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恨을 풀어낸 자서전 ‘감동 밀물’

부산 반송洞 홀로 어르신 10명 이야기 큰 반향 … 인터넷에 이어 사진과 글 엮어 ‘出刊’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1-09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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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을 풀어낸 자서전 ‘감동 밀물’

    김상순 할머니(왼쪽)와 김창현 할아버지. 굴곡 많은 인생이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됐다.

    ”저는 1932년 가난한 농가의 셋째 딸로 태어나, 식구는 많고 먹을 것이 부족해…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해 저를 많이 때리곤 했습니다. 시집살이도 대단했습니다.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야 했고 시아버지께서도 술과 노름을 좋아해… 결국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큰아들은 가출한 며느리를 찾으러 나간 후 소식이 끊겼고 작은아들은 나쁜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사람들은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면서 왜 그러고 사느냐고 달아나라고 했습니다. 식도암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다… 남편의 사과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억울해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세상 가서 건강하라고 했더니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김상순 할머니·71)

    솔직 담백 인생 반추 찬사 쏟아져

    恨을 풀어낸 자서전 ‘감동 밀물’

    홍찬수 할머니(82)

    “저는 1920년 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만주, 대만, 일본 등지로 피신을 다녔습니다. 스무 살에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결혼을 했지만 부인은 1년이 안 되어 병에 걸려 죽고…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스물일곱에 재혼을 했지만 아들이 여섯 살도 되기 전에 부인이 병을 얻어 죽었습니다. 그 후 첫째 아들은 열두 살에 병을 얻어 죽고… 둘째 아들마저 죽었지요. 이후 저의 삶은 술과 여자와 노름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지낸 날이 후회스럽지만, 또 술을 마시지 않고 하루를 견디기가 힘들지만, 요즘은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니 이제는 편안합니다.”(김창현 할아버지·83)

    평범하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홀로 어르신(독거노인)’ 10명의 자서전이 인터넷 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1·3동에 사는 이들 홀로 어르신들은 연말연시 한 달 동안 한 많은 삶과 희망의 이야기를 자서전을 통해 쏟아냈다. 이들의 ‘소박하지만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온라인(chalkak.com)과 오프라인으로 담아낸 주인공은 부산지역 YMCA 반송종합사회복지관과 인터넷 아마추어 사진작가 동호회 찰칵닷컴(chalkak.com) 회원들.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동부산대학 가족복지과 학생들과 복지관 직원들은 수차례의 도전 끝에 그들의 육성을 담담하게 글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고, 찰칵닷컴 사진작가 20여명은 팀을 이뤄 어르신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지난 연말 인터넷에 자서전의 일부가 올려지자 폭발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80여장에 달하는 어르신들의 사진과 글들이 올라올 때마다 감동의 답신이 꼬리를 이었다. 일주일 새 800명의 네티즌이 다녀갔고, 방명록에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등 격려와 찬사가 쏟아졌다.



    복지관과 사진작가, 자원봉사자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펴내기 위해 이렇듯 한데 뭉치게 된 것은 소외된 이웃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비록 주목받지는 못하더라도 홀로 어르신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희망을 찾을 계기를 마련해 주자는 취지에 모두 동조했기 때문.

    恨을 풀어낸 자서전 ‘감동 밀물’

    최귀득 할머니(71), 류순남 할머니(82), 조금옥 할머니(나이 모름)(위부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인생이기에 홀로 어르신들의 자서전에는 불행으로 얼룩진 인생 역정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학대와 폭력, 가족의 죽음, 경제적 파산, 끝없는 좌절 등….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행복했던 시절과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뒤 맛보는 기대와 희망도 담겼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엮어낸 이들의 자서전은 비록 투박하고 어설프지만, 고해성사와도 같은 솔직함으로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물론 어르신들의 자서전이 나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런 것 해서 뭐 하냐”며 귀찮아하는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데 매일같이 이들을 접하는 복지관 직원조차 진땀을 흘려야 했다. 복지관 윤승애 과장은 “돌이키기 싫은 과거를 밝히는 것이 노인들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어르신들을 처음 보는 사진작가들은 더욱 힘들었다.

    “처음 보는 이에 대한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가져다주며 신뢰를 쌓았고, 한 사람이 어르신들의 긴장을 푸는 동안 다른 작가가 사진을 찍었습니다.”(찰칵닷컴 이정훈 회장)

    1월16일 뜻 깊은 출판기념회

    사실 반송지역 어르신들이 자서전을 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1월과 2002년 1월 각각 두 차례 삽화가 곁들여진 자서전을 냈었다. 하지만 삽화 대신 흑백 사진이 들어가고 자서전이 인터넷에 오르면서 홀로 어르신들은 어느새 유명인사가 됐다. 온라인에 올려진 이들의 자서전은 책자로 만들어져 1월16일 어르신들에게 안겨질 예정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와 함께 열리는 사진 바자회의 수익은 모두 어르신들의 후원비로 전해진다.

    “우리들의 인생과 자서전에는 슬픔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홀로 어르신들의 ‘소박하지만 특별한’ 자서전은 ‘과거를 향한 독백’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행복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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