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5

2002.10.17

아시아 시장 공략 기회 왔다

지리·정서 공유 가장 유망한 무역 파트너… AG 계기 수출 전선 다변화 나서야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2-10-12 0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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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시장 공략 기회 왔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나라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의 수출액은 전체 수출의 절반이 넘는다. 사진은 미얀마 서포터스.

    원양 수산업체인 금웅수산 김학률 사장은 요즘 ‘사업을 잠시 제쳐놓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부산 아시안게임에 푹 빠져 있다. 그러나 김사장이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북한의 미녀응원단도, 한국팀의 선전이 기대되는 메달박스 종목도 아니다. 그는 중동의 소국(小國) 오만팀이 출전하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기장을 찾는다.

    김사장이 이처럼 오만팀의 경기를 쫓아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오만팀 서포터스 단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 17명과 선수 40명 등 57명의 미니 선수단을 참가시킨 오만 선수단 서포터스에는 유독 원양어선 업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김학률 사장처럼 오만 해(海) 주변에서 고기를 잡는 수산업체들이 오만팀 서포터스에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 공략 기회 왔다

    한국과 베트남의 여자축구 경기 장면.

    1994년부터 1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원양어업에 종사해온 김학률 사장은 “중동의 경우만 해도 아시아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어 사업을 할 때 정(情)이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사장이 사업 파트너인 오만측과 맺은 계약 방식 역시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금웅수산측은 오만 정부나 기업측에 어획량에 따른 해역 이용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만 정부로부터 어획량 쿼터를 확보한 오만 내의 수산회사와 계약을 맺어 1회 출항에서 잡은 전체 어획량의 20%를 떼어주고 돌아온다. 어황(漁況)에 따른 가격 변동을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이처럼 ‘화끈하게’ 떼어주고 오는 것도 김사장이 이야기하는 같은 아시아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계약서 조항과 합리성만을 중시하는 유럽 기업과 달리 이런 아시아적 유대관계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득을 챙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 김사장의 설명.

    오일머니 여전한 중동 국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후진성과 비합리의 대명사로 손가락질당하던 ‘아시아적’ 관행과 가치가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한번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상 아시아 국가들이 줄줄이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부산 아시안게임은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아시아 국가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우리와 교역이 많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중동을 포함하는 서아시아 12개국과 구소련 지역의 중앙아시아 5개국, 방글라데시, 네팔 등 남아시아 8개국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경우 아시아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유럽 국가들과 훨씬 가깝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사우디까지는 13시간이 걸리지만 사우디에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까지는 5∼6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다. 또한 사우디 부호들의 경우 BMW나 벤츠 등 유럽산 자동차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 자동차가 비집고 들어갈 시장이 마땅치 않다.

    70년대 중동 특수까지 사그러든 것을 감안하면 이제 중동은 우리 기업들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버린 것일까. 중동 무역을 해온 중소기업인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들이 쌓아놓은 긍정적인 이미지 덕택에 오일머니(oil money)를 틀어쥐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

    중동 지역에 고급 의류 원단을 수출하고 있는 진석물산 노영기 사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가 ‘중동의 홍콩’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역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한국 기업들과의 사업 기회는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들어 두바이를 중심으로 파키스탄 인도 이란 등으로 이어지는 무역루트가 크게 각광받고 있는 데다, 골프는 물론 카레이싱이나 승마 등 그동안 중동 국가에서는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하던 신종 레저 활동 역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 또 일부 중동 국가에서 최근 일고 있는 반미정서로 인한 미국 상품 불매운동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틈새시장’을 열어주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올 7월까지 대중동 수출은 41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도 증가하지 못했다.

    이들 중동 국가들은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가깝지만 아시아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한다. 섬유 및 원단 수출업체인 성산무역 김만균 사장은 “중견 무역업체 사우디 지사장을 지냈던 80년대나 지금이나 사우디 사람들이 라마단 기간 동안만큼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회교도들에게 끝없는 자선을 베푸는 것을 보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며 “이런 것이야말로 일종의 오리엔탈 정서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시아적 연대의식을 느끼기로는 동남아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용과 농업용 호스를 생산하는 풍남산업이 미얀마 수출을 시작한 것은 83년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미얀마가 북한과의 단교를 선언한 직후였다. 당시 이 회사 김수 사장은 농업용 호스의 수요가 많은 농업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를 찾아내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포스트 아시안게임’ 지금부터 준비를

    그가 최종 선택한 나라가 미얀마. 그로부터 15년 넘게 미얀마는 한 번도 초기 투자를 아끼지 않은 풍남산업을 배신한 적이 없다. 이 회사는 이러한 신뢰관계 덕분에 지금까지도 기존 사업 파트너와 거래 관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풍남산업 박승두 이사는 “그동안 우리보다 낮은 가격과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나라도있었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가 꾸준히 공들여온 데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이번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43개국에 대한, 7월까지의 우리나라 수출총액은 464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2%나 된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거둬들이는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만 하면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국을 상대로도 ‘짭짤한’ 장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특히 지난해 연간 수출 실적이 10억 달러를 넘는 나라들만도 이번 참가국들 중 13개 나라나 된다. 교역 비중이 특히 높은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도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리의 무역 파트너로 떠오른 셈. 무역협회 박진달 무역전략팀장은 “중남미의 금융 불안이 계속되고 동구권 국가들의 발전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아시아 수출 시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3대 교역국 위주의 수출 전략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인 만큼 우리로서는 이들 국가들과 중동 서남아시아 등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수출 전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절대 과제다.

    물론 43개나 되는 아시안게임 참가국 중에는 아직 우리나라와 본격적 교역을 꿈꾸기 어려운 나라들도 여럿 있다. 30만명도 안 되는 인구에다 1인당 GDP가 1700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는 소국 몰디브나 최근에야 독립국 지위를 확보한 동티모르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인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 중국, 일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43개나 되는 참가국들과의 새로운 사업환경 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붉은악마들이 지난 월드컵 기간 동안 외쳤던 ‘아시아의 자존심(Pride of Asia)’을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 단계 상승시키려면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포스트 월드컵 대책’을 논의했던 것처럼 ‘포스트 아시안게임 대책’ 또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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