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6

2002.08.08

‘히딩크 약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네덜란드 기업들 월드컵 덕 톡톡 … 상승세 이어갈 마케팅 수립 대책에 골몰

  •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4-10-11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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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 약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팀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 응원단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난 6월26일 주요 신문에는 오렌지색 바탕에 어디서 본 듯한 기업 로고들을 모아놓은 광고 하나가 실렸다. 전날 독일전에서의 분패를 달래는 듯한 이 광고는 그 흔한 ‘우리’라는 단어도 없이 ‘해냈습니다’ 또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10여개의 기업 로고 아래 비로소 광고의 정체를 드러낸 건 ‘주한네덜란드 대사관’.

    월드컵 이후 국내에 진출한 네덜란드 기업들은 히딩크 감독의 모국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관심에 신바람이 났다. 이미 국내에 잘 알려진 가전제품 회사 필립스코리아가 비수기인 여름철에도 우쭐해진 것은 물론이고,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ING생명, 석유화학 회사 로열 더치 쉘, ABN암로은행, 제약 및 화학 업체인 악조노벨 등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았고, 마침내 주한네덜란드 대사관이 나서서 대표적인 네덜란드 기업들과 함께 광고를 내기에 이른 것. 네덜란드 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에서 외국 대사관이 나설 정도로 환대를 받았던 나라가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며 월드컵 때의 기분 좋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이미지 개선 매출 증가

    월드컵과 히딩크 열풍을 계기로 국내 네덜란드 기업들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역시 기업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는 사실. 올해 초 브랜드 인지도가 1%에 불과했던 ING생명은 이번 월드컵으로 매출액은 물론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NG생명 노구미 차장은 “6월 한 달은 사람들의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되어 매출에 큰 진전이 없었지만 7월 이후 매출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신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보험회사 입장에선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심어졌다는 것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큰 효과”라고, 연말에 있을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히딩크 약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히딩크 약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ING생명은 월드컵 기간중 고객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격려하고, 보험설계사들이 나서 광고를 제작하라고 재촉해 결국 월드컵 특별예산 2억원을 마련해 월드컵 마케팅을 진행했다. 실속을 중시하는 ING생명이 한 해 들이는 광고비가 2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특별예산은 상당한 투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광고는 경기 결과에 따라 내용을 바꿔가며 명장 히딩크의 남다른 전략과 ING생명의 인생설계를 동일시했다.

    한국에 들어온 네덜란드 기업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필립스코리아는 비수기로 간주되는 여름철에도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어 히딩크 덕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박제 사장은 “영업 직원들이 정신없이 바쁜 걸 보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히딩크 효과가 기업 이미지 개선에 이어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필립스그룹이 PSV아인트호벤을 후원하고 있고, 히딩크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필립스의 마케팅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로 합의해 국내 시장에 어떤 식의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필립스코리아 관계자는 “8월 이후 히딩크 감독이 후원하는 필립스 마케팅이 영업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장담한다.

    월드컵 기간중 맥주 소비량이 생맥주에만 편중되어 병맥주 업계, 특히 맥주 수입업체들이 한숨을 쉬어야 했던 반면 하이네켄, 그롤쉬 등 네덜란드 맥주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업소를 찾은 고객들이 먼저 “네덜란드산 맥주 없어요?”라고 묻거나 ‘네덜란드 맥주 하이네켄’을 주문했기 때문. 히딩크 인기에 힘입어 6월 한 달 동안 하이네켄은 매출이 6% 정도 증가했다. 하이네켄을 수입 판매하는 국제상품마케팅(ICM) 박진형 부장은 “다른 병맥주 수입업체의 매출이 10~15% 이상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히딩크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말했다. 하이네켄은 이미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월드컵 기간중 신문 등에 네덜란드 맥주임을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네덜란드를 연상케 하는 풍차와 히딩크 사진으로 업소를 장식하는 등의 마케팅을 펼쳤다.

    ‘히딩크 약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네덜란드 기업들은 또한 본사에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이 어디에 있지?” “북한에 있는 곳인가?” ING생명 케네만스 사장이 한국으로 부임하던 지난해만 해도 네덜란드 동료들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가 오지로 떠나는 듯 위로했다. 그런데 월드컵 기간중 네덜란드를 방문했던 케네만스 사장은 동료들로부터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본사에서도 한국은 새로 뜨고 있는 시장으로 주목한다”고 전한다. 악조노벨 김세원 이사도 “본사에서 한국인의 성실성을 우수하게 평가한다”며 “한국에 계속 관심을 갖고 투자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악조노벨 부사장은 지난 5월 말 ‘다국적기업 CEO 초청 라운드 테이블’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신규 및 증액투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네덜란드 기업들은 이제 월드컵 기간의 상승세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고민중이다. 월드컵이 막을 내리고, 히딩크도 떠난 마당에 히딩크와 월드컵에만 의존하는 마케팅은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니레버코리아가 특별한 월드컵 마케팅을 선보이지 않은 것도 장기적인 마케팅 계획의 맥을 끊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유니레버코리아 관계자는 “회사의 긴 역사를 고려할 때 ‘히딩크’라는 단기적 효과에 기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히딩크 마케팅을 진행했던 ICM 박진형 부장은 “이제 히딩크나 네덜란드를 이용한 마케팅은 오히려 식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병맥주 마케팅에는 히딩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네덜란드 고유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ING생명 노구미 차장도 “기업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월드컵 기간중 선보였던 광고들과 전혀 다른 전략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네덜란드 기업은 5월 말 현재 279개, 투자규모는 106억 달러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업계 관계자들은 월드컵과 히딩크 효과로 시작된 네덜란드 기업의 상승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네덜란드와 교류를 확대하는 등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아시안게임에서 축구붐이 다시 한번 형성되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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