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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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 쏟아붓고 ‘열려라! 취업문’

어학연수·자격증 취득 등 취업 비용 천정부지… 대졸 구직자 설문 78.5% “대입보다 더 힘들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2-11-28 1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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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영국 어학연수 2000만원, 40일 영어 합숙 프로그램 210만원, 시력교정용 라식수술 200만원, 경락마사지 6회 180만원, 전자상거래 관리사 자격증 취득 100만원, 면접 대비 전문 학원비 89만원.

    올해 초 서울 모여대를 졸업한 안선영씨(24)가 지난 1년간 취업을 위해 투자한 비용의 일부다. 여기에 각종 평가시험 응시료와 교재비, 면접용 정장 구입비 등을 더하면 안씨의 구직 비용은 3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안씨가 대학 졸업 때까지 들인 등록금과 생활비를 합친다면 액수는 더 커진다. 한 학기 220만원꼴인 등록금과 매달 35만원선의 하숙비만 합쳐도 4년간 2500만원에 달하기 때문.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안씨는 지난 몇 해 동안 취업 준비에 무려 5500만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3000만원 쏟아붓고 ‘열려라! 취업문’
    취업 경쟁률 7대 1… 1인당 수천만원씩 투자

    그러나 안씨는 “너무 많은 돈을 쓴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볼 때 평범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요즘 괜찮은 회사에 취업하려면 꾸준한 영어공부와 외모 관리가 필수”라는 것이다.



    최악의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구직자들의 취업 준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취업 경쟁률이 7대 1(노동부 2002년 3·4분기 고용동향 자료)에 이르는 대졸 구직자의 경우 취업의 ‘좁은 문’을 뚫기 위해 1인당 수천만원씩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취업을 위한 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영어 공부.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영어권 국가로의 어학연수는 취업의 ‘기본 조건’일 정도다. 미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취업 준비생 김현식씨는 “영어 실력은 취업뿐 아니라 이후 승진과 인사 이동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며 “어학연수를 위해 3000만원 이상 투자했지만 아깝지 않다”고 밝혔다.

    장기 어학연수를 가기 어려운 이들은 국내 여러 대학에서 주최하는 영어 합숙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회화학원 등을 꾸준히 다니며 토익이나 토플 등 취업용 시험에 응시한다. 해외연수를 가는 대신 한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6주간의 집중 영어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대학생 안보미씨는 “하루 종일 영어만 사용하도록 하는 빡빡한 교육과정 때문에 아침 7시에 일어나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영어 공부만 했다”며 “6주 동안 2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뒤 외국에 간 친구들보다 영어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씨처럼 짧은 기간에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은 서류전형을 통과할 만큼의 영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이고 있다.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한 고윤석씨가 지난 2년 동안 치른 토익시험은 모두 11번. 시험 응시료로 쓴 돈만 3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고씨는 아직도 토익 점수가 800점을 갓 넘는 수준이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토익 학원의 한 달 수강료가 20만원입니다. 한 권에 1만원씩 하는 토익 실전문제집도 수십권 풀었고, 때때로 AFKN 교재도 사서 들었으니 책값과 학원비로 든 돈만도 엄청날 거예요. 그런데도 점수가 시원찮게 나와 고민입니다.”

    영어 때문에 방학 동안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는 고씨는 “요즘은 대학원 졸업생 취업이 더 안 된다는데 900점도 안 되는 토익 점수로 어떻게 대기업에 합격하겠느냐”며 “앞으로 얼마나 더 영어에 돈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000만원 쏟아붓고 ‘열려라! 취업문’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이력서 작성, 면접까지 도와주는 업체도 생겼다.

    고씨처럼 영어에 자신이 없거나 서류전형에서 가산점을 얻어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각종 자격증을 따는 데에 돈과 노력을 투자한다.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최근 대학생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80.7%)은 운전면허증을 제외한 자격증을 1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69.1%)이 이유였다. 요즘 인기를 끄는 자격증은 전자상거래 관리사, 정보통신산업기사, 투자상담사 등인데 이 역시 학원을 다니고 시험을 치르는 데 한 종류당 1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인기 있는 직장을 잡으려면 추가 비용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방송사에 취업하려는 이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방송 아카데미의 경우 한 과정 수강료가 200만원선. 3~4차례에 이르는 카메라 테스트 준비 비용과 상식, 논술 학원 비용 등은 별도다.

    최근에는 증권사에 지원하는 구직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투자 경력을 이력서에 첨부하는 사례가 늘면서 투자 비용 또한 고스란히 구직자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비용은 막대한 취업 준비 투자의 출발에 불과하다.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자기소개서 평가와 까다로운 면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에 지원하고 면접을 받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취업 투자의 2라운드가 시작된다.

    일단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눈에 띄게 작성해야 한다. 채용정보업체 휴먼피아의 한 관계자는 “입사 지원자가 몰릴 경우 회사는 전공, 어학, 자격증 등 체계화된 점수에 따라 서류전형 합격자를 걸러낸 후 자기소개서를 참고하게 된다”며 “특히 면접 과정이나 소규모 수시 채용의 경우 매력적인 자기소개서 작성이 합격에 결정적 요소”라고 조언했다.

