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인터넷 ‘회계비서’쓰시죠”

美서 ‘개인자산관리 프로그램’ 인기, 국내서도 속속 등장 … 금융정보·서비스 동시 해결

  • 입력2005-02-24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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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회계비서’쓰시죠”
    미국 벤처기업 요들리(www. yodlee.com)의 창업자 아닐 아로라는 자신의 웹페이지를 시티뱅크 경영진에게 시연한 뒤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가 미국의 한 주간지에 전한 당시 상황이었다.

    요들리, 퀴큰(www.quicken.com) 등 미국의 양대 ‘개인자산관리 프로그램’이 요즘 미국인들 생활에 ‘충격적 영향’을 주고 있다. 100만명이 요들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이트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정도 가입자 수는 놀라운 일이다.

    성공비결은 금융정보-서비스의 통합에 있었다. 요들리는 여러 은행에 분산돼 있는 예금계좌들, 수표, 신용카드사용명세, 보험,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개인 금융정보의 변동추이를 실시간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여기에다 개인이 즐겨보는 다섯 가지 이-메일 계정, 자주 찾는 3000여 개 사이트들에 올라온 새로운 내용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금융정보를 중심으로 한 ‘맞춤형 포털사이트’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런 서비스들은 이제 휴대폰이나 PDA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미국인들은 개인자산관리프로그램을 ‘야후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인터넷 이용자들의 주된 이용 서비스는 ‘주식거래’를 빼면 ‘이-메일 교환’ ‘온라인 게임’ ‘오락’ ‘검색’ ‘채팅’ 등 비 경제분야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인터넷 전문가들은 상황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금융통합정보 서비스 이용자는 2000년 120만 명에서 20001년 570만 명으로 폭증세를 보였다. 2003년엔 2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회계비서’쓰시죠”
    국내에서도 요즘 개인자산관리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경제활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잘만 이용하면 일상생활에 상당한 편리함과 효율성을 안겨 줄 수 있다.



    머니마니(www.moneymani.com)는 가계부를 온라인에 옮겨놓은 것과 비슷하다. 이용자는 소비명세를 날짜, 거래업소, 항목, 지출액 등으로 나눠 온라인 상에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그러면 이 사이트는 이런 기초정보를 여러 형태의 데이터로 가공해 지출 정도를 보여준다. 이는 가계부를 꼼꼼하게 적는 것 자체가 지출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전통적 방식을 연상시킨다. 급여, 공과금, 적금, 수강료, 보험료 등의 납부시기를 미리 기록해 두면 해당 일에 이를 알려주기도 한다. 마인즈, 엔머니뱅크, 네오머니도 이와 비슷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계부에 자동화-정보통합 기능이 가미된 서비스도 출시되고 있다. 다른 사이트의 실시간 정보를 긁어올 수 있는 ‘웹스크래핑’이 핵심기술이다. 머니마니의 경우 6개 은행의 인터넷뱅킹을 한자리에서 처리해 준다. 통합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기웅정보통신(www.kwic.co.kr)이 LG캐피탈에 제공한 솔루션은 21개 은행간 계좌이체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기웅측은 15개 증권사 증권계좌를 통합 조회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각 증권사에 무료로 공급할 예정이다. 오픈테크(www.otech.co.kr)도 계좌통합 솔루션 ‘오아시스’를 내놓았다.

    최근 한 은행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계좌통합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 은행은 프로그램개발에 1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서비스개통 뒤 실제 이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 사용자는 수천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은행측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사금융상품에 국한된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반감시킨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런 점에서 조이닷컴(www.joi. com)이 개발한 ‘조이뱅크SS’ 프로그램은 훨씬 진일보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 사이트에서 모든 금융기관의 계좌조회 및 이체가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내 기술 수준에서 개인자산관리 프로그램이 네티즌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편익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중산층 김모씨가 핑거사(www.finger.co.kr)의 ‘마이핑거’ 무료 서비스로 자산관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핑거사 관계자는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일부 서비스는 수개월 뒤 개시되며, 금융사이트의 솔루션으로 사용될 땐 몇몇 서비스가 누락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김씨가 초고속통신을 사용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는 데는 15초 정도면 충분했다. 용량은 4.2MB. 금융거래 명세를 입력하자 초기화면에 ‘예금 3800만원, 주식 3680만원, 보험 53만원(현재 해약기준), 부동산 2억800만원(현 시가), 부채 3180만원, 현금-자동차 등 기타자산 400만원’으로 그의 자산명세가 나왔다. 은행 계좌별로 예금액이 제시되는 등 모든 정보는 다시 세분화됐다.

    김씨는 A은행에서 B은행으로 현금을 즉석 이체했다. 인터넷뱅킹시 ID, 비밀번호, 계좌번호, 계좌비밀번호, 이체비밀번호, OTP카드번호 입력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마이핑거에선 비밀번호만 한 번 입력하면 모든 은행의 계좌이체가 가능했다. 이는 자산관리 프로그램이 발달된 미국에서도 제도적 문제 때문에 도입하지 못하는 서비스다. 김씨는 “여러 사이트를 들락거릴 필요가 없다는 점, 전 재산을 한눈으로 총괄해 보면서 이체 등 중요한 금융거래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고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보다 편리했다”고 말했다.

    마이핑거는 온라인 가계부와 달리 수입-지출-저축명세를 ‘실시간 자동으로’ 기록했다. 김씨의 신용카드 사용명세 등 지출정보는 가사, 피복, 의료, 교양, 오락, 식료품, 교통, 통신, 기타로 항목이 나뉘어 액수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동급 소득생활자의 항목별 평균 지출규모와 비교하고 있어 특정항목의 과지출 여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이 프로그램에선 집 구입 등 특정 목표를 지정하면 정해둔 기한 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저축-지출 규모를 알려 준다. 이른바 최적의 자산운용계획 수립기능이다. 김씨는 “그러나 단순 계산 방식이어서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메일 계정 등 다른 사이트 내용을 실시간으로 제공해주는 서비스는 아직 없었다. 핑거 관계자는 “은행대출상품의 이자율을 서로 비교 제시해 사용자가 가장 유리한 상품을 택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완벽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구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마이핑거’의 최대 장점은 한자리에서 개인의 모든 금융자산을 열람-처분할 수 있고 수입-지출명세를 자동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 서비스는 적어도 자신의 재산규모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자신이 한 달에 어디에다 얼마를 쓰는지 잘 모르며 사는 사람들에겐 유익한 일이 될 것 같다. 핑거 관계자는 “공짜 인터넷 사이트가 개인의 무절제한 경제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자산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미국에선 “상당수 고객이 고작 이-메일 계정을 관리할 목적으로 금융통합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보안에 대한 우려가 사람들을 주춤거리게 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연 ‘요들리’와 같은 선풍이 일어날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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