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팝송은 흐르고, 사랑은 무르익고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1-09 13: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팝송은 흐르고, 사랑은 무르익고
    뮤지컬 영화가 아니어도 음악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가들의 일생을 그린 영화들이 그렇다. 모차르트를 다룬 ‘아마데우스’나 여성의 알토에 해당하는 성부를 노래하는 남성 가수(카운터테너)의 삶을 보여준 ‘파리넬리’, 비올라 연주자의 삶을 다룬 ‘세상의 모든 아침’ 같은 영화는 모두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 영화 전편에 깔려 우리를 더 깊은 감동의 세계로 데려가곤 했다.

    배경음악이 매혹적인 영화들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판매용 음반으로 내놓기도 한다. 최근 개봉된 ‘피아니스트’ ‘밀애’ ‘슈팅 라이크 베컴’ 등의 O.S.T는 영화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The 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핀 테일러 감독의 ‘체리쉬’도 미국에서는 O.S.T 음반이 발매됐다.

    특히 이 영화는 음악이 영화 제작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전설적인 록그룹 더 어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이 발표해 1966년 3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노래 ‘체리쉬(Cherish)’가 그 음악이다. 감독은 노래 가사 중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제가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는(cherish) 것만큼 당신도 저를 소중히 생각하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란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이것을 모티브로 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감옥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소자들을 족쇄를 채워 일반 주택에 가두고 위성 추적장치로 감시하는 ‘족쇄 프로그램(The Bracelet Program)’을 소재로 한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 때문에 강제로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경찰을 치어 족쇄를 찬 채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조이(로빈 튜니)와 이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경찰 빌(팀 블레이크 닐슨) 사이에 싹트는 사랑을 그렸다.

    조이는 음악 없이는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20대 중반의 수다스럽고 산만한 여자다.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애인도 없어 우울증에 걸린 조이의 유일한 탈출구는 흘러간 팝송을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 ‘체리쉬’. 조이는 이 프로그램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해 듣곤 한다. 그러다 사고를 내게 된 것.



    조이는 남성적 매력이 거의 없는 빌에게 관심이 없지만 빌은 조이를 향해 일방적인 사랑을 키운다. 경찰과 범죄자 사이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로 바뀌면서 배경음악 ‘체리쉬’가 등장한다.

    이 영화의 배경음악은 대부분 1960~80년대에 발표된 달콤한 흘러간 팝송들이다. 그룹 10cc의 ‘I’m not alone’은 조이가 사무실에서 전화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해 듣는 곡이다. 1980년대 발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영화 ‘은밀한 유혹’ ‘버진 수이사이드’에서도 사용됐다.

    팝송은 흐르고, 사랑은 무르익고
    국내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The Turtles’의 ‘Happy together’는 빌이 조이를 생각할 때마다 흘러나온다. ‘The Flamingos’의 ‘I only have eyes for you’는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조이가 답답함을 이기기 위해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슈퍼마켓 물품 배달원을 유혹할 때 흘러나오는 곡이다.

    이처럼 음악이 영화의 흐름을 끌고 가는 한편으로 만화적인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조이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창밖으로는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가고 금세 비가 내린다. 아무 장식 없는 벽에 순식간에 벽화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때 조이의 마음은, 영화 ‘아멜리에’에서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자 그대로 물이 되어 녹아버리는 주인공 아멜리에의 마음이다. 감독이 양식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스타일리스트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런 기법들은 주인공 조이의 직업이 컴퓨터 애니메이터란 점 때문에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이때 흐르는 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예가수 노이 베너블(Noe Venable)의 몽환적인 느낌의 ‘Down Easy’. 이 곡은 배경음악 가운데 유일하게 최근(2000년) 발표된 곡이다. 잠시 뒤 찾아온 빌이 “왜 음악을 좋아하세요?”라고 묻자 조이는 “(갇혀 지내야 하는, 애인도 없는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결국 조이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을 궁지에 빠뜨린 스토커를 찾아내고 혐의를 벗는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와 끝없는 호기심으로 비루한 현실을 극복해낸 조이에게서 인생의 스무 고개를 풀어가는 비법을 배울 수 있을 듯하다.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