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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대형서점의 모태·인재 사관학교 등 숱한 명성… 젊은 날 사연 깃든 대표적 약속 장소

‘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한때 우리나라 서점업계의 거목이던 ‘종로서적’이 이제 고목이 되어 쓰러져가고 있다. 1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출판·서점계의 자존심처럼 종로거리를 굳건히 지키던 그 종로서적이 속도와 변화라는 시대의 조류에 밀려 역사의 한 장으로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1907년 ‘예수교서회’라는 이름으로 목조건물을 구입해 성경과 찬송가 등 기독교 관련 출판물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 서점은 교문서관, 종로서관을 거쳐 1963년 ‘독어독본’의 저자로 유명한 장하구 사장이 종로서적센터로 서점명을 바꾸면서 당시 국내 최대의 대형서점이자 종로의 명물로 자리매김한다.



1907년 생겨난 한국 서점의 메카

‘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종로서적센터의 등장은 서점업계에서 파격 그 자체였다. 동네책방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국내 서점인들에게 서점의 기업화가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전국 서점 관계자들이 현대화되고 체계화된 종로서적을 마치 서점의 메카인 것처럼 순방할 정도였다. 이후 종로서적은 성장을 거듭해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기업으로 발전한다. 종로서적은 이 시기에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해 ‘종로서적 사관학교’로 불리면서 이후 전국 대형서점 설립의 주역이 된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도 창업 당시 종로서적 출신들의 도움을 받았다.



종로는 일제강점기에도 출판문화의 중심 거리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지금 YMCA 옆에 있던 우미관에서 영화 한 편 보고, 우미관 옆에 있던 풍미옥이라는 방울팥떡집에 들러 5전에 10개 하던 방울팥떡을 사먹고, 건너편에 있던 기독교서회서점, 박문서관, 영창서관에 들러 책을 사는 것이 대단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서점들이 출판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 서점업자들은 모두 종로거리에 와서 책을 구입해야 했다.

해방 이후 종로에 더 많은 서점과 출판사가 생겨나면서 70년대 후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당시 광화문과 무교동, 종로2가를 잇는 거리에는 광화문 덕수제과 옆의 중앙도서전시관, 광화문 네거리의 숭문서점, 무교동 무과수제과 옆 청구서점, 그리고 그 주변에 외국서적 전문 서점인 내외기술서적과 범문사, 범한서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 영풍문고 자리 옆에는 일본서적 전문 서점인 한국출판판매가 발 빠르게 일본 서적을 공급하고 있었다.

특히 종로2가에는 맏형 격인 종로서적을 필두로 양우당과 삼일서적이 있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대형서점이라 할 수 있던 동화서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이 광화문 덕수초등학교 옆에 있었다고 하니 종로는 오래 전부터 서점 거리였던 것이다.

