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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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어떻게 빠지고, 헤어지나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2-24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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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어떻게 빠지고, 헤어지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이게 언제 적 노래더라.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아주 통속적 가사, 그러나 노래가 전달하는 풍경화 같은 이미지와 애달픈 멜로디가 이상하게 인상적이어서 어린 나이에도 괜스레 마음이 끌린 기억이 난다.

    천인공노할 테러 사태로 세상이 발칵 뒤집힌 이 마당에 한가로이 사랑타령이라니, 다소 겸연쩍긴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신작 ‘봄날은 간다’(이영애, 유지태 주연)는 삭막하기만한 가을에 꼭 추천하고픈 멜로영화다.

    영화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와 지방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으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사랑에 어떻게 빠지고, 헤어지나
    허진호 감독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랬듯, ‘봄날은 간다’ 역시 결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그리고 전작보다는 훨씬 또렷한 목소리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전작의 한석규, 심은하보다 ‘봄날은…’의 유지태와 이영애는 좀 빨리 만나고, 좀 빨리 같이 자고, 좀 빨리 헤어진다. 영화는 사랑이 식어버린 자리에서 사람이 느끼는 당혹감과 고통, 사랑에 대한 기억, 기억조차 사라진 다음의 느낌, 이런 것들을 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람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또 어떤 이유로 헤어지는 걸까. 사랑에 빠진 남녀는 ‘같이 있으니까 참 좋다’고 하고, 술 마시다가도 빠져 나와 전화하고, 일하다가도 실없이 웃는다. 멀리 사는 그 사람을 위해 한밤중에도 달려가고, 상대방의 잠든 얼굴을 훔쳐보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사랑도 변한다. “우리 한 달만 떨어져 지내보자”고 제안한 여자는 결국 “우리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남자에게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를 취한다.



    말 못할 가슴앓이를 하는 상우에게 그의 할머니는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는 말로 충고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젊어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까지, 모두 짝을 잃은 듯 보이는 상우 가족의 모습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봄날이 있고, ‘좋은’ 모든 것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게 마련이다.

    사람의 삶에서 찬란한 어떤 순간을 계절의 풍경으로, 소리로 잡아 보여주는 허진호 감독 특유의 솜씨는 여전하다. 전작이 ‘사진’을 매개로 한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소리’가 그 역할을 한다. 대나무숲에서 나는 바람소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장독대에 떨어지는 빗소리 등은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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