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5

2001.05.24

삼성 “적은 줄이고 아군은 늘려라”

홍보인력 보강, 이회장 직속 기획팀 운영 등 대외전략 강화 … 경영권 승계 예비작업중?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입력2005-01-28 1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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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적은 줄이고 아군은 늘려라”
    삼성의 행보가 심상찮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5월12일 거의 1년 만에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통령과 마주앉았다. 이날 회동은 표면적으로는 삼성의 중국 CDMA 사업 진출 격려라는 명분을 띄었지만 정작 재계에서는 삼성의 대북사업 진출과 관련해 정부와 모종의 메시지 교환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폐암 수술과 이재용 상무보의 취임으로 인한 안팎의 논란을 접고 대외활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 이와 관련해 최근 들어 삼성 내에서는 이회장 직속의 보좌팀이 개편, 강화되는 등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은 최근 조선일보 경제부 출신의 전직 언론인 박세훈씨를 홍보담당 상무로 영입해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박상무의 공식 직함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32)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홍보담당 상무. 삼성에버랜드는 그동안 인사와 홍보업무를 한 명의 임원이 담당해 왔으나 박상무의 영입과 함께 홍보업무를 특화해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박상무의 역할이 단순히 삼성에버랜드라는 회사 홍보에만 머물 것으로 보는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말 박상무의 삼성행과 관련해 이재용 상무보가 인사 차원에서 조선일보를 방문해 방상훈 사장 등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박상무의 삼성행이 이재용 상무보의 대외관계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이재용 상무보는 방사장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관계로 귀국 인사차 방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연관설을 부인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홍보담당 인력들도 최근 들어 보강하거나 강화하였다. 기획홍보팀 총괄 부사장 밑에 상무급만 3명으로 늘어났다. 에스원으로 발령난 홍보담당 상무가 최근 구조조정본부 기획홍보팀으로 복귀했기 때문. 이같은 홍보업무 강화 방침은 대략 지난 3월 초 삼성전자 주총을 앞두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내부에서 이재용씨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론’으로 가닥을 잡던 시기와 일치한다.

    기존의 기획홍보팀에서 떨어져 나온 별도의 기획팀도 가동하고 있다. 지난 3월 초 전무로 승진한 삼성물산 소속의 J전무가 이 기획팀을 총괄하고 5~6명의 팀원이 업무를 분담하였다. 특히 이 팀에는 얼마 전까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던 Y박사가 부장급으로 합류해 관심을 끌었다. Y박사는 구조조정본부에서 주로 경제 동향 분석 등 신규 사업 진출이나 사업 확장을 위한 거시정책 차원의 뒷받침을 할 것이라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 기획팀에는 Y박사뿐만 아니라 계열사에서 차출한 핵심 인력들이 포진하였으며 이들은 주로 이건희 회장의 대외활동을 보좌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 팀은 지금은 ㈜포디엘이라는 데이터방송 솔루션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로 변신한 지승림 전 기획담당 부사장이 총괄해 온 기획팀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조직이라는 것. 지부사장은 당시 삼성 대외업무의 총사령탑으로 자동차 사업 신규 진출 등 이건희 회장의 관심분야를 주로 추진해 온 일종의 전위대 역할을 맡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새로운 사업에 대한 검토부분이 주로 재무 파트로 넘어가고 별도의 기획팀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연설 원고 작성 등 회장 직속 업무만을 담당한다는 것. 그만큼 이 회장의 대외행보가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이재용씨의 대외 관계와 관련해서도 기획팀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기획팀 보강과 관련해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전무급의 위상에 맞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의 대외전략 강화는 그동안 대외업무에 소극적인 모습에서 최근 재계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건희 회장의 움직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월11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앞으로 자주 나오겠다”고 밝힌 뒤 지난 2월28일 전경련 김각중 회장의 희수 축하모임, 4월14일 회장단 회의 겸 골프모임에 이어 5월10일의 전경련 회장단 회의 등 올해 들어서만 모두 4차례나 전경련에 모습을 드러냈다. 폐암 수술 이후 1년 6개월이 넘도록 재계 회동에 참석하지 않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왕성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에 두고 장남인 이재용 상무보의 대외활동을 열어주기 위한 전초작업의 하나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회장은 지난 달 안양 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골프 회동을 주관한 자리에서도 의욕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재계 총수들에게 이재용씨에 대한 지도 편달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 역시 이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동에 참석함으로써 전경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측에서는 이재용 상무보의 ‘경영권 승계’에 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얼마 전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도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상무보의 활동이 부풀린 측면이 있다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 “적은 줄이고 아군은 늘려라”
    삼성이 그룹 홍보를 포함한 대외업무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9일의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전후해서로 알려졌다. 이 시기는 이상무보의 이사 선임을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참여연대 및 소액주주들과 이사 선임을 강행하려는 삼성측이 가파르게 대치하던 때였다. 당시 삼성 내에서도 이상무보의 이사 선임과 관련해 강온양론이 맞섰으나 결국 ‘정면돌파론’이 대세를 장악하던 시기였다. 참여연대 관계자 역시 “삼성전자 주총을 전후해 삼성측이 참여연대에 ‘더 이상 타협은 불가능하다’는 차원에서 강경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삼성은 일련의 조직 정비작업과 함께 최근 내부 단속에도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전후로 사원주주 위임 절차의 부당성을 제기한 일부 직원들 문제를 해당직원의 퇴직 형태로 마무리지은 삼성은 최근 들어서도 참여연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그러나 정작 참여연대 핵심 관계자들은 ‘금전문제나 여자문제 등을 흘리며 흠집내기를 하던 방식은 늘 있어 왔던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

    삼성 관계자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이상무보와 e삼성과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유지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상무보가 e삼성 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이후 삼성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사업을 주도한 관계자들에 대해 ‘e비즈니스 전문가가 아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e삼성 사업이 이상무보의 ‘실패한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제로 e삼성 출범에 깊숙이 관여한 삼성 관계자는 이와는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상무보가 e삼성의 지분은 넘겼지만 삼성그룹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상무보는 e삼성을 통해 삼성의 변화를 주도하는 ‘체인징 에이전트’(changing agent)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지분’은 넘겼지만 ‘관심’까지 접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상무보는 최근 삼성전자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론들과의 관계 회복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작 자신의 경영 비전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증여세’나 ‘후계자’의 이미지로만 비쳐지는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삼성은 올해 초 그룹 경영목표를 확정지으면서 ‘그룹 10대 과제’의 하나로 ‘그룹 우호세력을 확산하고, 반(反)기업 정서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최근 삼성의 대외업무 강화 움직임은 이런 그룹 방침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대우의 몰락과 현대의 고전으로 ‘유일 강자’로 남은 삼성이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속도전’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얼마 전 ‘긴축경영은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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