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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1순위는 ‘구조조정전문회사’

도입 2년 만에 68개 업체 난립 양상… 투자 실적 있는 곳은 20여 개 불과

구조조정 1순위는 ‘구조조정전문회사’

구조조정 1순위는 ‘구조조정전문회사’
‘구조조정회사를 구조조정하라’.

지난 99년 ‘한국판 벌처펀드’(vulture fund)를 표방하며 생겨나기 시작한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 CRC) 제도가 도입된 지 2년 만에 회사 난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실채권 인수 후 매각이나 기업인수 후 재무구조 개선 또는 M&A 중개 업무 등을 위해 설립된 CRC는 5월 현재 68개나 생겨났다. 현행법상 자본금 30억 원이면 CRC 등록 요건이 되기 때문에 매달 3~4개씩 새로운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주관 부처인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이중 그나마 1~2건이라도 구조조정 투자 실적을 보이는 회사는 20여 개 수준.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CRC는 간판만 내건 채 아직 부실기업 투자에는 손도 대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CRC로 등록한 2년 이후부터는 납입자본금의 10%를, 조합 형태로 등록한 업체의 경우 자본금의 20%를 부실채권 인수나 정상화를 위한 투자에 쓰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지키지 못하면 등록 취소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CRC 사이에서는 등록 2년째가 되는 6월부터 또 한차례 ‘구조조정’ 바람이 일 가능성도 있다. 지난 99년 초 산업발전법에 따라 새로 생겨난 CRC는 2년 전인 지난 99년 6월 1일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등 기존 창업투자회사가 신규 등록한 것을 필두로 2년간 등록 러시를 이루었다. 이들 회사는 앞으로 부실기업 투자실적을 줄줄이 산자부에 보고해 등록 취소 대상이 아닌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구조조정 전문가 없는 회사도 많아

구조조정 1순위는 ‘구조조정전문회사’
지난해 10월까지 CRC가 부실기업에 투자한 실적을 보면 538개의 부실기업에 약 1조2634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투자 실적에 대해서는 업체는 물론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도 구체적인 공개를 꺼리는 형편. 그러나 문제는 이들 대부분의 투자가 실질적으로 자금력이 풍부한 몇몇 선발업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구조조정 투자를 벌이는 CRC 중 활발한 투자실적을 보이는 업체는 대략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KTB네트워크나 코미트창업투자 등 기존 창투사 그룹과 자산관리공사(KAMCO)가 외국계 투자은행인 소넨 블릭 골드만(Sonnen Blick Goldman)과 합작 투자해 세운 캠코SG인베스터나 리먼 브러더스와 합작한 캠코LB 인베스터 등 캠코 자회사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조조정펀드인 론스타(Lone Star)가 산업은행(KDB)과 합작해 세운 케이디비론스타 등이다. 그러나 이들 6~7개 회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CRC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본적 능력을 갖춘 CRC는 10개 안쪽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간급 규모의 한 CRC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이 몇 억 원씩의 돈을 모아 설립한 일부 CRC의 경우 아예 금융 전문가나 해당 산업분야의 전문가 없이 기업가치 분석을 외부 자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물론 엄정한 기업 가치 평가를 통해 부실기업을 되살린 구조조정 투자도 적지 않다. 특히 KTB 네트워크처럼 기존의 창업투자 노하우가 풍부한 회사의 경우 화의중인 상장업체 ㈜세진에 86억 원을 투자해 화의를 졸업시키기도 했고, 주방기구 제조업체인 동양토탈은 KTB네트워크에게서 488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구조조정 기금을 수혈받아 자본 잠식 상황을 벗어난 뒤 경영 정상화의 길을 밟고 있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가 지적하는 CRC의 가장 큰 문제는 CRC 내에 구조조정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더앤더슨코리아 김기혁 전무는 “대부분의 CRC가 금융기관의 퇴직 임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해당 부실기업이 포함된 산업분야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전혀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산자부 등록이 취소된 모 업체의 경우 대표이사가 경제범죄로 인해 전과 3범의 경력을 갖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몇몇 CRC는 등록 단계에서 주어지는 일부 특혜만을 염두에 두고 회사 설립에만 급급해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신규 등록하는 CRC에 대해서는 부실기업 출자 주식에 대해 양도차익이나 증권거래세를 비과세하고 자산 인수시 취득세·등록세를 면제해 주는 등 각종 특혜를 주고 있다. CRC의 회사채 발행한도도 상법상 4배보다 훨씬 많은 10배까지 허용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혜에 상응하는 건전성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위원은 “많은 CRC가 조합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금융기관에 준하는 감시와 감독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연구위원은 “현재 50억 원으로 되어 있는 자본금 하한선을 대폭 높여 500억원 규모는 되어야 제대로 구조조정 투자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CRC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CRC를 운영하는 업계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KTB네트워크 구조조정 사업팀 관계자는 “대부분의 CRC가 채무조정이나 출자전환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보다는 단순한 부실채권 유통사업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3개의 법정관리 기업에 투자해 법정관리를 졸업시킨 바 있는 Q캐피털파트너스 유종훈 대표이사는 “금융기관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독자적인 투자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수십 년간의 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CRC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부실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형편”이라고 내다보았다. 특히 영세한 CRC가 난립하는 것과 관련해 우리도 이제 CRC의 대형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더앤더슨코리아 김기혁 전무는 “운용할 수 있는 펀드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운용 대상 기업도 몇 군데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CRC 사이에서도 단순히 부실채권을 사서 되파는 금융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CRC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취지가 전부 퇴색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산업자원부 관계자 역시 CRC에 대한 건전성 제고 차원의 감독 기능이 미진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산자부 산업정책과 관계자는 “당초 기업들의 참여가 미진할 것을 예상해 진입 요건을 낮춰놓았지만 이제는 진입 요건을 강화하면서 건전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시행할 때”라고 지적했다. 산자부는 이를 위해 등록 요건을 자본금 3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높이는 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이미 입법예고하는 등 보완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도의 보완책은 아직 미진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유도하는 것이 내실 있는 구조조정 투자를 이끄는 길이라는 것이다.

CRC와 같은 부실자산 정리를 위한 기금을 이르는 ‘벌처펀드’는 야생동물의 시체를 먹고 사는 대머리독수리를 일컫는 ‘벌처’(vulture)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대머리독수리는 생태계에서 냉혹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지만 생태계를 유지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벌처가 없이 생태계가 유지되기는 어려운 것 또한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 CRC를 표방하고 나선 이들 CRC가 진정한 ‘벌처’가 되어 훼손된 기업 생태계를 얼마나 정화할 수 있는지는 이제부터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01.06.14 288호 (p26~27)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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