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2001.12.06

‘2002 서울’의 비전은 무엇인가

  • 조용준 기자

    입력2004-11-25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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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은 건재하며 성업중이다.”지난 11월6일 제108대 뉴욕시장에 당선된 마이크 R. 블룸버그(59)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에 대해 ‘뉴스위크’지는 “시장직을 뉴욕식으로 쟁취한, 즉 무려 7000만 달러의 개인 돈을 들여 ‘사들인’ 억만장자의 강력하고 자신 있는 선언”이라고 평했다.

    보통 ‘빅 애플’이라 불리는 뉴욕시의 정치 지형도는 ‘민주당 판’이다. 민주당 대 공화당의 지지도는 무려 5대 1로 격차가 난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은 공화당 후보인 데다, 일반인에게 인지도도 지극히 낮고, 그를 아는 사람들마저 ‘돈 많고 여자 (사귀기) 좋아하는 독신이자 사교계 유명인사’ 정도로만 치부했던 블룸버그를 선택했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블룸버그는 한국과의 인연이 결코 간단치 않다. 한국의 97년 외환위기 상황이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거의 고갈된 상태’라고 ‘진실을 들춰냈던’, 그래서 한국이 IMF 관리체제로 직행하게 만든 경제뉴스 전문 ‘블룸버그 통신’의 소유주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현재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 108개국의 뉴스 서비스로 한 해 25억 달러(약 3조2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어찌 되었든 하버드 MBA 출신인 블룸버그는 뉴욕 시정에 문외한이다. 정치 경험도 전무하다. 미국의 심장 뉴욕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비전이나 사상적 기반도 불확실하다. 그를 바라보는 뉴욕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를 선택했다. 왜?

    대답은 9·11 테러사건 이후 오히려 클린턴 전 대통령 만큼이나 인기가 높아진 루돌프 줄리아니 현 시장이 들려준다. “그가 사업을 하듯 이 일(시정 운영)에 집중한다면 잘될 것이다.” 줄리아니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렇게 정치적일 필요가 없다. 그는 사업가들을 만나 이 도시를 떠나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다. 그들은 그를 이해하고 그래도 그를 한번 믿어줄 것이다.”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은 예정대로 6월13일 치르자는 것이 당론이다. 이에 반해 한 달 정도 앞당겨 5월9일 치르자는 한나라당 입장대로 한다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의 물밑 경쟁과 암투가 매우 분주하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홍사덕 서청원 의원과 이명박 전 의원의 3파전으로 일찌감치 좁혀진 듯하다. 반면 민주당은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한광옥 대표, 노무현 정동영 고문과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 이상수 원내총무, 이해찬 김민석 의원, 유종근 전북지사 등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만 8명이 넘는다. 그만큼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속사정이 엿보인다. 오죽하면 고건 현 시장의 재출마설이 나올까.

    정치권의 계산법으로 볼 때, 이길 수만 있다면 이중 누구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산법은 다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서울 시민이 과연 지금 거론되는 이들의 출마를 원하고 있을까? 줄리아니 시장의 말처럼 새 시대는 정치인들의 시장 진출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홍사덕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이회창 총재의 대권 전략과 한묶음이라는 얘기다. 명색이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라는 사람이 이렇게 서울시를 대통령 후보를 위한 ‘표밭’쯤으로 스스로 격하해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수도 서울을 정치 게임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비전인가.

    시민들은 안다. 현재 거론되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홍사덕 의원과 같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굳이 홍의원만 질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를 내년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만 여기는 타성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의 서울시는 환경도시도, 정보화도시도, 세계 물류의 중심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얼치기 도시’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2002 서울’의 비전은 과연 무엇인가. 시민들이 염원하는 비전을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가장 잘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제부터라도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02 서울시장 선거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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