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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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될 만한 그림 어디 없소”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0-01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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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될 만한 그림 어디 없소”
    박수근(1914~65)의 그림이 연이은 최고가를 경신하며 화랑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1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 출품된 박수근의 작품 7점 중 5~6호 크기의 ‘아이 업은 소녀’가 5억500만원에 낙찰되었다. 한국 현대미술품 경매사상 최고 기록을 수립한 것.

    지금까지 경매 최고가였던 작품은 역시 박수근의 ‘초가집’으로 올해 초 경매에서 4억7500만원에 낙찰되었다. 3위도 박수근의 ‘앉아 있는 여인’(4억6000만원)이다. 모두 3~6호의 소품인 이 작품들은 지난해 9월부터 불과 8개월 만에 연이어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술품 시장에 박수근 시대가 열린 셈이다. 박수근의 생전인 60년대 초만 해도 그의 그림값은 3000원 정도였다.

    이번 경매를 주최한 서울옥션측은 “박수근의 그림이 비싸게 팔린다는 소문이 나자 소장자들이 연이어 경매에 그림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생전에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었던 박수근의 작품은 상당수가 주한 미국인들에게 팔렸다. ‘아이 업은 소녀’의 원 소장자 역시 미국인이다. 이 작품을 전화로 낙찰받은 쪽은 개인 미술관으로 밝혀졌다.

    미술계는 ‘박수근 현상’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이제야 근대기의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 청자가 몇 십억원을 호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미술품들이 문화자산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박수근의 작품은 이제 그림이 아니라 문화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돈 될 만한 그림 어디 없소”
    현재 남아 있는 박수근의 그림은 300점 남짓. 대부분의 그림이 10호 내외의 소품이다. 가장 대작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80호 크기의 ‘할아버지와 손자’다. 김달진미술연구소의 김달진 소장은 “국공립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제외하면 경매에 나올 수 있는 박수근의 작품은 많지 않다. 작품 수는 적은데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박수근의 작품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미술 시장에서 이중섭의 신화가 걷히면서 탄탄한 작품성을 지닌 박수근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미술품의 가격은 경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재 호당 1억5000만원 선인 박수근의 작품은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지난 80년대 중반에 이미 호당 1억원을 넘어섰다. IMF사태를 맞으며 한동안 침체되었던 미술품 시장은 최근 경기 회복과 함께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옥션의 관계자는 “미술품 경매는 주식과 같은 사이클로 움직인다”며 지난 88년 주식 가격이 폭등할 때의 그림값은 지금보다 더 비쌌다고 말했다. 다만 그 당시는 지금처럼 경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화랑에서 그림이 거래되어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 미술품의 투자가치가 알려지면서 최근 경매회사에는 “돈 될 만한 그림 좀 추천해 달라”는 재력가와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의 문의가 심심치 않게 온다고. 한편 그동안 거의 거래되지 않던 이중섭의 작품도 근래에는 은지화 위주로 간간이 경매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파른 상승세를 달리는 미술품 고가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소위 ‘빅3’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미술 관계자는 “몇몇 작가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현상이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위화감만 조성할 수도 있다”면서 “젊은 작가들 중에는 아직도 그림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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