들을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끝으로 탈북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현실성 있는 꿈을 가지고 부단히 도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습관화하길 바란다.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달콤한 돈에 길들여지기보다는 체계적인 직업교육 등을 통해 안정적인 직장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은 탈북자들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적어도 5년) 후에 개인사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하다면 대학 등에서 배움의 시간을 갖는 것도 소중한 경험들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