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리모델링 개혁, 소리없는 혁명

인수위 ‘노무현 정권’ 국가 경영 틀 잡기 … 지나친 의욕 앞서나간 입 때문에 일부 마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1-09 16: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리모델링 개혁, 소리없는 혁명

    1월3일 서울 세종로 인수위원회에서 경제2분과위원들이 통상교섭본부 실무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6층.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집무실이 있는 이곳을 기자들은 ‘크렘린’이라 부른다. 출입이 통제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진행되는지 도통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광재, 안희정씨 등 노당선자의 핵심 측근들은 출입통제 조치가 못 미더웠던지 자신들의 방문에 ‘폐쇄’라는 종이쪽지를 붙여 별도로 안전장치를 취했다.

    개혁 청사진 ‘10대 국정 아젠다’ 잠정 확정

    노당선자는 ‘인사가 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번 인수위 인사에서도 사람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드러냈다. 인수위 산하 정치개혁연구실 실장에 임명된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2002년 7월부터 미 스탠퍼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인물이다. 노당선자는 그를 불러들여 “정치개혁 청사진을 그려내라”고 요청했다. 인수위 참여를 고사한 한 지방대학 교수에게 “아침저녁으로 전화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말로 노당선자의 인사 스타일을 설명한다(상자기사 참조). 다면평가를 받지 않은 인사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노당선자는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집행할 인사들을 인수위로 불러모았다. 노무현 사단은 변화와 개혁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전략적 과제로 삼고 있다. 한 인사는 개혁혁명가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들에 의해 노무현 정권의 ‘밑그림’은 조금씩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인수위원들은 2002년 12월30일 노당선자가 주재한 인수위 첫 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부터 분야별 세밀한 과제까지 향후 50일간 인수위가 해내야 할 숙제를 전달받았다. 통일·외교·안보·정치·인사 등 그야말로 ‘노무현식’ 철학과 소신이 잔뜩 밴 아젠다였다. 이를 토대로 인수위는 5일 10대 국정 아젠다를 잠정 확정했다. 노무현 정부가 5년 동안 경영해 나갈 국가 청사진인 셈이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마치고 본격 검토해왔던 국가경영의 비전과 철학을 체계화한 것들”이라며 이미 상당부분 뼈대가 갖춰졌음을 시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아젠다는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이다. 아시아가 중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고, 이는 단기적으로 기회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위기라는 노당선자의 인식이 깔려 있다. 인수위는 단기적 기회를 동북아 특수로 연결시키고 장기적 위기를 경쟁력 강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과 비전을 제시하라는 노당선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노당선자의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국가시스템 혁신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은 인사개혁, 부패방지, 정치개혁, 행정개혁 등도 노무현 정권의 핵심 아젠다.

    인수위는 이 같은 아젠다를 변화와 개혁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어 노무현식 국정운영 틀을 만들 계획이다. 기존의 관행에서 탈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과거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김대중 인수위’가 재벌개혁 등 기존 정책을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식 개혁을 추진했다면, ‘노무현 인수위’는 미비점을 보완하는 리모델링식 개혁”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 활동은 변화와 개혁성, 과감한 실험성에 토대를 둔다. 노당선자가 5일 “열린 청와대, 일하는 대통령의 개념에 맞도록 집무공간을 재배치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사실상 행정부를 지휘, 감독해왔던 옥상옥 관행의 폐지와 대통령 보좌란 고유 기능의 활성화로 그 의미가 압축된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앞으로 있을 청와대와 정부의 역할분담 및 위상변화도 미리 점칠 수 있다.

    리모델링 개혁, 소리없는 혁명

    2002년12월30일 인수위 현판식에 참석한 노무현 당선자와 임채정 인수위원장.

    부처별로 진행되던 업무보고가 주요 국정 과제를 중심으로 모든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토론 및 합동 보고로 바뀐 것도 개혁적인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인수위가 실무인력 인선에 도입했던 다면평가제를 정부부처 인사에 확대 적용할 것을 검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하수평 다면평가가 정부부처 인사로 확대될 경우 인수위 활동의 개혁ㆍ실험성이 제도로서 정착하게 됨을 의미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검찰의 중립성 강화를 위해 자문기구 성격의 현행 검찰인사위원회를 의결기구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이것이 제도화할 경우 검사동일체 원칙 같은 기존 관행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정제되지 않은 각종 정책 아이디어 ‘함구령’

    출범한 지 10여일,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인수위의 소리 없는 혁명은 이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전방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 인수위의 지나친 의욕이 옥의 티가 되고 있다. 인수위의 고위 관계자는 2일 국가정보원 도청 의혹,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 의혹 등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과 관련, “어디까지 사실이고, 사실이라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당장 ‘월권’이라는 한나라당의 반발을 샀다. “인수위 활동 과정에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현 정부의 실정이나 비리 의혹에 대해 짚을 것은 당연히 짚을 것”이라는 한 인수위원의 발언은 민주당 내 구주류의 불만 표출로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 추징금 문제, 조흥은행 매각, 선물시장 부산 이전,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폐지 등 현안에 대해 인수위가 입장을 밝힌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의욕과 앞서 나간 인수위측의 ‘입’으로 인해 청와대측과 갈등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2일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공정위의 추징금 문제와 관련 “인수위가 오버페이스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통보가 늦어 귀책사유가 우리에게 있다”며 뒤로 물러났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지는 못했다. 인수위와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국정 1기(2003년 2월25일∼2004년 총선) 개혁 방식과 속도에 대한 해법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인수위의 강도 높은 재벌개혁정책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출범도 하기 전부터 인수위와 재계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당초 노당선자는 당선 직후 경제 5단체장 간담회 등을 통해 “충격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인수위 활동이 진행되면서 재벌에 대한 강공책이 터져 나온 것. 이런 흐름을 놓고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노무현 캠프의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나고 있다”고 조롱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의욕만 앞선 노당선자 진영의 한계”로 상황을 정리했다.

    인수위 활동을 지켜보던 언론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새 대통령이 등장하면 언론은 통상 6개월에서 1년간의 허니문 기간을 설정, 새 대통령의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인수위의 정책 남발과 인사 혼란 등이 불거지자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임채정 인수위원장은 2002년 12월26일, 1997년 당시 인수위원장이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조찬 회동을 가졌다. 이 전 원장에게 인수위와 관련해 한수 지도해줄 것을 부탁하는 자리였다. 이 전 원장은 이 자리에서 ‘언론’ 문제를 짚었다고 한다. 임위원장은 3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인수위원들과 첫 상견례를 한 자리에서 이 전 원장이 준 교훈을 그대로 전달했다.

    “98년 인수위는 설익은 정책들이 보도돼 혼선을 겪었습니다. 구체적인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주십시오.”

    그럼에도 정제되지 않은 인수위의 각종 정책과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급기야 임위원장은 언론접촉금지령과 금언령을 내렸다.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관련 발언 등을 쏟아냈던 경제1, 2분과 소속 위원들은 “우린 입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침묵으로 무장한 인수위원들은 사무실을 벗어나면 더 바쁘게 움직인다. 하루 수십명의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듣는가 하면 일부 인수위원들은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하기도 한다. 인수위 행정실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 오피스텔을 물색중이다. 노당선자가 주재하는 인수위 전체회의는 앞으로 매주 1회 개최되어 그때마다 주간 과제를 제시할 계획이다. 인수위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노무현 정부의 성패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