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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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손의 ‘수호천사’ 이운재

승부차기 선방 등 철벽방어로 신화창조 ‘1등 공신’ … 5게임 실점 2점뿐 ‘야신상’ 후보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10-18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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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손’ 이운재(29·수원 삼성)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로 인해 ‘한국의 꿈은 계속 살아 숨쉰다.’(영국 BBC방송) 그는 ‘승부차기 킬러’(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 온라인)다. 그의 ‘날카로운 위치 선정과 믿음직스러움’(AFP)이 눈부신 날이었다.

    한국의 ‘수호신’ 이운재는 6월22일 스페인과 치른 8강전에서 끊임없이 한국 문전을 위협하던 스페인 선수들의 날카로운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한국을 72년 월드컵 사상, 그리고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다.

    이운재는 이날 신들린 듯한 감각과 몸을 내던지는 투혼으로 선방해 5경기 2실점(경기당 0.4실점)으로 독일의 올리버 칸(경기당 0.2실점)과 함께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는 ‘야신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16강전 이후 3일 만에 치러진 이날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예상보다 무거운 몸놀림으로 경기를 힘겹게 끌어갔고, 스페인의 날카로운 침투를 수차례 놓쳐 결정적인 위기를 내줬지만 그때마다 이운재는 안정된 자세로 슛을 막아냈다.

    이날 경기는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거친, ‘긴장감 넘치는 품격 있는’(히딩크) 경기였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한 승부차기에서 이운재는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신승을 이끌었다.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는 볼을 향해 두세 발짝 나아가다 이운재를 속이기 위해 잠시 멈칫했지만 이운재는 흔들림 없이 볼을 노려보고 있었고, 탄력이 떨어진 호아킨의 공은 이운재의 손에 걸려들고 말았다. 선방 직후 이운재는 골문을 벗어나면서 기쁨을 참을 수 없었는지 관중석을 향해 회심의 웃음을 머금었다. ‘독일도 브라질도 두렵지 않다’는 듯.



    프로 데뷔 시절 병마 이겨낸 오뚝이 ‘감격 두 배’

    이운재의 페널티킥 방어 실력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빼어났다. 지난 1월 말 북중미골드컵축구대회 멕시코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2개의 페널티킥을 잇따라 막아내 한국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소속팀(수원 삼성)에서도 승부차기 승률을 80% 이상 끌어올린 저력의 골키퍼다.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는 담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빼어난 이운재를 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번 월드컵 전부터 승부차기 상황에선 무조건 그를 기용할 계획이었다.

    경기 전 스페인-아일랜드전의 승부차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여러 차례 돌려보면서 스페인 선수들에 대해 분석해 뒀던 이운재는 “내가 잘 막은 게 아니라 상대편이 공을 잘못 찼다”고 겸손해하면서 “키커들이 원래 더 긴장해 한두 명은 꼭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걸 기다렸다”고 말했다.

    대표팀 수문장 자리를 놓고 김병지와 치열한 주전 다툼을 해온 이운재는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94년 월드컵에도 출전한 베테랑이며 96년 프로축구 수원 삼성에 입단, 탄탄한 앞날을 예고했다. 그러나 프로무대에 데뷔하던 그해 그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았다. 난데없이 간염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선수생활과 치료를 병행해야 했고, 자연히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2년간의 투병생활을 끈기로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해 다시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 그 사이 김병지가 대표팀의 골문을 맡으면서 그는 98년 월드컵에는 출전조차 못했다.

    재도약을 노리고 있던 그는 결국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돼 이번 대회에서 빛나는 수훈을 세웠다. 청주 출신의 이운재는 청주상고-경희대-수원 삼성 코스를 밟았다. 182cm, 82kg으로 대표팀 사이에서는 ‘날으는 삼겹살’로 불린다. 가족으로 부인 김현주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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