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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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가 학살한 이유는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0-14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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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로스가 학살한 이유는
    살라미스(기원전 480년 9월28일), 가우가멜라(기원전 331년 10월1일), 칸나에(기원전 216년 8월2일), 푸아티에(1356년 10월11일), 테노치티틀란(1521년 6월24일~8월13일), 레판토(1571년 10월7일), 로크스드리프트(1879년 1월22~23일), 미드웨이(1942년 6월4~8일), 테트(1958년 1월31일~4월6일).

    미국의 전쟁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이 주목한 9개의 역사적 전투는 모두 서구인 대 비서구인의 싸움이었으며, 서구의 승리로 끝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핸슨은 9개의 전투를 예로 들어 서구가 세계적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서구 특유의 전쟁 방식에서 찾았다. ‘살육과 문명’은 서구가 비서구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 살인기술을 지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벌인 살라미스 해전을 보자. 한쪽은 거대하고 부유한 제국체제였고(페르시아), 다른 한쪽은 작고 가난하며 탈중심화된 체제(그리스)였다. 중앙집권적인 페르시아는 손쉽게 세금, 인력 등을 동원할 수 있었던 반면, 자유로운 종신 귀족공동체였던 그리스는 자발성, 혁신, 창발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두 나라의 전쟁은 예상 밖으로 200척 이상의 페르시아 함선이 격침당하고 4만명의 페르시아 수병이 수장되는 것으로 끝났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투 혹은 전쟁의 승부가 갈리는 것은 물리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문화’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즉 서구의 군대들이 적에 비해 병력 면에서 압도적 열세에 있거나 먼 원정으로 식량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결국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구문명 특유의 사회, 경제, 정치적 이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1991년 걸프전에 대해, 저자는 미국과 그 동맹국으로 이루어진 연합군과 이라크의 베테랑 군대가 싸워 단 나흘 만에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전투로 기록한다.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가 서구의 탱크와 비행기, 총포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미국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이라크 병사들이 규율과 조직에서 형편없었고, 정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서구문명의 우월주의에 불쾌함을 느끼며 책을 덮을 필요는 없다.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참아낸다면 오늘날 서구문명이 전 지구적 문명으로 발돋움한 이유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전쟁이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으나, ‘살육과 문명’은 전쟁의 도덕적 측면을 제외하고 승리의 요인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상대로 벌인 마지막 승부였다. 핸슨은 이 전투가 군사 전략이라기보다 학살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미 승부가 결정된 후에도 마케도니아의 보병들은 계속 적을 살육하여 5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다. 적을 섬멸하고 문화 자체를 파괴해서 다시는 대항할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알렉산드로스가 생각한 진정한 승리였다. 이런 새로운 개념의 학살은 이후 서구의 전쟁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고, 한니발의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이 벌인 칸나에 전투나 코르테스가 이끄는 에스파냐 군대의 테노치티틀란(멕시코시티) 전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학살도 전투의 한 방식일 뿐, 그것의 도덕적 가치 판단은 무의미하다.

    ‘살육과 문명’은 로버트 D. 카플란의 ‘승자학’(주간동아 354호에 소개됨)과 짝을 이룬다. 카플란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현대 미국 지도자들에게 일종의 ‘승리’ 지침서를 마련했다면, 핸슨은 ‘승리학’에 인용될 만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승자학’과 ‘살육과 문명’이 모두 출간되자마자 미국 사회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살육과 문명’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이 선택한 올해의 책’이었음).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짊어져야 할 도덕적 의무나 잔인한 전쟁에 대한 반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는 전 세계의 군사력이 점점 평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반서구적 독재국가들-저자는 중국, 북한, 이란을 지칭했다-은 서구에서 교육받은 과학자와 군사 엘리트를 돈으로 회유하거나 발탁함으로써 서구사회와 맞먹는 군사력을 갖춰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집단적 적대감과 시기심으로 한데 뭉치고 있는 상황, 동유럽과 러시아의 어정쩡한 상태, 무시할 수 없는 일본, 중국의 저력,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핵무기의 결합 등을 우려한다. “미국의 경우, 타 지역에 대한 개입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오히려 지지도는 역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어 다시금 고립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위기감이 ‘살육과 문명’과 같은 책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 푸른숲 펴냄/ 776쪽/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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