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2002.05.16

세종대왕 며느리는 ‘레즈비언’

  • < 곽태일/ 맨파워비뇨기과 원장 >

    입력2004-10-01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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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 며느리는 ‘레즈비언’
    호모나 레즈비언, 즉 동성애자가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손가락질받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동성애자들은 마치 범죄자처럼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만나야 했으며 성전환자들 역시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불과 수년 전의 분위기가 이러했는데 수백년 전 동성애자들의 애환은 말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조선시대에도 분명 레즈비언은 존재했다는 점이다.

    사료에서 발견되는 가장 충격적인 레즈비언은 세종대왕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인 봉씨. ‘세종실록’에 따르면 당시 궁내에는 시녀들간에 동침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들키는 경우 엄한 처벌을 받았는데, 곤장 70대를 맞고도 계속하면 곤장 100대를 더 집행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술을 좋아했던 봉씨도 그 부류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시녀들을 처소로 마음대로 불러들이다 화를 자초했다.

    사건은 평소 다른 시녀와 동침을 즐기던 ‘소정’이란 시녀를 눈여겨보아 온 봉씨가 무리하게 그녀를 처소에 들이려다 일어났다. 그 즉시 벌어진 궁궐 내 소란 사건에 대한 국문에서 봉씨의 동성애 행각은 시녀들에 의해 여지없이 드러났다. 결국 봉씨의 동성애 행각은 그녀가 친정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잃고, 친정아버지 또한 자결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역사상 동성애자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은 비단 우리뿐이 아니었다. 성경에 따르면 남자끼리의 성행위를 뜻하는 남색, 즉 ‘소도미’(sodomy)는 가장 사악한 도시로 묘사된 소돔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16세기 영국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동성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법이 사람의 목숨을 빼았던 과거와 많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 현대. 동성애자에 대한 가혹한 형벌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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