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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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저항운동’ 피의 보복 잠재울까

팔레스타인서 기독교 주도로 시작 … 민중 참여와 국제연대 필수적

  • < 남성준/ 예루살렘 통신원 > darom21@hanmail.net

    입력2004-10-20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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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해 있는 베들레헴의 체크 포인트에서 뜻 깊은 시위가 벌어졌다. 1000여명의 시위대 중에는 명망 있는 로마 가톨릭 대주교 미카엘 사바흐를 비롯해 유럽·미국에서 온 참가자, 팔레스타인 주민, 수녀, 그리고 몇몇 하급 이슬람 성직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한 손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예루살렘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체크 포인트를 지키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저지로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날 행사의 당초 계획은 저지선을 통과해 예루살렘의 구(舊)시가지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스라엘 좌파 계열을 포함한 방문객, 예루살렘 거주 아랍인들로 구성된 수천명의 시위대와 합류해 8km나 되는 예루살렘 성 주변에 인간띠를 만들어 성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이 이들의 당초 목표. 그 후 각각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성지에서 기도한 뒤 해산할 예정이었으나 베들레헴측 시위대가 선회를 결정함에 따라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명확한 목표 비해 전술은 부족

    이날 행사는 이제 막 태동 단계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대한 공감의 표시로 수많은 외국 대표단이 동참해 국제적 연대를 과시했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팔레스타인 내에서 이 운동의 국제연대를 주도하는 단체는 비정부 단체인 ‘화해를 위한 팔레스타인 센터’(PCR)와 팔레스타인 비정부 기구(PNGO)에 의해 최근 설립된 ‘팔레스타인 민중을 위한 풀뿌리 국제보호’(GIPP)로서 이들 단체는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과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비폭력 저항운동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뿌리를 내리도록 지속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소속 라에드 아부사흐리아 신부는 이 운동을 이끄는 주도적 인물이다. 웨스트뱅크 내의 작은 마을 출신인 그는 각종 강연과 팔레스타인의 유력 일간지인 ‘알 쿠즈’ 정기 기고를 통해 이 운동을 홍보하고 있으며, 전자 홍보지인 ‘올리브 가지’(Olive Branch)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이 운동의 취지에 대해 “비폭력 전술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총보다 더 위험하다. 이스라엘측에 무자비한 보복을 행할 구실을 주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의 무력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에는 군대라는 힘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마하트마 간디가 ‘사티야그라하’(Satyagraha)라고 불렀던 진리의 힘과 사랑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라에드 신부는 이 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기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운동은 기독교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의 주요 참가자와 단체들이 기독교 관련 인사와 단체들인 까닭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내 비폭력 저항운동의 역사는 기독교 운동을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비폭력 저항운동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지난해 6월 심장마비로 사망한 PLO 전(前) 예루살렘 담당관 ‘파이잘 후세이니’다. 팔레스타인 내 무슬림 명문가인 후세인가(家)의 후손인 파이잘은 생전에 평화 시위나 강제 철거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루 가스를 마시고 때로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구타당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운동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지난해 말 베들레헴의 시위에서 라에드 신부는 파이잘이 무슬림임에도 1990년 알 아크사 모스크의 학살 당시 그가 썼던 기도문을 낭독했다. 당시 이스라엘 경찰의 발포로 19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사망했고, 파이잘은 부상한 채 피신한 뒤 이 기도문을 썼다. “오, 신이시여! 가슴은 쓰라림으로 가득합니다-원한으로 바뀌지 않게 하소서. 오, 신이시여!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합니다-복수로 바뀌지 않게 하소서.”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아직 시험 단계에 있을 뿐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철폐와 1967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운동 목표는 명확하지만 구체적인 전술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폭력 저항운동 진영이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장투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이 운동에 냉소적인 팔레스타인 민중을 동원하는 일이다. 지속적인 국제연대도 필수적이다. 시위대에 외국인이 포함돼 있을 경우 이스라엘 군대는 과격 대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종의 ‘인간 방패’ 구실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구시 샬롬’(평화 블록)이나 ‘평화를 위한 여성 연합’ 같은 이스라엘 좌파 계열 단체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팔레스타인 민중 동원 노력의 경우 서서히 결실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스라엘 군대의 베들레헴 진입 당시 벌어졌던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민중은 2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지도력 부재와 관련해 라에드 신부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비폭력’이 팔레스타인의 정치·사회·종교 분야에서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러나 PCR의 안도니 같은 이는 이 같은 견해에 대해 부정적이다. 실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비폭력 저항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아라파트 자신이 무장투쟁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에드 신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라파트에 대한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그를 운동진영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라에드 신부가 아라파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라파트의 연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1974년 UN에서 PLO의 대표로서 행한 연설에서 “한 손에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나의 손에서 올리브 나뭇가지가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말한 바 있다. “올리브 나뭇가지를 든 손은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다. 아직까지 우리는 총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라에드 신부의 자조 섞인 푸념이지만 그는 이 운동의 성공을 위해 아라파트가 간디의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장에 대해 이스라엘 당국은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대표단의 가자지구 출입이 거부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대표단 중 일부가 구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저항운동 진영은 이번 부활절(3월31일)을 기해 대대적인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일반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테러와 비폭력이 공존하는 경우 대중매체가 관심을 갖는 쪽은 테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리브 나뭇가지가 총을, 비폭력이 폭력을 대신하는 날은 아직 멀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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