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5

2002.03.14

은발의 청춘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

(주)인네트 여영조 전무, 50대 후반에 두 차례 직장 잃고도 취업 성공 ‘오뚝이 삶’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0-19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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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발의 청춘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
    ‘은퇴는 없다.’ 올해 나이 예순의 ㈜인네트 여영조 전무에게 이 말처럼 딱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여전무가 처음으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은 것은 지난 99년, 57세 되던 해였다. 공기업인 한국통신에서 이사 승진만 바라보고 있을 때 느닷없이 발생한 환란의 여파는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들이닥쳤다. 한국통신은 공기업답게 구조조정 방식 또한 간단명료했다. 유일한 퇴출 기준은 나이순. 환란 직후인 98년 말 1942년생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43년생이던 그의 앞줄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체신고 입학부터 따지면 무려 37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데는 그로부터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전직 지원 프로그램 최대한 활용

    실직. 셋이나 되는 아이들 혼사는 아직 한 명도 치르지 못했다. 모범 가장으로만 살아온 과거사가 자꾸 눈앞에 오버랩되었지만 주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두 달의 구직활동 끝에 루슨트 테크놀로지라는 미국계 기업에 취업하는 데 성공. 그러나 30년 넘게 몸담아온 공기업의 정체된 분위기와 글로벌 IT기업의 다이내믹한 환경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한국통신 시절 여전무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했던 일은 책상 위에 놓인 전날 운용 실적에 대한 통계를 점검하고 각종 결재 서류와 공람 등에 도장을 찍은 것. 그러나 직장을 옮긴 뒤로는 출근하자마자 PC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50대 후반의 그로서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공기업과 외국계 민간기업의 사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해프닝 하나. 루슨트 테크놀로지로 옮긴 뒤 회사 차원에서 참여하는 자선 행사에 대한 안내 메일이 여전무에게 날아왔다. 공기업 시절처럼 ‘당연히 월급에서 알아서 공제하겠지’ 하고 생각한 그는 월급에서 자선 기부금이 공제되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기부금 출연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하향식 의사소통에 익숙한 공기업 문화에만 젖어 있던 여전무에게는 일대 충격이었던 셈이다.

    근무시간이나 분위기도 과거와 크게 달랐다. 가끔 미국 본사나 세계 각국의 지사망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이라도 예정돼 있으면 현지 시간과 맞추기 위해 심야까지 기다리거나 새벽같이 출근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나 이렇게 바쁘게 새로운 회사 분위기를 익힌 것도 잠시. 미국 본사의 불황으로 루슨트 테크놀로지에는 전 세계적인 다운사이징 바람이 불어닥쳤다. 한국지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300여명의 직원 중 60여명이 퇴직을 신청했다.



    한국통신을 그만두었을 때도 환란 여파로 국내 경기가 바닥을 향해 무너지고 있을 때였고, 이번에도 국내 정보통신(IT) 경기가 코스닥 거품 붕괴 여파로 깊은 불황에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두 번의 실직 시점 모두 주변 상황이 최악으로 빠져드는 때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재취업 기상도는 결코 밝지 않은 셈이었다.

    그러나 한국통신을 그만둘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본사 차원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즉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것. 이때부터 그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의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책상과 컴퓨터라도 제공해 주는 사무실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소일거리 삼아 컨설팅을 받은 것이 사실.

    은발의 청춘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하루 이틀 흐르면서 여기서 훈련한 이력서 작성 방법과 영어 인터뷰 훈련, 주요 서치 펌(search firm)과의 접촉 등은 실직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대표적인 것이 이력서 작성법 훈련. 컨설턴트들은 ‘이력서는 광고처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졸업연도와 경력사항만 적는 이력서는 이제 한물갔다는 것. 자신의 경력 중 ‘알릴 것은 알리고 피할 것은 피하는’ 치밀한 광고 전략 아래 이력서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회사측의 관심을 끄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여전무가 60세까지 ‘영원한 현역’의 위치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영어 실력도 한몫한 것이 사실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영어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집에서도 늘 위성방송 등을 통해 영어를 생활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전무의 재취업을 도운 한 컨설턴트는 “고령인데도 창피를 무릅쓰고 젊은 컨설턴트들에게 묻고 또 묻는 과정은 우리가 보기에도 감동적일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과는 다시 두 달 만에 네트워크 통합서비스업체인 ㈜인네트에 지난해 11월 취업 성공. 여전무는 이 회사 창립 이후 최고령 직원이 됐다. 사장이 면접 과정에서 “당신 때문에라도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제도를 검토해 봐야겠다”고 말했을 정도. 여전무는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두겠지만 내가 할 일이 남아 있는 한 은퇴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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