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5

2002.12.26

우리는 소망한다! ‘열린 광장’을

월드컵 성지에서 ‘촛불시위’ 성지로 … 신세대 “광화문 네거리는 우리 모두의 공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2-12-18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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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소망한다! ‘열린 광장’을

    ‘월드컵 축제’를 경험한 신세대들이 촛불시위로 광장에 대한 욕구를 다시 한번 표출했다.

    조선시대 ‘육조 앞’으로 불린 광화문~황토마루(세종로 네거리) 길은 국가의 핵심 관청인 6조가 설치된 상징가(街)이자, 수도의 광장이었다. 일제 치하와 해방을 겪으면서 이 길은 길이 600m, 너비 100m, 18차선에 이르는 대로로 거듭났지만, 광화문은 겹겹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통제만이 존재하는 ‘권력 공간’, 즉 청와대와 미국대사관이 버티고 선 ‘닫힌 광장’으로 전락했다. 1980년 ‘독재타도’를 목놓아 외칠때도, 87년 ‘직선쟁취’ ‘호헌철폐’를 부르짖을 때도 세종로 네거리는 넘을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러나 월드컵과 함께 등장한 ‘6월 광장’의 주인공들이 성역을 깨고 광장을 내놓으라고 한다. 월드컵의 성지였던 광화문은 어느새 촛불시위의 무대가 되었다. ‘사이버 접속’에 익숙한 ‘신주류’들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월드컵의 잔영이 남아 있는 광화문에 다시 모인 것이다. “가자! 광화문으로!” 광장세대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광화문”을 목놓아 외쳤고, 넥타이 부대도 대학생들도 넘지 못했던 세종로 네거리를 건너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했다. 비록 미국대사관 앞에서 주저앉았지만 광화문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었다.

    자발적 공동의 축제·놀이의 혁명 강렬한 체험

    월드컵 기간 거리에서 축제를 벌인 신주류들에게 언론은 다양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월드컵의 머리글자를 딴 W세대, 붉은 악마를 앞세운 R세대, 386에 빗댄 208세대라는 말과 함께, 공간을 점거했다는 의미의 ‘광장세대’가 등장했다. 역사민속학자 주강현씨는 ‘레드 신드롬과 히딩크 신화’라는 책에서 월드컵 축제를 바라보는 한 50대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러고 보니 뛰어놀 광장이 정말 없었구먼!” 주교수는 “감히 광화문통을 걸어다닐 기회조차 없던 민중들이 ‘오로지 놀기 위해’ 거리를 점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뜨거운 환희였다”고 회고한다.

    광장세대는 과거 이 공간을 점유하려 했던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은 이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기성세대가 됐고, 광장세대는 20대 초반 혹은 10대들이 주축을 이룬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월드컵 기간 거리에 나선 대중 가운데 신세대의 경우 87년 6월 항쟁과 91년 공안정국 때의 가두투쟁과는 다른 거리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바로 자발적인 공동의 축제, 놀이의 혁명을 체험한 것이다.



    “나와라! 나와라!” 촛불시위에 나선 광장세대들이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불매운동을 벌이며 외치는 말에도 놀이와 축제라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 공격적인 불매운동이 아니라 그 앞에서 한바탕 놀이마당을 벌인 것이다. 12월7일 촛불시위에 참가한 김지희양(16·고1)은 “광화문 네거리를 밟고 서 있으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했다. 또 다른 여고생은 “물론 효순이 미순이를 추모하기 위해 나왔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한바탕 반미 구호를 외치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말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촛불시위가 세종로 일대 광장화를 둘러싼 두 가지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말한다. “포스트월드컵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연대가 세종로의 광장화를 제안하자, 정부측은 광장을 만들어놓으면 시민들의 공간이 아니라 몇몇 단체들의 시위 공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또 월드컵 기간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도 했지만 촛불시위는 상설 광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입증했다.”

    광장의 기본 기능은 ‘노는 것’이다. 옥토버페스트와 삼바축제에 버금가는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을 상상해보라. 광장세대 못지않게 광화문 광장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야는 문화예술계다. 이들은 90년대 말부터 호시탐탐 광화문을 노렸다. 99년 세종로 열린시민마당과 경복궁 앞뜰을 무대로 ‘새 천년 청소년 축제’가 열린 후 광화문 일대는 새 천년 맞이 행사장으로, 월드컵 성공기념 대축제의 장소로 변모된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306개 문화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청소년문화축제(21%), 전통문화축제(20.8%), 인디밴드의 거리공연(12%), 전시회(8.9%) 등의 행사를 광장에서 해보고 싶다고 응답했다. 오래 전부터 ‘광화문 축제 개최’를 제안해온 강준혁 추계예술대학원 원장(스튜디오 메카 대표)은 “8월15일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는 독립운동 재현, 9·28 서울 수복 재현, 이성계의 서울 입성 재현 등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재현 축제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장이 반드시 축제의 장소여야만 할까. 요즘 밤마다 촛불이 켜지는 광화문과 월드컵 거리응원전이 벌어진 광화문은 다른 장소가 아니다. 광장은 시위와 집회의 공간으로서 발전했다.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대개 도시 중심부에 시청이 위치해 있고 시청 인근에 광장이 조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종대 김영욱 교수(건축공학)는 “광장은 정치토론 및 시민혁명의 장,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는 살아 있는 공간”이라며 “광장이 살기 위해선 시위와 집회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외국 공관 100m 이내에서 옥외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도심에서의 대규모 행진까지 막겠다고 나서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차라리 이들에게 광장을 열어주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토론회를 열고 시위도 하게 하자는 것이다. 역사민속학자 주강현씨는 “과거 국군의 날 보무도 당당하게 탱크부대까지 광화문을 활보했지만 민중은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태극기를 연신 흔들어주는 거수기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탱크도 다닌 그 길을 왜 사람은 활보하지 못할까. 광화문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시위도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화문은 청와대의 그림자를 벗고 미국대사관의 으름장을 피해 ‘권력의 공간’에서 ‘열린 광장’으로 거듭 태어나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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