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2002.05.16

“800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이다니…”

용인 연쇄살인사건 석연찮은 범행 동기 … “신고할까 두려웠다” 상식적으로 납득 안 돼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09-30 15: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800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이다니…”
    카드빚 청산을 위해 20대 미혼여성 5명을 거침없이 살해한 이른바 ‘용인 연쇄살인사건’. 이 사건은 금품을 노려 2개월 동안 취객과 부녀자 일곱 명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4월22일 검거된 교도소 동기 3명의 ‘막가파’식 범죄 직후 터진 것으로 그 충격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 2인조 연쇄살인범은 30대 여성 한 명을 더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이 경찰의 여죄 추궁 끝에 5월3일 추가로 드러남으로써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은 6명. 그러나 지난 4월30일 검거된 범인 허모씨(25)와 5월1일 자살(상자기사 참조)한 공범 김모씨(29)가 이들에게서 빼앗은 금품은 불과 520여만원. 신용카드 인출금을 뺀 현금은 22만원이 고작이다. 게다가 이중 286만원은 이들이 맨 처음 살해한 여성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이후 살해된 5명으로부터 강탈한 금액은 242만원에 불과하다.

    과연 무엇이 이 잔혹극을 부른 것일까. 경찰이 밝힌 범행 동기는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카드빚 800만원 때문. 이는 허씨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외피(外皮)에 가려진 이면에는 범인들의 ‘잘못된 만남’이 숨어 있었다.

    지난 3월 골프장서 ‘잘못된 만남’

    “800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이다니…”
    결과로만 보면 허씨에게는 공범 김씨와의 만남이 불행의 서막이었다. 허씨가 김씨를 만난 것은 지난 3월. 3월14일 경기도 용인의 S골프장 클럽하우스 식당 종업원으로 취직한 허씨는 이곳에서 지난해 10월 입사한 종업원 김씨를 처음 만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경북 구미가 고향으로 서울의 모 고교를 졸업한 허씨는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의 가출과 가난으로 마음 한구석에 상처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다른 직원들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유독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김씨와는 곧 친해졌다. 둘 다 용인시 기흥읍 신갈리에 셋방을 얻어 거주하다 보니 함께 헬스클럽도 다니게 됐다. 그러던 중 김씨는 “돈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느냐”는 제의를 했고, 이에 허씨는 “(경찰에) 안 걸린다면 할 수도 있다”고 장난조로 답했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이들은 지난 4월18일 밤 김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미용실 주인 이모씨(32ㆍ용인시 기흥읍)를 김씨의 승용차에 태워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 주차장으로 데려가 신용카드 두 장과 현금을 빼앗고 살해한 뒤 용인시 기흥읍 고매리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이씨는 살해된 지 이틀 만인 4월20일 남편에 의해 경찰에 가출인 신고가 됐고, 경찰은 이씨의 실종이 범죄와 관련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이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 속 인물과 허씨의 인상착의가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 여죄를 밝혀냈다.

    “800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이다니…”
    허씨가 5월2일 경찰에 제출한 자술서에 따르면 이 첫 범행을 위해 김씨는 대체휴가까지 사용했다. 이들이 근무했던 S골프장 영업부 관계자는 “대체휴가를 신청한 건 사실”이라며 “김씨가 이날 오전 잠시 출근했다가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휴가를 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초 밝혀진 대로 4월27일부터 이틀간 훔친 택시 표시등을 부착해, 김씨의 승용차를 택시로 오인하고 승차한 박모씨(29ㆍ피아노학원 강사) 등 20대 여성 2명을 수원과 용인 일대에서 살해한 데 이어 4월29일 수원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 인근에서 정모씨(23) 등 20대 여성 세 명을 “함께 놀자”며 꾄 뒤 이중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800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이다니…”
    여죄는 드러났지만, 허씨의 진술에는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그는 자술서에서 자신은 ‘피해자들이 별로 신고할 것 같지 않아 살려주고 싶었는데 형(김씨를 지칭)이 불안하다고 해 살해했다’고 적고 있다. 비록 허씨가 김씨의 제의로 범행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고할까봐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여섯 명 모두를 살해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사건을 수사한 용인경찰서 관계자는 “경찰로서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나, 공범 김씨가 자살한 이상 적확한 살해 동기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며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허씨가 아직 김씨의 자살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진술한 만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여죄가 더 있을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허씨가 진술을 몇 번 번복해 경찰은 김씨가 택시 표시등을 훔친 정확한 시점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시점이 앞설수록 여죄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전 C고교 출신인 김씨는 지난 95년 군복무 당시 특수강도 등 5∼6가지 범죄 혐의로 4년의 실형을 복역한 전력이 있는 반면, 허씨는 이번이 첫 범행. 그러나 허씨는 4월18일과 4월27일 두 번의 강도살인 행각을 벌인 후에도 태연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4월28일까지 정상근무한 뒤 “개인 사정이 있다”며 퇴사했다. 김씨는 4월24일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곳이 있다”며 사직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종결한 상태. 경찰은 5월3일 여죄 관련 브리핑을 갖고 “살해된 이씨 이외에는 범죄 혐의점이 있는 가출인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추가 범행은 더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며 “5월 6∼7일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신용카드 사용 명세 등 몇 가지 보강조사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씨가 S골프장에서 받은 월 급여는 100만원 가량. 다른 골프장 재직 경험이 있던 김씨는 경력을 인정받아 조금 더 많이 받았다. 상여금도 연 600%였다. S골프장측은 “김씨와 허씨 둘 다 다른 직원들과 마찰이 없었고, 금전 문제로 돈을 빌린 적도 없다”며 “근무태도도 좋았다”고 귀띔한다.

    모범택시를 찾는 여성들이 급증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낳은 이번 사건은 과연 ‘플라스틱 머니’로 불리는 신용카드 빚 때문으로만 빚어진 걸까. 무고한 여성 여섯 명의 목숨을 플라스틱 깨듯 산산조각 내버린 김씨는 스스로 세상을 등짐으로써 모든 ‘비밀’을 묻어버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