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함석헌 선생 강의 정리해 볼랍니다”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4-16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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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 강의 정리해 볼랍니다”
    한번은 보안사 요원이 강의에 몰래 참석했더군요. 함석헌 선생이 잠시 기다리다가 ‘나는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표리부동한 사람하고는 그럴 수 없다’면서 쫓아냈지요.”

    재작년까지 서울시, 문화관광부, 특허청 등에서 33년간 묵묵히 일해온 조의영씨(63)는 공무원 경력 이외에 남다른 이력이 있다. 암울했던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기에 장안의 지식인들을 죄다 불러모은 신천 함석헌(1901∼89) 선생의 고전 강의에 18년간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 71년 정동교회에서 ‘성서동양학회’로 시작한 선생의 고전 강의는 89년 함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정동교회, 향린교회, 젠센기념관 등을 돌며 18년간 이어졌다. 모임에는 장준하, 김용준, 강원용, 문동환, 한승헌씨 등 당시 내로라하는 민주인사들이 모여 노자 장자 맹자 등의 이론을 빌려 치열한 시국토론을 벌였다. 김용옥 교수가 부끄러워 참석하지 못했다던 바로 그 강의다.

    “화요일은 노자, 목요일은 장자 이런 식이었지요. 저는 공무원이라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매번 참석하여 자질구레한 일을 하며 선생을 도왔습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로 퀘이커 교도이자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운 시대의 선각자였던 함선생의 강의는 당시 가장 혁신적인 고전 해석이었다. 강의 내내 그는 제자들에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시국과 인권, 통일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시 조씨는 공보처 산하 영화제작소에서 대한뉴스를 담당했던 까닭에 영상과 음향에 밝아 선생의 18년간의 거의 모든 강의를 테이프로 녹음할 수 있었다. 그것이 현재 600여개의 테이프로 고스란히 그의 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씨알의 소리’를 중심으로 나왔던 함선생의 저술은 대부분 책으로 나왔지만 강의는 아직까지 정리된 적이 없다. 대신 강의가 원전 중심으로 이루어져 한문에 대한 식견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바쁜 공무원 생활에 쫓겨온 조씨는 그동안 1만5000시간이 넘는 분량을 녹취할 여력이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 달 전 함선생 탄신 102주년을 맞았는데 함선생 명성을 이용만 해온 유명인보다는 젊은 연구가들이 본격적으로 함선생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조씨는 “나는 녹음을 해 나중에 공부하려고 했는데 게을러서 손해가 많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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