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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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성들 ‘흰 피부 과대 집착증’

오랫동안 상류층의 상징물 인식… 취업·결혼에도 큰 영향 ‘화장은 무조건 하얗게’

  • < 이지은/ 델리 통신원 > jieunlee333@hanmail.net

    입력2004-10-13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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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여성들 ‘흰 피부 과대 집착증’
    희고 뽀얀 피부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공통된 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독 아시아 여성들이 흰 피부에 대한 갈망을 강하게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에서 백인들에 대한 유색인종의 열등감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동양인들의 미의식에 잠재해 있는 백인 우월주의적인 발상인 것 같기도 해 입맛이 씁쓸해진다.

    인도인들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흰 피부를 선호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의 흰 피부는 하나의 ‘특권’처럼 생각될 정도로 중요시되는 편이다. 인도의 독특한 결혼문화인 신문을 통한 결혼 광고에도 이 같은 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매주 신문에 실리는 결혼 광고를 살펴보면 ‘흰 피부’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신붓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신랑측에서 제시하는 신부의 조건에도 ‘피부색이 밝은 여성을 원한다’는 구절이 종종 눈에 띈다. ‘피부색이 희다, 밝다’는 말은 종종 외모가 ‘아름답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만큼 흰 피부에 대한 가치는 높다.

    식민지 거치며 흰 피부 선망 더 커져

    인도 여성들 ‘흰 피부 과대 집착증’
    인도는 약 200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아온 근대사를 가지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영국인과 비슷한 흰 피부와 서구적인 생김새가 보다 높은 가치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 흰 피부에 대한 인도인들의 동경은 그 역사가 매우 길다. 사회의 계층을 뜻하는 단어인 ‘바르나’도 원래는 ‘색’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다인종 사회였던 인도에서 피부색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카스트 신분제에 따른 결혼이 철저하게 지켜졌던 과거에도 피부가 흰 여성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성과 비교적 쉽게 결혼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지참금을 면제받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또 13세기에 이르러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이란, 터키계 왕조들이 인도에 들어온 것도 흰 피부 선호 사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백인에 가까웠던 이들의 밝은 피부색에 높은 코는 곧 지배계층의 신체적 특징, 즉 보다 우월한 특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근대에 이르러 영국의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흰 피부색에 대한 선망과 사회적인 가치는 더욱 커졌다.



    물론 인도의 전통사회가 한결같이 흰 피부만을 동경해 온 것은 아니다. 인종적으로 볼 때 드라비다 계열로 분류되는 남인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검은 피부를 추구하는 전통을 보이기도 한다. 13세기에 인도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남인도 지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피부에 참기름을 발라주어 피부색을 더욱 검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물론 검은색 피부를 높이 평가하는 남인도 사람들의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인도에 뿌리를 두는 신화나 전설에서는 선한 신은 검은 피부로, 악마는 흰 피부로 묘사된다.

    인도 여성들 ‘흰 피부 과대 집착증’
    이와 같이 남인도에서 검은 피부를, 그리고 북서부 인도에서 흰 피부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던 미의식의 확연한 차이는 종종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인과 이후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유입된 아리아인과의 민족적 차이와 갈등의 반영으로 이해되곤 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브라만을 중심으로 한 상위카스트와 하위카스트 사이의 민족적, 인종적 상이점으로까지 확대 해석되곤 했다. 사실 카스트 제도의 기원이 인종적 구분에 있었는가 하는 논의는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카스트 구성원들의 신체적 차이에서 인종적 구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카스트 구분을 인종적인 문제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영국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던 무렵에는 많은 유럽 학자들이 유럽인들과 인도인들의 언어상, 인종상의 유사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럽인들과의 사이에 어떤 동질성을 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우월함을 인정받고자 했던 일부 상위카스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아리안 민족 이동설’이 크게 유행했다. 이 이론은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하층카스트 선각자들에 의해 차용되어 하층카스트는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의 후예라는 주장을 낳게끔 했다. 상위-하위 카스트 간의 인종주의적 구분은 현재까지도 하층카스트 운동가들에게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흰 피부를 지향하는 전통은 오랫동안 인도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 전통은 부지불식간에 인도인들의 미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카스트 운동가들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흰 피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중산층과 상류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비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요즈음에는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소비패턴으로 그대로 연결되는 양상이다.

    인도 여성들 ‘흰 피부 과대 집착증’
    흰 피부 선호 경향을 소비문화와 발 빠르게 연결한 주체는 역시 화장품 회사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 여성들은 ‘화장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을 하는 소수의 여성들 역시 입술이나 눈가 등에 색조 화장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TV와 영화 스크린에 비치는 여배우(물론 남자배우도 마찬가지)들은 한결같이 흰 피부화장을 하고 등장한다. 이들의 새로운 화장법은 아름다움의 표본을 제공함과 동시에 흰 피부에 대한 갈망을 더욱 부채질하며 화장품 소비량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화장품 회사들은 자외선 차단크림이나 피부색을 밝아 보이게 하는 파운데이션 종류를 출시해,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은 소수지만 고가의 수입품인 컬러로션 등의 구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갖는 가치가 분야를 막론하고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그 아름다움의 척도로 가장 중요한 것이 흰 피부라면 인도 여성들이 피부색에 집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인도의 미혼 여성들은 취업할 때 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또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편히 사는 것’이 많은 인도 여성들의 최고의 목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혼시장(?)에서조차 특별우대를 받는 하얀 피부를 바라지 않는 여성이 있겠는가. 아직은 화장품에 그치는 정도지만 피부색을 영구적으로 희게 바꾸어줄 수 있는 미용이나 성형기법이 인도의 멋쟁이들 사이에서 대유행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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