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7

2003.01.09

민정계·개혁파 동거 잘 될까

한나라당, 투톱체제 ‘개혁특위’ 발족 … 원내 중심정당 논의 활발, 국면 전환 카드도 준비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1-02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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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계·개혁파 동거 잘 될까

    2002년 12월26일 한나라당 천안연수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 참석한 의원들의 표정이 무겁다.

    ”뚱뚱하고 못생긴 저와 잘생기고 훤칠한 홍사덕 의원이 힘을 합쳤습니다.”(한나라당 현경대 의원)

    민정계와 개혁세력의 어색한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은 ‘농담’으로 개막됐다.

    한나라당은 2002년 12월27일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개혁특위)를 발족하기로 결정하고 공동위원장에 홍사덕, 현경대 의원을 임명했다. 서청원 대표는 “개혁특위에 당 최고위원회의 권한이 위임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특위는 한나라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헌 당규’, 당내 권력구조 개편 방안을 결정하게 되므로 사실상 당의 미래를 좌우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셈이다.

    12시간 난상토론 연찬회 ‘천안사태’로 불리기도

    당내에선 개혁특위 위원(30여명 추산)의 각 계파간 배분율, 개혁특위의 결정에 따른 당권의 향배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의 불투명한 행보와 관련, 두 가지 다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민정계·개혁파 동거 잘 될까

    한나라당의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홍사덕(위), 현경대 의원.

    우선 일부 당직자와 의원들 사이에서 ‘인적 청산’ ‘권력 투쟁적’ 관점에서 한발 물러서 ‘당내 토론문화의 개선’ 차원에서 개혁을 이루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26일 천안연수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석회의장에는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200여명이 참석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회의는 비공개로 열렸다. 대다수 의원들은 “공개토론에 익숙하지 않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선 말문이 막힌다”고 얘기했다. 이날 당 중진 및 보수성향 의원들은 개혁성향 의원들을 몰아세웠다. 오후 7시 서대표가 본인을 포함한 최고위원 전원 사퇴 및 차기 지도부 불출마 의사를 밝힌 대목이 하이라이트였다. 많은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퇴장하려는 서대표를 만류했다. 서대표는 사퇴 의사를 번복하면서 원희룡 의원을 지목하며 “할 말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갑자기 여러 의원들이 박수를 쳤다. 원의원은 말이 없었다.

    다음날 미래연대 소속 남경필 대변인은 연찬회 분위기를 들어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미래연대는 “일부가 토론을 비이성적으로 몰아갔다”는 성명을 냈다. 일부 개혁성향 의원들 사이에선 ‘천안사태’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A씨는 천안사태에 대해 “한나라당이 원내 중심정당으로 발돋움하는 징조였다”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강압적 토론 태도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1인지배체제에 익숙해 있는 일반 의원들이 ‘제왕’이 사라진 상황에서 창당 이래 처음으로 당의 운명을 놓고 12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얘기였다. 서대표는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날 토론회는 △기존 당 최고 권력기구인 최고위원회의의 ‘무력화’ △새로운 권력기구인 개혁특위 구성 △특위 위원장 인선 △당 개혁을 위한 아젠다 확정 등 적지 않은 결과물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현 지도부 즉각 퇴진 반대’를 관철시킨 이해봉 의원도 기자에게 “현 지도부가 밝힌 차기 지도부 불출마 의사는 철회된 게 아니다. 토론회가 거둔 성과다”라고 말했다.

    민정계·개혁파 동거 잘 될까

    12월 27일 여의도 미래연대 소속 의원 및 회원들이 미래연대 사무실에서 당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왼쪽). 12월23일 한나라 당사 국회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장 앞에서 당원들이 재개표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2년 초 민주당, 한나라당에서 도입한 최고위원회의로 대변되는 집단지도체제는 ‘정당 민주화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이젠 한나라당에서 용도 폐기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주요 정책은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의원총회에서 결정하고 미국처럼 원내총무가 사실상의 당대표 역할을 수행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당 지도부 B씨는 “정책적 무질서, 중우정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 상임위와 정책위의장의 역할이 강화된다. 대신 대표와 사무총장의 기능은 축소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B씨의 설명. “소수가 전부를 갖는 지금의 당권 개념은 없어진다. 한나라당의 정책은 의사 수렴 과정 없이 제왕적으로 결정되어왔다. 근본적 개혁은 민주적 토론문화 활성화에 있다. 지나친 보수, 지나친 진보, 지역감정 조장 등은 다수가 참여하는 공개적 토론 과정에서 정화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다자간 격론을 통한 정책결정’에 익숙해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차세대 지도자가 될 만한 ‘스타’도 찾아내야 한다. 토론정치의 성공 여부가 2004년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다.”

    차기 당권의 핵심은 2004년 공천권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개혁세력과 구 주류 간 ‘휴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은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구성될 당 지도부와는 별도로 한다는 생각이다. 개혁 모양새를 대외에 보이면서 당의 분열을 막자는 것이다.

    당내 재선의원 모임인 희망연대의 대표간사 안상수 의원은 두 번째 색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안의원은 기자에게 “노무현 당선자측이 ‘정당개혁’ 이슈를 제기하면서 이 이슈가 지금 여야 정치권을 휩쓸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정치권과 국민들이 ‘정당개혁’에만 몰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장 2003년 1월부터 ‘이슈 전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안의원은 “1월 중순 임시국회가 열릴 경우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한 대통령으로부터의 검찰 국세청의 독립 △자료 불성실 제출에 대한 처벌 등 국정조사권 강화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 △대북지원의 국회 동의권한 강화 △DJ 정부 실정 및 부패 의혹 진상규명과 완전청산 작업 △정치개혁 관련 법 제·개정에 본격 나서는 것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당선자측이 정치개혁을 당내 개혁으로 풀려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법제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안보, 경제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이 정당개혁 이슈를 압도하게 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개혁 실험’과 ‘국면 전환 카드’에는 현재 많은 변수가 있다. 개혁특위 인적 구성, 특위 내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파열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 개혁 논의 초기부터 당 주류와 개혁세력 간 ‘인신공격성 공방’이 오갔다. 내분 격화에 이은 당 분열 확률은 전혀 낮아지지 않고 있다. 당내 의사결정 체제의 진공상태가 계속되는 것도 한나라당에게는 불안 요인이다. 대정부 관계, 각종 대내외 국정현안에 대한 대처, 향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구도에서 우왕좌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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