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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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 弘3 비리’ 엄정처리 국정 부담도 수용… ‘노무현 체제’로 급속 재편 정계개편 탄력 예상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30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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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김대중 대통령이 5월6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11월 총재직을 사퇴한 데 이어 평당원 자격마저 벗어던진 것이다. 그의 탈당은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3 김 정치의 종식을 의미한다. 그를 추종했던 동교동계 구파 등의 친위세력도 이날을 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2인자’로 군림했던 권노갑 전 고문은 김대통령의 탈당 직전 구속됐다.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정치신진들은 비상(飛翔)을 꿈꾸며 이들의 퇴장을 기다린 지 오래다.

    김대통령의 탈당은 예견된 사안이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핫라인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탈당문제를 조율해 왔다. 현직 대통령의 집권당 당적 포기는 노태우(92년) 김영삼(97년) 전 대통령 등 전례도 있는 만큼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양 진영은 적지 않은 입장차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노풍’(盧風)을 가로막는 김대통령의 존재가 못내 부담스러웠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중순부터 ‘DJ와의 관계 청산’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차마 “나가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아들들의 비리 의혹이 부담스럽다”(노무현 후보)는 등 절연을 원하는 냄새를 풍겼다.

    청와대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읽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 관계자의 설명. “세 아들들과 측근들의 비리는 끊임없이 터지고, 야당은 무차별 공세를 퍼붓는 상황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임기를 9개월이나 앞두고 탈당할 경우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힘이 다 빠졌는데….” 달리 길도 없고 그렇다고 정공법으로 가기도 어려운 현실을 이 관계자는 확인해 준다. 그런 청와대가 왜 결단을 내렸을까.

    고위 당정회의 폐지… 사실상 보호막 사라져



    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김대통령이 만약 전임 대통령들처럼 이런저런 (정치적) 수단을 써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것 아니겠느냐.” 사즉생(死卽生). 청와대 한 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 배경을 손자병법의 논리로 설명한다.

    이번 탈당은 김대통령 본인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몇 가지 부분에서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세 아들에 대한 비리 의혹 처리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 법을 어겼으면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기본 구상이라는 것. 대국민 성명을 통해 아들 문제를 사과하는 한편으로는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솔직히 지난 한 달 동안 김대통령이 아들 문제로 얼마나 상심을 했나. 건강도 좋지 않았고…. 탈당은 이런 정치 논리와 아들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와 외교(대북 및 통일문제) 등 국정 현안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이 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한 것과는 반대로 상황에 밀려 당을 떠난 김대통령은 여러모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우선 국무총리와 당 대표,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하는 고위 당정회의가 폐지된다. 청와대가 더 이상 민주당의 측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고, 대통령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음을 의미한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 야당이 청문회나 국정조사 등을 요구할 경우 민주당은 과거처럼 병풍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5월6일 당무회의를 열어 김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를 검토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일단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보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김대통령의 탈당을 계기로 본격 대선전략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DJ 차별화를 통한 대선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운 부분이다. 지지부진하던 정계개편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난 노후보가 개편의 물꼬를 터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김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 등에 부담을 가졌던 개혁성향의 정치 지망생들이 민주당을 노크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민주당은 경우에 따라 이들을 견인하기 위해 간판을 바꿔 새로운 정당을 출현시킬 가능성도 있다. 노후보는 지난 4월27일 후보수락 연설에서 ‘민주당 중심으로’라는 문장을 빼버리고 연설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속에는 ‘새집’을 짓겠다는 노후보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김대통령의 탈당을 보는 한나라당의 시각은 매우 날카롭다. 남경필 대변인은 “노무현 후보를 살리기 위한 위장 절연”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공세는 ‘노무현=DJ 적자’라는 공세적 대선전략을 이어가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초 한나라당은 김대통령과 노후보를 동일 티켓으로 상정해 각종 전략을 짰으나, 이제 김대통령의 탈당으로 쓸모가 없게 됐다. 물론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이 마음먹고 대선에 개입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40여년 정치 여정에서 김대통령의 정치행위는 항상 ‘복선’을 까는 복잡한 방정식으로 일관해 왔다. “그 행간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당한다”(한나라당 H의원)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 표리(表裏)가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지만 탈당한 김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이미 정치권은 새로운 세력이 등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들은 깨끗한 이미지와 개혁을 무기로 3김씨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노풍’은 이런 현상이 몰고 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김대통령의 친위그룹 역할을 해온 동교동도 ‘폐업’위기에 처했다. 민주당에서 동교동계 구파 내지 김대통령 직계가 갖는 집단적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했다. 지난해부터 당내 쇄신파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영향력이 줄어든 동교동계 구파는 권노갑 전 고문의 구속으로 원심력이 거의 와해된 상태다.

    당적 보유 장관들도 탈당… 중립내각 구성하나

    DJ “굴레 벗겠다”… 막 내리는 동교동 시대
    김대통령과 동교동이 비운 권력공백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이를 둘러싼 당내 권력암투와 파워게임도 예상된다. 우선 민주당은 ‘DJ 정당’에서 ‘노무현 정당’으로 급격한 권력이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4월 초부터 무게중심이 노후보 쪽으로 이동중이다. 그러나 당의 중심은 여전히 신주류 핵심인 한화갑 대표를 위시한 동교동계 신파에 있다. 대통령후보와 당 대표의 역할 분담은 지난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의 실험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지수다.

    김대통령의 탈당을 아직 정계은퇴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현직 대통령 입장은 정치와 비정치의 영역을 구별해 가며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도 있다.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박지원 비서실장과 신건 국정원장의 퇴진 등 몇 가지 후속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선거 불개입의 구체적인 조치로 선거관리 중립내각도 검토될 수 있다. 중립내각 구성은 야당의 위장 탈당 주장을 상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개각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김동신 국방, 이근식 행자, 김동태 농림장관등 6명도 6일 전원 탈당했다.

    불행하게도 김대통령의 탈당 뉴스는 이희호 여사의 ‘스캔들’에 묻혔다. 지난 5월6일 이희호 여사가 앞장서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홍걸씨 및 최규선씨 등의 면담을 주선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 것. 그 이틀 전인 4일에는 동교동계 핵심인 김옥두 전 민주당 사무총장이 경기도 성남 분당 파크뷰 아파트를 특혜분양 받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과, 김대통령의 측근들이 권노갑씨에 이어 한꺼번에 사법 처리되는 초유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현철씨 구속을 경험한 국민들은 그 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국민들의 눈에 비친 김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은 모두 의혹투성이다. 앞으로 이런 의혹이 언제 어디서 또 터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김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이런 정치적 부채에 대한 면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정치적 책임과 의무는 탈당과 관련없이 계속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김대통령이 불면의 밤을 벗어나기에는 아직도 많은 날들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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