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1

2002.07.04

“축구만한 문화상품 없다”

아시아인 한국 축구 권위 인정 시작 … ‘축구 비즈니스’로 활성화해야

  • < 장원재/ 숭실대 교수·문예창작 >wjang50594@freechal.com

    입력2004-10-18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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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만한 문화상품 없다”
    문화산업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문화산업만큼 지속적인 파급력을 지니는 분야도 흔치 않다. 무엇보다 문화산업은 가장 효율적이고 지능적인 광고 수단이다. 직접 특정 상품을 홍보하지 않아도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특정 문화산업의 향수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어떤 이미지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이 판매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 자체는 구체적 경제성을 지니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엄청난 수의 파생상품을 만드는 등 다양한 경제행위를 수행할 수 있고 동시에 엄청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만큼 막대한 가치를 지닌 자산도 흔치 않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노도와 같은 한류(韓流) 열풍을 보라. 한국 드라마와 한국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한국 가수나 드라마 주인공들의 행태를 모방한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 패턴이다.

    연예인들 이어 축구 통한 ‘제2의 한류’ 기대

    그러나 다른 개체의 생애나 삶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인 스타들과 외국인 수용자들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가 존재한다. 이러한 거리감을 줄이고 정서적 일체감을 획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스타가 소비하는 물건과 똑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기의 존재와 누군가의 존재를 긴밀하게 연결해 주는 마음의 상징이다. 여기에 문화산업의 핵심 전략이 담겨 있다. 얼마나 많은 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 스타의 이미지에 덧대어 얼마나 많은 심벌들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 얼마만큼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너무나 큰 가능성이 있다고 답할 수 있다. 스포츠만큼 파괴력이 막강한 문화상품은 다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박찬호나 김병현이라는 한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메이저리거의 활약에 비례해 미국 문화적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 스며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신문 방송의 기사며 중계는 본질적으로 미국 문화 전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쓰여지고 또 전파를 탄다. 왜? 언론이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박찬호나 김병현에 가탁한 영웅의 이미지다. 시청률 경쟁에서 확실한 영웅을 쥐고 있는 것만큼 유리한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려면 메이저리그 자체의 중요성을 자꾸 강조해야만 한다. 그만큼 어려운 경쟁을 이겨내고, 그만큼 대단한 곳에서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라마 구조처럼 기`-`승`-`전`-`결을 이뤄야 감동도 배가된다. 그러므로 메이저리그를 대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가 이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그다지 탓할 일이 아니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속성이나 본질이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축구라는 매개체를 수단으로 삼아 아시아 각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예상 외로 간단하다. 그 나라 선수들을 수입해 팀의 주전으로 양성하면 된다. 예컨대 태국 선수 한 명이 한국 프로리그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자. 그 나라 사람들의 눈과 귀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프로축구 쪽으로 쏠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축구 바깥으로 번져나가고, 마침내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관심 쪽으로 물꼬를 틀 것이다.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한 관심이 한국 문화에 대한 친밀도로 이어지고 동시에 유형무형의 한국 관련 상품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여기서 현 수준의 한국 축구 인기도를 감안할 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이번 월드컵의 빛나는 성취다. 월드컵 ‘4강’이나 ‘결승 진출’이라는 타이틀은 한국 축구리그에 거대한 권위를 부여할 것이다.

    한국 야구선수들의 메이저리그 활약상을 시시콜콜히 보도하는 이면에는 메이저리그의 권위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는 전제와 묵계가 있다. 이러한 권위를 획득하는 일 자체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의 지출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이 과정을 생략하고 단숨에 서너 단계를 앞당겼다.

    ‘월드컵 성취’ 활용 못하면 일회성 사건일 뿐

    특정한 문화상품을 현지로 수출하고 그 수출품을 바탕으로 연계사업을 펼쳐가는 것과는 달리, 축구산업은 아예 아시아인들의 시선을 한국 쪽으로 가지고 온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증폭되고, 아시아 시민들과 한국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확대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프로리그가 획득한 권위에 비해 한국 축구의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프로팀 숫자가 10개에 불과해서는 복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없다(한국 축구리그의 활성화 방안은 ‘주간동아’ 340호에서 설명했다).

    30억명 아시아 시민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아우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칠 기반이 조성되었는데도 이를 인지하거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다. 월드컵에서의 빛나는 성취는 적절한 산업구조의 완성이라는 디딤돌이 놓이지 않는 한 일과성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연중리그의 활성화, 하위리그의 창설 등을 통해 우리 국민이 느꼈던 정서적인 희열과 만족감을 실질적인 수익구조로 전환시키자는 것. 이 핵심에 프로축구의 산업화라는 화두가 있고, 축구를 통해 한류를 확대 증폭한다는 구체적 그림도 들어 있다.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다음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수면 아래를 흘러가는 거대한 현금 덩어리를 건져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 현금 덩어리에 접근하는 데만도 우리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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