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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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울 땐 애완용 버릴 땐 혐오동물

개·고양이 등 연평균 10만~12만 마리 유기 … 전염병 발생 우려·민원 급증 대책 시급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1-09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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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울 땐 애완용 버릴 땐 혐오동물

    주인한테 심하게 맞아 다리가 부러진 도베르만. 포획 당시엔 자궁이 몸 밖으로 나와 있었다.

    1월3일 경기 양주군 남면 동물보호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손님맞이에 나선다. 대장 노릇을 하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경비를 서고 있고, 안쪽으로 치와와 가족과 푸들 남매 등 60여 마리의 가족들이 추위에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다. 개 보호소 건너편에 자리잡은 고양이 보호소는 고양이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연신 ‘야옹야옹’ 울어대는 고양이들의 얼굴엔 무슨 까닭인지 수심이 가득하다.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살아가는 애완동물의 대부분은 주인으로부터 학대받고, ‘용도폐기’된 불쌍한 생명들이다. 보호센터에서 이들을 돌보고 있는 김세진씨(24)는 새 식구가 들어올 때마다 울음보를 터뜨린다고 했다. 주인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된 칠칠이, 거리를 떠돌다 교통사고를 당한 시추, 병에 걸린 채 서울 시내를 헤매던 레오…. 모두가 한 가지씩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산업 성장 생명 경시 ‘그늘’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주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애완동물 수가 연 평균 10만~12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애완동물 수는 300여만 마리, 관련 사업의 규모는 1조원에 이른다. 동물 콘도, 장례식장, 미용실, 카페테리아 등 애완동물을 위한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지만, 비정상적인 관련 산업 성장의 그늘에는 생명 경시 풍조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민간 동물보호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애완동물 유기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는 여름 휴가철이고,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서울 강남구다. 여행을 떠날 때 애물단지가 되는 애완동물을 슬며시 갖다 버리는 것이다. 똥오줌을 못 가린다고, 몸집이 갑자기 커버렸다고, 병에 걸렸다고…. 기르던 동물을 버리는 이유도 다양하다.



    보호시설에 들어온 동물들은 모두 대인기피 증상을 보인다. 사람만 보면 움츠리고 구석으로 숨는 것.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이덕재 소장은 정성껏 기르던 개를 거리에 버리는 사람들을 “개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불렀다. 이소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에 버리는 게 일반적이고, 목을 조르거나 구타해 죽인 뒤 야산에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청계천 지하공간은 유기 동물들의 전시장이라고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토끼, 악어, 거북이까지 발견된다. 토끼나 악어, 거북이 등을 애완용으로 구입한 뒤 사육이 어렵자 하수구 구멍을 통해 버린 것이다.

    키울 땐 애완용 버릴 땐 혐오동물

    새로 들어온 고양이를 차에서 내리고 있는 동물보호단체 직원.

    서울시에 따르면 2001년 한해 동안 서울 시내에서 ‘붙잡힌’ 유기 애완동물은 모두 3279마리로 2000년의 2018마리에 비해 62%나 증가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02년에는 2001년보다 더 많은 수의 애완동물이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전염병 발생 우려가 커지고 주민들의 민원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유기된 애완동물들은 환경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는데, 특히 인간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들은 지나친 번식으로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 되고 있다. 환경부가 1994년부터 들고양이를 유해조수로 지정하고 구제사업을 실시해왔으나 야생화하는 고양이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이소장은 “야생화하는 고양이들의 폐해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거리를 떠도는 개들 중 상당수가 광견병에 노출돼 있다”며 “유기동물 처리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0년 부산을 시작으로, 상당수의 지자체들이 구·군별로 ‘포획조’를 운영해 ‘떠도는’ 동물을 잡은 뒤 동물병원 등에 위탁·보호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원과 예산이 부족해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인력 부족으로 포획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잡아오거나 보호하고 있는 애완동물을 동물보호센터에 인계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키울 땐 애완용 버릴 땐 혐오동물

    청계천 지하공간에 방치된 악어 사체(왼쪽). 구석으로 숨어 주변을 경계하는 개.

    서울의 각 구청은 포획한 애완동물을 보호센터에 넘기고 위탁료를 지불한다. 한 달 동안 구청이 주인을 찾는 공고를 내고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보호센터는 관리하던 동물들을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분양한다. 언뜻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쉽게 분양이 이뤄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동물들은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다. 보호센터가 수용할 수 있는 두수는 제한이 있는 데 반해 매일 평균 5~6마리의 유기 동물들이 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안락사는 보통 황산마그네슘 등 유독물질을 혈관주사로 주입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김세진씨는 “불임수술이나 안락사를 시킬 때는 가슴이 미어진다”며 “관리에 적당한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병세가 깊은 동물들부터 목숨을 빼앗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론자들은 “애완동물들을 유기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동물 관련 법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교원대 김수일 교수(야생동물학)는 “애완동물에 대한 소유등록제를 도입하고 동물 학대와 유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 “유기동물 보호를 위해선 자치단체가 직접 보호시설을 운영하거나, 국가가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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