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유인태의 입 왜 닫혔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4-16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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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태의 입 왜 닫혔나

    유인태 정무수석.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K국장은 청와대 유인태 정무수석과 중·고·대학을 같이 다닌 ‘40년지기’다. K국장의 부인이 유수석의 여동생으로,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1970년대 공직사회에 진출한 K국장은 민청학련 주역이었던 유수석 때문에 위기를 겪는 등 ‘아픈’ 기억이 많다. 최근 K국장은 실세 인척 유수석 때문에 다시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4월7일 유수석이 기자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한 말 때문이다.

    “지금 가장 투명화가 안 된 부서가 행정부 쪽이다. 내 판공비가 500만원이고, 다른 수석은 300만원인 모양이다. 정부부처 국장으로 있는 매제가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은 판공비가 1000만원이 훨씬 넘는다. 아예 한도가 없다고 한다….”

    이 발언으로 ‘공무원들의 판공비’가 도마에 올랐다. “공무원들이 무슨 판공비를 그렇게 많이 쓰냐”는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총리실 한 고위 관계자는 “국장이 무슨 판공비를 1000만원씩이나 쓴다는 것이냐”며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말을 잘랐다. 화살은 K국장에게도 쏟아졌다. “1000만원을 쓰는 유수석의 매제는 도대체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느냐”.

    손바닥처럼 좁은 공직사회. K국장은 몸을 숨기기 어려웠다. 기자들과 동료 공직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이어졌다. K국장은 지난 14일 통화에서 “판공비가 1000만원이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외빈 등을 접대해야 하는 외교부의 특성상 업무추진비가 다소 많은 것을 유수석이 혼동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K국장측이 밝힌 한 달 판공비는 40만~50만원 선. 난처해진 것은 유수석. 결국 “개인이 아닌 국 단위의 업무추진비 규모를 말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다.

    유수석은 비교적 솔직담백한 스타일이라는 게 그를 접해본 기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속내를 숨기거나 말을 돌리지 않는다. 판공비 발언도 이런 스타일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술자리에서 유수석은 나이브한 스타일 그대로 몇 가지 ‘비화’를 더 소개했다. 회의 때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는 고백도 그 가운데 하나.



    “회의 때 가끔씩 존다. 장관 발표할 때(2월27일)도 사실 졸았다. 문희상 비서실장도 많이 존다.” 졸음과 관련해 유수석의 어머니 비화도 공개했다.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사형선고 받고 웃었다는 게 사실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정말 웃었다. 미친X들, 그게 무슨 사형감인가.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가 사형선고 받을 때 우리 어머니가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가협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전설 같은 얘기다. 아들이 사형선고 받는 순간에 어머니가 졸다니…”

    2002년 1월, 통추 신년모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원혜영 부천시장에게 장관직을 제의한 상황도 설명했다.

    “노대통령이 원시장에게 선거(2002년 6월 지방선거)에 나가지 말고 같이 내각에서 일하자고 제의했다. 노대통령은 상당히 진지하게 얘기했던 모양인데 원시장이 ‘노선배, 장관은 3배수만 약속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원시장은 농담으로 들은 거다. 당시 노대통령이 상당히 기분이 상한 것 같더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과의 회동 내용도 이날 술자리에서 공개됐다. “당선 후 박 전 실장을 딱 한 번 만났다. 고백하건대 다른 얘기는 없었다. 박 전 실장이 특검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박 전 실장은 1년에 300일을 기자들과 술을 먹지 않느냐. 박 전 실장이 노하우를 하나 가르쳐줬는데 ‘알잔(스트레이트)’을 먹지 말고 폭탄주부터 먹으라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유수석의 이런 나이브한 면을 좋아한다. 중앙 일간지 한 기자는 “엑설런트한 취재원”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유수석에게 이런 모습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판공비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후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 참석한 유수석은 “오늘은 ‘읍’입니다”며 말문을 닫았다는 후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노대통령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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