    이 때문에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전문업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대행사를 통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는 대학생 김기윤씨는 “업체의 전문 작가와 개별 상담을 하면서 나의 성장과정, 성격적 특징을 설명해준 다음 글을 받았다”며 “비용은 A4용지 한 장당 6만6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내가 쓴 것보다 훨씬 깔끔해 만족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이 자기소개서 한 통으로 내 인생이 좌우된다는 걸 생각하면 적정한 가격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작성·면접 도와주는 컨설팅 상품도 나와

    3000만원 쏟아붓고 ‘열려라! 취업문’

    10월30일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2002 서울채용박람회에는 취업난을 반영하듯 1만여명의 구직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처럼 자기소개서 대행 업무를 이용하는 구직자들이 점차 늘어나자 일부 업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취업 전체를 컨설팅해주는 상품까지 개발했다. 회원으로 가입할 경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대신 써주는 것은 물론, 이미지 컨설팅과 면접 준비까지 도와주는 것. 지난달 한 업체가 ‘Career Coach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한 이 상품은 3개월에79만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하루 서너 건씩 상담이 이어질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ANS 이경선 컨설턴트는 “회원 1명에게 4명의 전담 컨설턴트가 배정돼 최선의 취업 도우미 역할을 한다”며 “이미지 컨설턴트가 취업 준비생 한명 한명을 분석해 적합한 옷 색깔과 표정, 말투까지 골라주기 때문에 면접을 어려워하는 구직자들이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회원 구직자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모의면접 참가 비용은 1회 45분 면접에 15만4000원. 전화로 할 경우에도 30분에 6만6000원이나 되지만 참가자들이 줄을 잇는다.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면접 대비용으로 스튜어디스 양성 학원을 다니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 역시 3개월 과정에 기본 비용이 89만원으로 부담이 적지 않지만 “면접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반회사 취업 준비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업 내용은 면접 때 올바른 자세 및 시선 처리, 자연스럽고 밝은 표정 만들기, 정확한 발음 구사와 자신 있는 대화법 등. 올 8월부터 스튜어디스 학원에 다녔다는 모여대 4학년 이영희씨는 “스튜어디스 특유의 자신만만하면서도 공손한 태도가 면접위원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아 학원에 등록했다”며 “외모에 맞는 메이크업 방법 등도 지도해주기 때문에 면접에 종합적으로 대비할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3000만원 쏟아붓고 ‘열려라! 취업문’

    구인게시판을 살펴보는 구직자들. 취업의 길은 멀기만 하다.

    이처럼 “취직을 위해서는 어떤 투자도 아깝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취직용 미용 성형 시장 규모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가 국내 주요 기업체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외모가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취업에 대비한 ‘외모 가꾸기’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다. 현재 취업을 준비중인 고경태씨는 “여학생들은 면접에 대비해 쌍꺼풀 수술을 하거나 라식 수술, 다이어트 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성들의 경우에도 최근에는 피부관리와 경락마사지를 받는 등 외모를 관리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고씨의 경우 한 경락업체에서 1회당 15만원씩 주고 6회에 걸쳐 피부관리를 받았는데 스스로 변한 모습에 만족한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모여대 졸업반 이현희씨는 “한 과 학생의 30~40%는 쌍꺼풀이나 코 성형 등 취직용 성형수술을 한다고 보면 된다”며 “여기에 수시로 들어가는 다이어트 비용이나 면접용 메이크업, 정장 구입비 등까지 포함하면 취업용 외모 가꾸기에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취업 준비의 완성은 면접 대비.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정장과 구두, 머리 모양과 메이크업 등을 준비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중저가 여성 정장 브랜드 데코의 숍마스터 이윤숙씨는 “최근 판매되는 정장의 60%는 면접용”이라며 “취업 준비생들이 고가 브랜드는 너무 튄다는 인식 때문에 50만원대부터 70만원대 정도의 중저가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한 벌당 100만원을 넘는 고급 정장의 판매도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남성 역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쥐색, 감색의 쓰리버튼 정장과 구두, 가방 등을 갖추면 면접용 의상에만 1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여성 취업 준비생들의 경우는 여기에 면접용 메이크업과 머리 모양 관리 비용으로 1회에 15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3년 연봉… 취업 눈높이 맞춰야

    그렇다면 1인당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충분한 어학과 전문 영역 실력을 갖추고 탁월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뒤 면접에 철저하게 대비하면 취업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글쎄요’다.

    14일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 3·4분기 대졸 취업자 10명 가운데 3명은 단순 노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대졸 여성 취업자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50.5%)이 8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들이 취업 준비에 투자한 3000만원을 회수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3년 이상의 연봉을 고스란히 모아야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의 김현희 홍보실장은 “최근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어학연수나 미용 성형 등을 포함해 최대 수천만원까지 취업에 투자하는 구직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무리하게 비용을 들인다고 해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아닌 만큼 자신의 상황에 맞는 취업 목표를 세우고 적절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한 취업 전문 사이트에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취업과 대입 중 어느 것이 더 힘든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5%가 ‘취업이 더 힘들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제 이 같은 질문도 유효할 것 같다. ‘취업 준비와 대입 준비 중 어느 것에 돈이 더 많이 드는가.’ 취업 준비 시장이 대입을 위한 사교육 시장을 능가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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