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9

2002.06.20

남북 휴대폰 사업 ‘산 넘어 산’

현지 운용인력 양성·단말기값 등 걸림돌…원천기술 보유한 미국 의중도 가늠 못해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13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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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휴대폰 사업 ‘산 넘어 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011 휴대폰은 평양에서도 울릴 것인가. 정통부 관계자와 5개 통신사업자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방북단 귀환 이후, 북한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이용한 휴대폰 사업에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북한 이동통신 분야 협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북단 대표격인 변재일 정보통신부 기획관리실장은 지난 6월10일 기자회견을 갖고 “평양과 남포 일원에서 CDMA 방식의 휴대폰 사업에 북한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측이 북한 체신성 관계자들을 상대로 CDMA 방식의 휴대폰 사업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북한측이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 달 이내에 양측이 다시 만나기로 한 만큼 정식 계약 여부는 남북 당국간 2차 협의를 통해 결론이 날 전망이다.

    태국 업체도 북한 통신망 구축 ‘입질’

    사실 북한지역의 이동통신망 구축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태국 통신업체들이 ‘입질’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몇 년 전부터 태국의 록슬리 퍼시픽사가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을 중심으로 유럽 표준인 GSM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현지조사와 실무협의를 거쳐 이미 사업권을 따낸 것. 따라서 그동안 업계에서는 나진·선봉 지역의 사업권을 갖고 있는 태국 회사가 평양지역 사업권까지 확보할 경우 남북통일 후 한반도의 통신망을 단일망으로 구축하는 데 치명적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이는 정부 입장에서도 어마어마한 통일비용을 예고하는 문제. 업계 역시 ‘통일 이후에 대비한 투자’라는 논리를 내세워 정통부를 북한측과의 협상 파트너로 앞장세워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정통부가 업계의 논의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이 이동통신 투자를 위해 두세 차례 북한을 방문할 때까지도 정부는 논의 주체에서 빠져 있다가 뒤늦게 국책연구기관인 전자통신연구원의 전문가까지 포함시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기 시작한 것. 이 태스크포스는 극비리에 가동되는 바람에 외부로 활동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정권 말기라는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부가 전면에 나선 이상 정부로서는 구체적 성과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은 겹겹이 쌓여 있다. 우선 CDMA의 원천기술 보유자가 미국의 퀄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의중이 관심거리. CDMA 기술은 미국에서는 군사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아직도 북한을 테러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이동통신망이 구축될 경우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형편.

    정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미국과의 별다른 논의는 없었지만 앞으로 외교부를 통해 미 상무부와 조율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오히려 미국이 북한에 CDMA 방식을 도입하는 데 적극 찬성하고 나올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유럽식 표준을 채택하게 되면 원천적으로 통제 불가 상태에 빠지는 만큼 CDMA 방식의 채택을 통해 사실상 통제 상태에 두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정부로서는 북한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에 대해 야당이 ‘정권 말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나올 가능성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그동안 이동통신 분야의 물밑 접촉을 진행하면서도 구체적인 경과를 극비에 부친 데는 이런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정통부가 방북 결과를 발표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광화문 일대가 이미 미국과의 월드컵 축구 열기로 들썩거리기 시작하던 6월10일 오전. 그날 저녁 뉴스나 다음날 신문에서 정통부 방북 결과에 대한 기사는 당연히 월드컵 기사에 묻혀버렸다. 정통부 관계자 역시 이런 시각을 의식한 듯 “정부는 사업 착수 시점까지만 지원하고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민간사업체의 컨소시엄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휴대폰 사업 ‘산 넘어 산’
    이에 대해 북한지역의 이동통신망 구축을 위해 실무협의 등에서 오히려 정부를 이끌어갔던 관련업계에서는 단기적 이익보다는 북한지역의 이동통신 표준을 CDMA로 통일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에서 북한 내 이동통신망 구축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것도 태국 업체가 참여해 북한당국이 유럽식 표준을 채택하게 될 경우 앞으로 사업 참여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지역에 기지국과 교환장비 설치 및 통신망 구축 작업이 일반적 예상보다는 적게 들리라는 점도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평양을 방문했던 정통부 관계자도 “평양시내의 지형이 무척 평평한 데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기지국을 설치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애초 통신업계에서는 011과 017 통합에 따른 유휴장비를 북한 내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정통부는 방북 결과를 발표하면서 “3세대 이동통신 장비인 cdma 2000 1x만을 지원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해 SK텔레콤 관계자는 “어차피 유휴장비를 재활용하더라도 일부 재정비가 필요한 점까지 감안하면 최신장비인 cdma 2000 1x 장비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신장비를 이용한 평양과 남포지역 이동통신망 구축에 드는 비용은 대략 200억∼300억원 수준. 이러한 투자비용을 놓고 컨소시엄 참여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북한 이동통신 사업의 수익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억∼300억원 수준의 사업비용은 통신사업치고는 아주 적은 규모다. 그러나 앞으로 이 비용이 늘어나게 되면 추가 투자 여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북단에 참여한 또 다른 관계자도 “수익성 논란을 고려해 북한지역 관광객에 대한 로밍 서비스 등 수익성 제고를 위한 추가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내 업체들의 컨소시엄이 북한 내 CDMA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될 경우 당장 맞닥뜨리게 될 걸림돌은 한둘이 아니다. 컨소시엄과 북한 조선체신회사와의 협력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현지 운용 인력 양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어느 하나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수요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될 때 단말기 가격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떨어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가 없다. 5개 사업자로 구성된 컨소시엄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정통부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북한은 동남아 등과 협력해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여의치 않자 남한측에 SOS를 친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북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들도 북한측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야 대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당장 뭔가 이뤄진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양에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기지국이 서고 휴대전화가 개통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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