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7

2003.01.09

제대로 한판 싸울 수 있겠구나

  • 최성각 / 소설가·풀꽃세상 사무처장

    입력2003-01-03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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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한판 싸울 수 있겠구나
    새해다. 지난 세밑에 어떤 천재적인 시나리오 작가도 짜지 못할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노무현 시대’가 열렸다. ‘노무현 당선 사태’에 충격을 받은 보수적 논객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노무현 시대’의 특성과 의미에 대한 일반론에 이제는 동감을 표하는 눈치다. 그의 당선을 암묵적으로 원치 않았던 거대 언론들도 “당선되기 위해 내세웠던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나라와 사회를 생각하는 좋은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고 비판적 덕담을 건네고 있는 모양이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와 경천동지할 만큼 변화된 시대 흐름에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환경운동 하는 글쟁이로서 노무현 시대를 반기는 이유 중에는 최소한 그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라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다. 만약 권위주의적인 특성이 사회안정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던 상대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시민운동 부문에서는 또다시 대화 불통과 끝없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 돌입할 우려가 있었던 터였다.

    ‘노무현 당선자’ 환경 살리기 최소한 대화상대 기대감 커

    스스로 서민 이미지를 강조했고, 자신의 리더십은 ‘국민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밝힌 노무현 당선자는 ‘대화정치’를 자주 역설하곤 했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대선이 끝나면서 처음 든 생각은 그래서 ‘아, 이제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되었구나’였다. 전투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혀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대는 싸움이 아니라 치열한 논리적 대화를 통해 망국적 국책사업을 철회할 수도 있는 결정권자를 도울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반가움이었다.

    지난해 골목의 벽보판에 붙여진 일곱 명의 후보들 모두 얼굴 생김새와 출마의 변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그들 모두 이 나라의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거나 한결같이 극도의 무관심을 표했다. ‘진짜 진보’라는 후보자 또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피로를 푼다고 말했다. 물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의 최첨병을 자임한 이도 한 번도 제대로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노출한 셈이다.



    노무현 후보 역시 환경문제에 관한 한 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대응밖에 하지 않았다. 더욱이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어불성설의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노무현 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는 “문제 있다. 안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전북지역에 표를 얻으러 갔을 때에는 “당시 그렇게 말한 것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결정한 국책사업인 만큼 친환경적으로 새만금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것은 환경운동 하는 이들에게 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자 이튿날 상도동에 가서 ‘영삼이 시계’를 흔들어댄 것보다 더 깊은 실망과 좌절을 안겼다. 여느 정치가들과 달리 ‘소신’이 트레이드마크인 노무현씨가 바로 그 소신을 저버리면서 ‘보통 정치인’의 얼굴을 드러낸 데 대한 실망감이었다.

    물론 대통령후보들이 환경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여러 공약들 중에 환경과 생명문제를 뒷전으로 미룬 게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국민의 환심을 사 권력을 얻으려던 그들이 국민의 마음속에 환경문제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는 것을 간파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제는 끝없이 성장해야만 하는 것이고, 중단 없는 생산과 건설은 풍요로운 사회의 기본 동력이라는 믿음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치르게 될 생명파괴와 자원고갈, 기후변화라는 미증유의 무서운 대가에 대한 두려움은 지도자나 국민들이나 결여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행히 ‘정서적’으로는 생명파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는 ‘노무현’의 시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대로 멋지게 한판 싸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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