서점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출판사들도 모여 있었다. 종로서적 뒤쪽 로빈다방 2층에는 이문열이라는 신인작가가 쓴 ‘사람의 아들’로 막 주가를 올리던 민음사가 있었고,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인 박영사가 종로서적과 창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박경리의 ‘토지’로 베스트셀러를 펴낸 지식산업사와 삼성출판사, 한림출판사, 마당, 보성문화사 등이 종로를 지키고 있었다. 무교동 쪽으로는 향문사, 동명사, 평화출판사, 고려원 등이 출판문화를 선도했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무교동 낙지집이나 종로거리 식당과 주점에 가면 출판사와 서점 선배들에게 인사하기가 바빴다. 유명작가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일이 흔했고, 서점과 출판사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에도 수월했다. 이처럼 종로는 출판과 서점인의 거리였으며 그 향내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하지만 이제 종로서적을 끝으로 모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출판사들도 강남 등 외곽으로 옮겨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서점가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지난날의 훈훈하고 정겨웠던 서점문화는 사라지고 없다. 책 또한 대량소비시대로 접어들어 여유 있게 그리고 마음놓고 하루종일 책을 보던 옛 서점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출판·서점의 중심지로서 종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내가 첫 직장인 종로서적에 입사한 것은 종로서적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1981년 봄이었다. 20명의 공채 사원모집에 500여명이 응모해 25대 1이라는 어려운 관문이었다. 그러나 남자 사원의 경쟁률은 판매 여사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고졸 여사원의 경쟁률은 100대 1이 넘었고, 일부 상업학교에서는 관광버스까지 전세내어 시험을 보러 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종로서적 여직원은 묻지도 않고 신붓감으로 데려갈 정도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도 인기가 높아 퇴근 시간만 되면 만나달라고 조르는 출판사 직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입사 후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학생들 견학안내였다. 당시는 종로서적이 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 중 하나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몇 개의 층에 책들이 전시된 것을 보고 경이로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책을 좋아했지만 생활이 어려웠던 나로서는 종로서적이 최고의 직장이었다. 봉급도 받고 책도 마음놓고 볼 수 있었으니 누구도 부러울 사람이 없었다. 종로서적은 직원 복지도 수준급이었다. 구내식당은 무료인데도 종로거리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했고,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사우회를 조직하자 회사는 축구반, 탁구반, 기타반, 합창반, 무용반 등 취미활동을 전액 지원했다. 사원들의 교육 또한 철저했다. 강만길 김동길 한완상 황필호 교수 등 저명인사를 초청해 당시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주제로 정기적인 특강을 열었다. 봄가을에는 전 직원이 체육대회와 나들이를 통해 종로인으로서의 결속력을 다지곤 했다. 요즘에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80년 초에는 결코 쉽지 않은 경영방침이었다.

대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종로서적의 성과는 만만치 않다. 국내 최초로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작가와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작가들 사이에서는 여기에 초청받지 못하면 작가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국내 유명작가치고 이 행사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종로서적 장하구 회장은 출판에 대한 사명감이 대단했다. 종로서적 출판부는 80년대 초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완상 교수의 ‘민중사회학’ ‘민중과 사회’를 출간했다. 그 밖에도 현대철학 시리즈나 한글 맞춤법 시리즈, 키에르케고르 전집 등 당시 꼭 필요한 책의 출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말 쓰기 전문가인 이오덕 선생, 동화작가 권정생, 김현주 목사, 황필호 교수, 전택부 선생 등 새로운 필자 발굴에도 전심을 다했다.

장하구 회장의 경영방식은 특별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직접 운전을 했고, 매일 아침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서점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양상군자(梁上君子)가 정말 돈 없어 고생하는 고학생임이 밝혀지면 필요한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종로서적’ 추억 속으로 저물다
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는 탑골공원과 종로서적 앞 도로였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 때면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았는데 유독 종로서적만 문을 여는 일이 많았다. 전경들을 피해 달아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을 위해 음료수와 우유를 제공하는 것 또한 종로서적의 임무라는 것이 장하구 회장의 지론이었다.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결성되어 종로서적이 들어 있던 대왕빌딩에 입주할 때 내가 삼엄한 경찰들의 감시 속에서 민추협 이삿짐을 나른 것도 장회장의 불호령 때문이었다.

종로서적이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것은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로 이곳만한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종로에서의 만남은 으레 종로서적 앞이었고, 때로는 6층 문학코너나 4층 인문코너에서 만나기로 하는 등 종로서적 자체가 약속 장소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종로서적이 서점계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도서정가제의 정착이었다. 70년대 말까지 서점에는 정가제가 없었다. 손님에게 눈치껏 할인해 주는 등 서점 각자가 알아서 판매하는 식이었다. 이것은 독자나 서점, 출판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되는 전근대적인 장사였다. 이때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키고자 과감히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종로서적이었다. 그 결과 79년에 도서정가제가 정착되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출판 10대국에 들게 된 것은 도서정가제의 역할이 컸다.

이처럼 종로서적이 우리 서점업계에 끼친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종로서적의 역사는 바로 우리 서점계의 역사였다. 지금 그 역사가 막을 내리려 한다.





주간동아 2002.06.20 339호 (p64~66)

  • < 김영수/ 출판칼럼니스트 > yesb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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