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2001.09.27

와인과 함께 ‘치즈’ 먹고 “치즈~”

해외여행객 입맛 타고 마니아 확산 … 현지보다 5, 6배 비싼데도 판매 불티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2-23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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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과 함께 ‘치즈’ 먹고 “치즈~”
    연극을 전공하는 대학생 한주영씨는 배낭여행 중 프랑스에서 먹은 치즈 맛을 잊지 못한다. 프랑스 식당에서 다른 프랑스인이 주문하는 로커포르 치즈를 엉겁결에 시켰는데 이 치즈는 치즈 마니아나 먹을 수 있는 블루 치즈였던 것이다. 푸른 곰팡이가 피어 있는 치즈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한씨는 엄청나게 짜고 신맛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치즈가 프랑스에서는 굉장히 인기 있는 치즈라고 하더군요. 자꾸 먹다 보니 묘하게 고소한 맛도 나긴 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충격적 맛이었어요.” 올 가을 프랑스로 단기연수를 떠날 예정인 한씨는 “블루 치즈 맛만 떠올리면 프랑스 가기가 싫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50여 종의 치즈를 판매하는 하얏트 호텔의 식품점 ‘델리’의 경우, 올 들어 치즈 판매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델리에서 인기 있는 치즈에는 모차렐라와 카망베르, 브리, 크림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블루의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치즈 붐이 일어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해외여행에서 치즈에 맛들인 사람은 국내에서도 같은 맛을 찾는다. 피자와 스파게티처럼 치즈가 들어가는 음식의 유행 역시 치즈 붐과 연관이 있다. 또 지난해 이후 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와인에 가장 어울리는 안주로 꼽히는 치즈까지 덩달아 이 인기의 물결에 편승했다.

    와인과 함께 ‘치즈’ 먹고 “치즈~”
    치즈 판매 사이트인 ‘치즈아이’(www.cheesei.co.kr)의 운영자 김유성씨에 따르면 치즈를 구매하는 행태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첫번째는 와인과 함께 치즈를 즐기는 진짜 치즈 마니아층, 두 번째는 스파게티나 피자, 퐁뒤 등의 요리에 치즈를 재료로 쓰는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치즈를 사는 경우다. 지난 8월 17, 18일에 치즈 정보 사이트인 ‘엔치즈닷컴’(www. ncheese.com) 주최로 알리앙스 프랑세에서 열린 치즈 시식회에 많은 사람이 참가 신청을 한 것 역시 치즈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반영한다.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이기석씨는 프랑스·이탈리아 음식을 선호하는 전형적 신세대다. 특히 치즈를 좋아하는 그는 아예 집에서 코티지 치즈를 만들어 먹기까지 한다. 우유를 끓이다 식초를 조금 넣고 굳히는 것이 이씨만의 코티지 치즈 제조법이다. 그러나 그는 국내의 치즈 붐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는 듯했다. “원래 치즈는 우리 나라의 된장이나 김치 같은 발효식품이잖아요. 유럽에서는 아주 대중적 음식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치즈를 먹는 것이 차별화한 고상과 품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듯해서 좀 거슬립니다.”

    이씨의 말처럼 치즈는 무언가 특별한 음식으로 여겨진다. TV의 한 냉장고 광고에 등장하는 여배우는 ‘치즈를 끓여 만드는 퐁뒤 요리’를 소개한다. 대리석처럼 광택이 흐르는 대형 냉장고와 깔끔한 부엌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 광고에서 결정적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매개체는 바로 치즈로 만든 퐁뒤다. 이름조차 생소한 치즈 요리를 만드는 배우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상류층의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치즈 판매량이 늘었다지만 치즈를 찾는 층은 최소한 해외여행에서 한번쯤 치즈를 먹어본 사람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현지보다 5, 6배 이상 비싼 가격을 무릅쓰고 치즈를 살 수 있는 소비자는 아직 많지 않다. 비싼 가격 때문인지 국내의 치즈 판매점은 대부분 호텔의 식품점이나 강남의 백화점 식품부에 몰려 있다. 치즈 수입업자의 말에 따르면, 치즈는 짧은 유통기간 때문에 반드시 항공편으로 수입해야 한다. 그나마 수입과 통관을 거쳐 국내에 반입한 치즈 유통기간은 3주일에서 한 달 정도에 지나지 않아 그만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인터넷의 치즈 동호회원들은 공동구매 형태로 아예 프랑스 현지에서 치즈를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국내의 유가공 기술은 흔히 ‘슬라이스 치즈’라는 가공 치즈를 생산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사실 치즈는 물론, 치즈로 만든 퐁뒤 역시 고급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점이나 오랜 숙성기간, 강한 냄새가 난다는 점 등에서 치즈는 우리의 된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 ‘엔치즈닷컴’ 운영자 이영미씨는 “퐁뒤는 알프스의 산악지방에서 굳은 빵을 뜨거운 치즈에 적셔 먹은 것이 기원”이라고 설명했다. 상류층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민 음식에 가까운 것이다.

    외국의 값싼 음식이나 음식점들이 한국에 들어와 고급으로 탈바꿈한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대명사인 햄버거를 한때 고급요리로 인식한 것이나 멕시코 광산 노동자들이 소금과 레몬이라는 보잘것없는 안주를 곁들여 마신 데킬라가 세련된 술로 탈바꿈한 것처럼 치즈도 한국에서 터무니없는 거품을 일으킨 셈이다.

    치즈의 유행이 비단 한국에 국한한 일은 아니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서도 식후 디저트로 케이크 대신 치즈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칼로리인 케이크 대신 영양이 풍부하면서 상대적으로 칼로리가 낮은 치즈를 선호하는 유행이 생긴 것이다.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와인처럼 치즈의 맛을 전담하는 ‘치즈 소믈리에’가 등장하는 추세다.

    근래 치즈에 대한 호기심 정도를 반영하듯 인터넷에는 치즈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치즈를 판매하는 사이트가 부쩍 늘었다. 엔치즈닷컴과 치즈아이 외에도 치즈앤햄(www.cheese nham.com), 미스터쿡(mr-cook.wo. to), 쿠치나 이탈리아(www.cucina italia.ce.ro) 등에서 치즈와 관련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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